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바쁜가?】

by 섬돌

바쁨의 정의는 뭘까? ‘주어진 시간에 비해 할 일이 많은 것’이라 생각한다면 천만에다!

직장생활 25년 간 참으로 많은 사람을 보아왔다. 그 사람들을 둘로 나누라면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직장에서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다. 둘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직장생활 약 10년을 하고 나서다. 그런 면에서 나도 마흔 전까지는 일 못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시절 내가 쓰던 플래너를 보면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속기한 듯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여기 저기 무질서하게 적혀 있고 그것을 유추할 수 있으려나 하고 보면 정황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 장, 얼마나 바빴으면 일주일을 건너뛴다. 중간 일주일간 단 한 자의 기록도 없다. 정말 바빴나 보다. 그렇게 십 년을 보내고 돌아보니 회사원으로 산 10년 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늘 “저 바빠요, 바빠서 좀~, 시간이 없어서~” 등등 일을 완수하지 못한 수도 없는 핑계를 만들고 있었다.


10년의 바쁨을 뒤로하고 부서가 바뀌었다. 첫 날 서먹했던 나의 차석은 느닷없이 ‘팀장님 플래너 쓰시나요?’하고 질문했고, 나는 멋진 소가죽 표지의 플래너를 차석에게 보여줬다. 돌아온 말은 ‘팀장님 플래너 이렇게 쓰는 거 아닌데요.’였다. 그리고 내용 부실의 내 플래너 대신 본인의 플래너를 보여줬다. 부끄러웠다. 매일 매일의 업무가 정리되어 있었고, 알 수 없는 A, B, C, D 구분, 그 옆에 숫자도 보였다. 여러 가지 색상의 기록도 질서 정연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는 연간 책을 1백 권을 넘게 본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날 충격이 나를 변하게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은 오래지 않아서다. 비록 후배였지만 나는 그의 습관을 흉내 내기 시작했고, 약 100일이 지나자 녀석이 나에게 ‘팀장님이 플래너 쓰시니까 제가 힘드네요.’라고 했다. 플래너는 철저한 시간관리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서는 플래너 쓰는 법, 시간관리, 그리고 셀프리더십까지 강의를 했으니 거의 전문가 반열에 오른 듯했다. 그러면서 ‘빠쁘다, 시간 없어요~’라는 말은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젠 바쁘다고 이야기 하는 말을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또 한 10년 지난 지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후배 직원들이 자꾸 거슬린다. 정말 바쁠까? 나는 50 넘은 꼰대가 되어서 그들이 바쁜 이유를 알았다. 주도적으로 일을 결정하지 못함으로 하기 싫은 일을 쌓아 두기 때문이 첫 번째고, 공사(公私)가 다망(多忙)하여 뭐가 중요한 일인지 알지 못해 허둥대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그렇게 자기주도적 시간관리가 되지 않으니 늘 바쁜 것이다.


경험 중 진정한 바쁨을 느낄 때는 내가 목표로 한 꿈이 눈앞에 다가와 빨리 달성하고 싶을 때였다. 그런 이유로 마음이 바쁘면 몸이 움직이고, 그 결과물이 보이면 정말 행복했다. 바쁘다고 인상 쓸 일이 아니다. 이것이 쌓였을 때 진정한 나력(裸力 : 배경이나 후광이 아닌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 내는 능력)이 생긴다. 대부분 일을 잘한다는 치사 뒤에는 회사라는 거대한 배경과 스폰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늘 자신이 다 해냈다고 뻐기듯 우리는 바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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