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돌 Feb 22. 2024

【더하기에서 빼기로】

     

어느 해 봄이 시작되는 날에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더하기의 삶을 살았다.     

그래도 청년기까지는 좋았다. 학생이라는 호칭 외에는 아무것도 붙지 않았기에 가벼웠다. 그런데 나이 30이 가까워 오면서 남편,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거기에 석사, 박사까지 참 많은 직함의 더하기가 생겼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럴싸한 대기업의 사명이 내 명함의 앞을 장식하고 있어서 언제나 나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한껏 부풀려진 수식이 나를 대변하고 있었다.     


삶은 바쁘게 더하기의 연속이었고 그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마 지금도 꽤 거추장스런 장식을 명함에 가득 매우고 어깨에 꽤 힘주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50세가 넘어서도 그 더해진 장식들이 나를 대변하는 이력이고 경험으로 내심 뿌듯해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그 장식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이도 달렸다. 달리면서 힘도 들었고, 아프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50대 중반을 지나면서 이제 모든 장식을 하나씩 내려놓고 오로지 이름 석 자만을 명함에 적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으로만 세상을 대하고, 나를 소개한다. 그렇게 6개월이 좀 넘으니 정말 좋은 관계로 남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를 장식한 껍데기를 벗어버리니 진정으로 내 인생의 친구와 남은 삶을 소중하게 함께 갈 사람들이 가려진다.     


장식의 무게로 어깨에 힘주던 삶에서 이제 마음에 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가슴에 힘을 주고 살고 싶다. 그래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린다. 또 좋은 사람들과 여행도 간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에서 누군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면, 그 때 아무것도 없이 그저 이름 석 자 쓰인 명함을 꺼내 ‘저는 누구입니다.’ 라고 말한다.        


더하기에서 빼기의 삶을 살자면 처음에는 좀 서글프다. 그동안 내가 이루어온 것이 허무하고, 새로운 삶이 두렵다. 아무 직함이 없는 명함을 건네려면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몇몇은 우울해진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 앞을 장식한 화려한 이력에 감추어진 욕망처럼 씻어내면 개운하다. 그리고 하나하나 걷어내 오직 맨살만 남은 깔끔한 명함을 건네는 내게 관심을 갖고 함께 웃고, 공감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그 에너지는 예전에 화려한 명함을 주고받을 때와 사뭇 다르다. 

    

더하기의 삶에서 거꾸로 서는 빼기의 삶을 살아간다. 하나씩 빠져 나갈 때마다 더 단단하게 남겨지는 자신의 무게를 오롯이 느끼며, 가슴에 힘을 주게 된다. 똑바로 서서 어깨에 힘줄 때와 거꾸로 서서 삶을 대하며, 가슴에 힘주는 삶이 이렇게 행복한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