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돌 Dec 06. 2023

【참 너무 쉽다】


노년의 피카소가 카페에 앉아 냅킨에 그림을 끄적였다. 옆 테이블에 한 여성이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감탄할 때, 피카소는 냅킨을 구겨서 버리려 했다. 그 때 옆 테이블 여성은 “잠깐만요. 그 냅킨 제가 가져도 될까요? 사례는 하겠습니다.”고 했더니 피카소는 “물론이죠. 2만 달러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뭐라고요? 그리는데 2분 밖에 안 걸렸는데요.”라고 하자 피카소는 “아니요. 60년 넘게 걸렸습니다.”고 하며 냅킨을 구겨 주머니에 넣고 사라졌다.      

긴 시간을 노력하여 탄생한 결과물을 너무 쉽게 사려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림이나 나름의 작품을 좋은 마음에 나누어 봤던 사람들은 알 수 있다. 그것이 단지 돈 몇 푼에 살 수 없는 정성이란 것을.     


한 포털에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그 내용은 8개월 동안 같은 방향에 사는 부서 후배 여직원을 카풀 했던 한 선배직원의 이야기였다. 하루는 퇴근 중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는데, 그 여직원의 어머니는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라면서 선배직원을 다그쳤고, 이에 더해 그 여직원은 다음 날 목이 뻐근하여 병원에 갔더니 전치 2주 진단이 나왔다며 보험처리를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다음이었다. 병원비를 보험처리 하려고 보험회사에 문의하니 벌써 한약까지 1개월 치를 샀고 그것까지 보험처리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1주일 후 다시 카풀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던 선배직원은 “8개월을 카풀했지만 기름 값은 고사하고, 음료수 한 번 산적 없었잖아? 경미한 접촉사고에 내 건강은 묻지도 않고 보험처리부터 얘기하는 당신과는 카풀을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직원은 부서장에게 부서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중략하여 세세한 기술은 없었지만, 그 선배 직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부서의 후배 여직원을 배려해주었는데 자신이 받는 것은 당연했던 것이고, 그가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한숨이 나왔다.    

 

지난 3년간 100여 명에게 내가 쓴 손 글씨 액자를 나누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실천했다.  그런데 액자를 전에 받았던 한 직원이 글씨를 바꾸어 달라고 한다. 오래 보니 감흥이 없고, 또 지금의 글씨를 보니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며, 다시 글씨를 써 달라고 한 것이다. 맞다. 곁에 두면 고마운지 모르고, 원래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또 3년간 100명에게 액자를 나누느라 열심히 쓰다 보니 실력이 늘긴 했다. 그런데, 이게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복사기에 복사하는 것도 아닌데, 새로 달라는 이야기가 너무 쉽다. 그래서 섭섭하고, 괘씸했다.     

100개의 액자를 나누면서 퇴사하는 지인에게 선물도 했고, 또 누군가 생일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좋은 글귀를 써서 선물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도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와 간곡히 부탁하면 정성을 다해 써 주었다. 그런데, 마주치면 인사도 없던 한 후배 직원이 “전 왜 안 주세요.”하며 대뜸 꿔준 돈 갚으라는 듯이 이야기하면 솔직히 속에서 불이 난다. 내가 비록 전시 한 번 하지 않아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나름 애써 연습하였기에 액자에는 정말 정성 가득한 글씨가 담겨 있는 것이다. 때로는 같은 글씨를 50번 100번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 쉽다. 남들의 정성과 노력을 가져가는 것이... 남의 것을 갖기 전에 내 것을 쌓기 위해 노력은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전에 책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 교수가 매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책의 내용이 좋아 나도 많이 사서 보았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함을 느꼈다. 글에서 글쓴이가 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의 제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만  대부분이 제자들과 또는 지인들과 SNS를 통해 공유된 내용을 허락 없이 재생산하여 마치 자신의 생각과 지식인냥 책으로 발간되었음을 알았을 때, 그 배신감은 아주 강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알았다. 내가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지식과 정성의 나눔도 준비되지 않고, 품격을 갖추지 않는 사람, 남의 지식과 다른 이의 애쓴 작품을 하나 얻고자 가식적인 미소를 던지는 사람에게는 이제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새끼 꼰대 전성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