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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Oct 25. 2023

【내가 당하다니】

 

‘구매의사가 없어졌습니다. 환불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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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없다. 사이트 접속 불가!’

‘헛, 당했다.’     


10년 된 냉장고가 말썽을 일으킨 것은 3개월 전부터다. 냉장고가 고장이면 가장 날카롭게 반응하는 사람은 아내다. 솔직히 음식을 잘 하는 사람들은 냉장고의 냉기가 좀 떨어져도 선입선출의 개념에서 재료와 음식물을 잘 관리하기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음식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물 쓰레기가 냉장고 성능이 떨어지면서 전보다는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추석 명절이 올해는 양력 9월 중순이니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을 때다. 이 명절을 앞두고 아내는 냉장고 빨리 사자고 보챘다. 모처럼 주말에 좀 쉬려고 리클라이닝 소파에 반쯤 몸을 기대면 어김 없이 냉장고 이야기를 했다. 듣다 못해 “그래, 여기 하이마트 가자.”고 했더니 “인터넷이 더 싸지 않겠어.”라고 해 그때부터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이건 어때?”

“메이커가 맘에 안 들어.”

“그럼 이건”

“그건 좀 오래된 건지 전기를 많이 먹네.”     


점점 스트레스 지수가 오를 때쯤 1백 75만원에 신형 4도어 냉장고가 검색되었다.      


“이거 좋네, 이거 사자” 

“그래 좋아.”     

시원하게 카드결제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자가 왔다. 


‘고객님 재고 부족으로 주문냉장고의 결재가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꽤나 많이 쓰는 네이버 톡으로 다시 문자가 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카드결재 취소 확인하셨는지요. 추석명절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 재고가 부족합니다. 단 현금 입금을 통한 직거래 물량은 남아 있어 입금 확인되면 바로 발송처리 됩니다. 또 현금 거래시에는 10% 할인이 더 적용되어 1백 5십만 원에 구매가 가능합니다.”


순간 나는 이거 더 좋잖아. 빠른 배송에 가격도 싸고 말야. 그동안 아내에게 긁는 바가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선택적 맹시인가? 완전히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간단히 아내에게 설명하고 이걸로 구매하려 한다고 하니 아내는 뭐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인터넷 구매는 당신이 전문가니 알아서 하란다.     


나는 입금과 동시에 네이버 톡에 ‘입금했으니 확인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5초도 안되서 ‘확인 되었습니다. 고객님. LG배송 기사님이 직접 연락할 겁니다. 지금 배송처리 하겠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그런데 갑지기 몰려드는 찜찜함이 있었다. 하지만 네이버 톡으로 계속 연락되고 사이트에 배송처리 화면도 확인된다. 그런데도 속은 기분이었다.     


월요일 아침 아무래도 찜찜하여 나는 네이버 톡으로 ‘미안합니다. 구매 의사가 없어졌습니다. 환불 부탁합니다.’라는 톡을 남겼다. 대답이 없다. 그리고 1시간 후 사이트도 접속이 불가했다. 멋지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꽤 눈치 빠르고, 명석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렇게 불혹을 넘겼고, 지천명도 넘겨 55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남들에게 정신 바싹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강의도 하면서 온갖 잘난 척은 혼자 다 했는데, 내가 사기를 당했다. 와이프가 정곡을 찌른다.    

 

“아휴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속은 것이 분하고 억울했다. 없던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도지고 밥맛도 없어졌다. 살도 빠졌다. 사기임을 알고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접수한 지 한 달이 지나 잊어질만할 때 등기가 왔다. 창원에서 경기도 마석 경찰서로 이관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후 다시 등기가 왔다. 더 이상 추적이 불가하여 미제사건으로 처리된다는 통보였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난 지금도 창피하다. 그간 좀 더 오래 살았다고 잘난 척 한 것이. 그런데 요즘에는 한 번 당해봐서 아는데 하며 또 잘난 척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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