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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ul 13. 2023

【저는 절대로…】

“저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봄, 가을이면 선남선녀의 결혼이 이어진다. 참 예쁘고 축하할 일이다. 매년 돌아오는 봄과 가을의 결혼행렬을 지나 결혼한 지 일 년 남짓 되면 2세를 생산하고 축하받는다. 대부분 그때부터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중심추의 위치변경이 있다. 3년 전에 결혼한 대리가 이미 아들을 낳았고 아이가 두 돌이 되니 어느 정도는 안정되는 듯했다. 그런데 가정과 일 사이의 갈등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가정을 택하고 있어 늘 일이 먼저였던 꼰대를 당황하게 했다. 한창 일을 해야 할 때, 육아라는 무거운 짐이 그의 삶의 무게 중심을 가정 쪽으로 한껏 옮겨놓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도 본인은 항상 일을 선택하고 늘 자신의 삶을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제나 자신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열 번 중에 두세 번은 일을 선택해줘야 그래도 그 말에 수긍이 가지 않겠는가?      


하루는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꼰대는 잠시 용기를 내어 공치사를 시작했다. “나 때는 말야. 아이가 아파도, 부모님이 수술을 해도, 심지어는 우리 아들이 태어나는 날에도 출장을 갔어.”라며 약간의 허세를 부렸다. 그 누구도 리액션이 없다. 허망함은 내 몫이다. 그런데 그때 나름 의리 있다고 하는 주임 하나가 “저는 절대로 김 대리처럼 일을 두고 가정을 택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호기를 부린다.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자신은 일과 가정이 대립하면 열에 일곱은 일을 택할 거라고, 나이 들면 충분히 가정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긴 인생을 보면 그것이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교육의 효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녀석의 호기에 어찌나 기쁘던지 낮술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호기롭던 녀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딸이다. 이뻐 죽는다. 그래 예쁘겠지. 얼마나 좋겠어. 녀석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그 녀석 ‘저는 절대로…’라고 말끝마다 외치던 놈이 아이가 태어나기 3개월 전부터 그리고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정과 육아의 삶을 회사에 양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물었다. “이 대리 너 말야 절대로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더니, 6개월 동안 선택의 순간에 넌 항상 가정을 택했던 것 알아?”라고 슬쩍 걸었더니 “앞으로 100일만 더 봐주세요. 그 이후에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겁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100일이 지나면 더 이상 가정과 일이 대립되거나 갈등상황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선택의 기준은 자신의 삶 쪽으로 저만큼 가버려서 생각의 준거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내가 아들의 유치원 졸업식에 사진을 찍으러 1시간만 일찍 조퇴하겠다고 하니 내 상사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째려보았고, 이내 나는 아들의 유치원 졸업식에 한 시간이나 늦게 참석하고 말았다. 그때 보았던 아들의 실망한 눈빛은 지금도 사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 나는 팀원들이 일보다 가정을 택함에 불만이었던 잠깐의 내 생각을 몹시 후회한다. 다 때가 있는 법이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행복을 선택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지나온 선배들은 그들의 선택에 박수쳐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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