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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ul 29. 2020

【아들이 머리를 밀었다】

  남자는 평생 머리를 두 번 빡빡 깎는다. 난 그랬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빡빡, 그리고 군 입대하며 빡빡. 그렇게 머리를 깎을 때면 몹시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삼손도 아니면서 몸에 기운이 빠지는 것 같고 왠지 서글픈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묘하다. 요즘에는 머리 미는 것이 패션인 것도 있지만, 과거 남자들에게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하나의 관문이었다.


 평생 머리를 밀어본적 없는 아들이 지난 일요일에 머리를 빡빡 밀고 왔다. 녀석도 어색한 듯 가슬가슬 한 뒷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멋쩍게 웃는다. 남자에게 군대란 하나의 관문으로 여겨졌는데 아들의 머릿속에서 군대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시무룩한 아들의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를 대한민국 최고의 리더십 교육기관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두뇌를 가장 둔하게 만드는 곳이란 생각도 든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친 아들, 그나마 지난 학기는 전례 없는 전염병(코로나19)으로 학교는 거의 가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그리고 바로 군에 가려니 그 심정이 얼마나 찹찹할까! 그나마 친구들과 잠시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내가 느꼈던 그 시절 그 감정과 아주 다르지는 않을 듯했다.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 씩씩한척 해야 하는 어색한 연기 말이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 이제 6시간 후면 아들은 훈련소 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침부터 아무 말이 없다. 밥도 거의 먹지 못한다. 3시간을 가는 차 안에서도 녀석은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보다가 졸다가 한다. 가는 중에 점심을 먹자고 식당에 들렀는데, 밥은 반 공기 겨우 먹었다. 그리고 또 말없이 차에 타더니 한 숨을 내쉰다. 난 저러지는 않았는데 알 수 없다. 그렇게 군대 가기가 싫은 것인가? 능력만 된다면 어느 정치가나 기업인처럼 편법을 써서라도 아들을 군 면제 시키고 싶다.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단 일도 없었는데, 입대 두 시간을 앞두고 백미러에 비치는 아들의 눈빛과 표정을 보니 문득 그런 못된 생각이 든다. 복무 기간이 아무리 짧아 졌어도 군대는 군대지, 자유에 대한 속박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나 본인 선택이 아닌 의무로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점점 다가온다. 군인들이 보이고, 지프차도 보인다. 그리고 오르는 내 차를 막는 군인이 큰 차가 내려와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탱크 여섯 대가 내려와 내 앞에서 다른 산으로 건너간다. 아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이제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드디어 현실을 자각하는 것일까? 앙다문 턱 선이 날카롭게 보인다. 저기 50미터 앞이 훈련소 입구인 듯 차가 밀린다. 저 문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 한 대 더 피우겠다고 콧구멍이 발씸발씸 거리며 빨아대는 입영을 앞둔 민머리 총각들이 보인다. 이제 아들의 표정에서 포기하여 받아들이는 다짐이 선듯하다.


 저 문 앞에서 ‘아들 파이팅!’하며 힘껏 안아 줘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갔다. 그런데... “코코나로 인해 입영자녀만 내리시고, 부모님은 회차 하셔서 귀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잔인한 초병의 건조한 한 마디에 나는 내리지도 못하고, 녀석과 악수로 이별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지금 그냥 궁금하고, 그립고, 보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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