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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Nov 13. 2023

【참 가지가지 하네!】

 “어휴, 냉장고에 들어갈 데도 없는데 또 사왔어요?”

 “어 가지가 좋아보여서.”     


 대강 봐도 한 20개는 되어 보이는 가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장모님이 들어오셨다. 아내가 냉장고에 넣을 데가 없다고 징징거렸지만 그래도 사온 걸 받아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 일주일이 지났고, 어느 날 냉장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가지를 보고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 저 가지, 아 저 가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가지 볶음하면 되잖아.”

 “그게 쉬워? 당신이 해주면 모를까?”     


 언제부턴가 음식조리는 내 담당이 되었고, 아내는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냉장고 속에서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오래된 식재료가 상해도 내 탓처럼 노려보았다. 그래서 집사람이 쉬기 전날인 금요일에는 냉장고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여보. 오늘은 숙주랑 두부랑 뭘 해야 할 것 같은데.”

 “응? 뭘 하라고? 참 가지가지 하네.”


 출근하며 짧게 말하는 아내는 말은 직장 상상의 명령처럼 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이제 집안살림의 칼자루를 내가 잡고 있음이다. 그래 오늘 맘 잡고 가지를 몽땅 없애자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가지를 씻고, 자르니 큰 양푼으로 한 가득이다. 어지간한 궁중팬으로 두 번은 볶아야 할 듯하다. 저 가지가 참 여러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맛있게 여럿이 먹을 수 있다면 다시 행복으로 전환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막 볶으려고 준비를 하는데, 대학원 선배 중에 친했던 누이가 가지를 볶을 때 먼저 오븐에 살짝 구워서 하면 식감이 훨씬 좋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자른 가지를 오븐에 넣어 180도로 약 10분 정도씩 구웠더니 음~~ 겉이 살짝 노랗게 익으며, 반 건조 상태가 되었다. 물론 오븐에도 반씩 들어갈 정도로 양이 많았다.     


 이제 가지를 볶는다. 기름을 두르고 간마늘을 넣고, 간장과 설탕, 파 등을 순서에 맞게 넣는다. 그럼 아주 좋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순식간에 가지볶음이 완성된다. 궁중팬을 한 번 비우고 다시 또 한 번 더 볶았다. 가지는 볶으면 양이 반 이상 줄어든다. 부풀려진 스트레스가 반 아니 반에 반으로 줄어 그 남은 것은 행복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달달한 간장향이 집을 꽉 채우고 한소끔 식으면 반찬통에 담아낸다. 그리고 금년 마지막 가지를 들고 본가와 처가에 배달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두부와 숙주가 남아있다.


내일은 대패삼겹 숙주볶음과 두부김치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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