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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ul 17. 2023

【조직 내 이심전심의 모호함】


   

  “저요?”, “이거요?”, “왜요?”      


  3요? MZ에게 대답은 3요?로 시작된다. MZ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면 나이 들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에 느끼는 교훈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여직원이 내 눈에는 아직도 입사 때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리고 오래 생활했기에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잘 소통된다고 생각했다. 내심 어린 직원들과 잘 지내보겠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농담이라고 너불너불 이야기했는데 반응이 서늘하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틈만 나면 말도 안 되는 개그도 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건 냉소뿐임을 알았다.     


  급기야 어느 날 내 지시에 반기를 들었다. 그땐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큰소리를 치고 한바탕 티격태격 말싸움을 했다. 30대와 50대의 말싸움은 나이 먹은 꼰대의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창피해서 회사에 나오기가 힘들 정도의 충격을 받았고, 이내 사내에 소문이 났다. 그리고는 누군가 그 여직원에 대해 “싸가지가 없네. 어떻게 임원한테 대들어?”하며 날 위로했지만, 돌아서 생각하니 그녀가 잘못한 것은 판단 잘못 빼고는 없었다. 그 사단의 원인은 내가 그녀를 어린 직원으로 기억해 존중하지 않았던 것임을 일주일이나 고민하고 난 후 알았다.     


  나의 ‘선택적 맹시(내가 생각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보여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는 때론 시공을 초월하나 보다. 내가 나이 먹는 만큼 상대방도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데, 늘 어린 신입사원으로만 생각하고 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눈뜬장님이었다. 그 여직원은 그런 내게 서운했고, 오래 참았고, 불만이었던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같이 오래 직장생활을 한 꼰대들은 불평한다. 왜 요즘 애들은 그냥 좀 알아듣지 못하고 꼭 “왜요?”라고 질문하는지 모르겠다고. 우리 세대는 상사의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셋’을 온도 맞춰 대령했었다. 그것을 이심전심이라며 상사들이 꽤 기뻐했고, 그렇게 행동하는 직원이 때때로 고과도 좋았다. 정확한 지시 하달을 요구하는 직원에게는 “세상 그렇게 살 거냐?”며 핀잔을 주고 왕따까지도 시켰다. 돌이켜보면 정말 잘못된 문화가 아닐까? MZ가 요구하는 ‘3요?’를 과거와 비교하면 사실 훨씬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시대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아직도 MZ세대와 대화가 어렵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다가오기 전에는 이제 말을 걸기 어렵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그들이 나를 볼 때 나는 이미 ‘할배’다. 그 할배가 묻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고, 요청하지도 않은 가르침을 행하려 하니 그건 잔소리일 뿐이다. 나는 다짐했다. 다가오기 전에 다가가지 말자는 다짐,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에 농담이나 코칭을 행하지 말자는 다짐, 그리고 사적인 질문은 절대로 하지 말자는 다짐이다. 나로 인해 힘들었을 우리 직원들에게 이제는 편안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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