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의(名醫) 악타이온의 비극

[과거의 나 시리즈] _ 로마 신화를 조선 사극으로 각색하다

by 은지혜


"10년 전, 과거의 제가 로마신화의 비극을 사랑하여 각색했던 내용을 꺼내보았습니다."





-조선 명의(名醫) 악타이온의 비극


키론대감에게 의술을 전수받은 카드무스의 손자 악타이온은 조선 최고의 의원이다. 내의원에서 중전의 담당의관을 맡은 악타이온은 중전의 출산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아 분주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모두 수고가 많소. 중전마마(디아나)의 환후도 양호하고 준비 또한 완벽하게 되었으니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에 충실하면 될 것이오. 다만 풍열(고혈압)로 인해 기력이 갑자기 쇠해지거나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의녀들은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놓도록 하고 내의녀께서도 환후 보고와 관리를 철저히 해주시오.”

내의원의 의녀와 의관들은 악타이온의 말을 듣고 지시대로 준비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중전의 처소에는 산실청이 차려졌다. 산실청이란 왕손을 무사히 낳기 위해 중전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의녀와 잡다한 일을 하는 하녀들이 배치되어 중전의 출산을 담당하는 곳이다.

여자가 아닌 일반 의원들은 오직 상황 보고만을 받고 진단만을 내릴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왕에게 조차도 이곳은 출입이 금지된 절대적인 금남의 구역이었다.

중전에게 해산 전에 나오는 이슬이 비치자 여러 명의 의녀들이 따뜻한 물과 대야, 하얀 천, 침구(鍼灸) 등을 해산을 위해 준비하였다.





의녀 이슬이는 중전의 몸을 눕히고 호흡을 가다듬어 주었다. 한쪽에서는 의녀 조약이가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침구를 준비하며 정리했다. 그리고 나머지 의녀 방울이는 따뜻한 물과 눈처럼 순결하고 깨끗한 수건과 흰 천을 준비하고 중전의 환후를 살폈다.

진통이 조금씩 시작되자 의녀들은 중전의 호흡을 가다듬고 안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창백해진 얼굴과 가빠진 호흡으로 가장 고귀한 절차를 밟고 있는 중전은 참으로 힘든 와중에도 자신의 아이를 만날 생각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마마 힘을 내십시오 정신을 잃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비명을 지르다가 눈은 감은 중전에게 의녀들이 계속해서 외쳤다. “마마 조금만 더 기운을...”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진통이 계속해서 심해지고 나아지는 것을 반복하다가 조금 사그라들었을 때쯤 의원 악타이온은 산실청 밖에서 대기하며 의녀 방울이에게 중전의 상황을 보고 받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위험한 징후는 없었사옵니다.”

그 누구보다 까다롭고 경계심이 많으며 예민하기로 유명한 중전 디아나는 매우 아름답고 기품이 넘쳤지만 신료들에게는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중전이 위험에 처하거나 아이가 유산된다면 의원들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의녀의 말을 듣고 악타이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구나. 특별한 징후가 보이거든 바로 전하도록 하거라.”

그때 산실청 내부에서 의녀와 궁녀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마마!! 정신을 차리십시오 ”

“마마... 눈을 뜨셔야 합니다...! “

방울이가 급하게 처소로 다시 달려갔다. 산실청 밖에 있는 악타이온은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의녀의 상황보고만을 기다렸다.


의녀 방울이가 달려 나오면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악타이온에게 말했다.

“대감, 대감!! 왕자를 출산하셨습니다!! 허나 풍열로 인한 난산으로 의식을 잃으신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전마마께서 매우 위험합니다!!!”

“진맥은 제대로 된 것이냐? 어서 침을 놓고 호흡을 안정시켜야 한다! “

그러자 방울이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나 큰일입니다!! 지금 산실청의 의녀들 중 제대로 침을 놓을 수 있는 의녀가 없습니다. 게다가 모두들 혼비백산의 상태이고 의술이 뛰어난 내의녀님과 구름의녀님이 궁 안에서 유행하는 역병으로 인해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실제로 궁 안에서는 돌림병이 창궐하고 있어서 조짐이 있거나 병에 걸린 궁녀나 의녀, 그 밖의 신료들은 모두 궁 밖에서 요양 중인 상태였다.

악타이온은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급하게 말했다.“아니? 침을 놓을 수 있는 의녀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이냐? 허.. 이를 어쩌나...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때 산실청 내부에서 더 큰 비명과 통곡소리가 들렸다. 악타이온은 위험에 처한 중전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정리된 이성보다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의원 된 자로서의 본능이 먼저 나타나버린 악타이온은 자기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는 두 다리를 막을 수 없었다. 의녀 방울이의 당황함이 섞인 외침에도 산실청으로 향해 몸을 뻗쳤고 기어이 처소의 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그것도 지엄한 궁 안에서 여인이 해산하는 모습을 본 건 악타이온이 처음이었다. 악타이온은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중전을 둘러싼 의녀들을 밀치고 진맥을 하고 침을 놓았다.

놀란 의녀들과 궁녀들을 뒤로한 채 조금씩 의식을 찾고 있는 중전은 눈을 떴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앞에 웬 사내가 자신의 알몸을 빤히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해임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나, 남정네가 자신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 그것도 출산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이성적인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디아나중전은 담당의관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분노했다.

“당장 나가..!!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다른 의녀들은 막지도 않고 보고만 있었던 게야?”

당황한 악타이온은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허나 위급한 상태인 마마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서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악타이온은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이 나갔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디아나는 이 상황에서도 당장 바로 나가지 않고 변명한 악타이온이 증오스러웠다.

며칠 뒤 안정이 되고 궁녀들과 의녀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원자에게 신경 써야 할 시간에도 자꾸만 분이 풀리지 않는 이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이 나라에서 남자가 자신을 시료하고 심지어 해산하는 자신의 모습까지 보여줬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경계되었던 반대세력의 사람인 악타이온이 자신의 담당의관이 된 것도 불만스러운 일이었는데, 자신의 출산모습까지 봤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급기야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의녀들까지도 추궁했다. “너희는 어찌 그 상황을 막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것이냐? 나의 안위와 체면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인가?”

이를 듣고 의녀 방울이가 말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옵니다만 마마, 현재 궁 안에는 돌림병이 창궐하여 제대로 시침과 시료를 할 수 있는 의녀가 없었사옵니다.. 대감께서는 위중한 마마의 상태를 그냥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책망하신다면 부족한 저희를 꾸짖어주시고, 마마를 살려주신 대감께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에 디아나는 자신의 신성함이 모독된 것에 대한 분노를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고 더욱 분노했다. 방울이 의녀와 악타이온이 평소 두터운 사제관계라는 것을 눈치챈 디아나는 지밀상궁과 이에 대해 조용히 의논했다.

“악타이온이 반대세력에 신임을 얻는다고 들었네. 이대로 가다간 세자와 나의 자리까지도 위험해져. 게다가 이번에는 나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의원도 의녀도 그 누구도 노력하지 않았어.” 이를 듣고 지밀상궁이 말했다. “맞습니다. 마마께서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확실히 그쪽 세력의 사람들이 경계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마마의 자리를 지키려면 이번에 확실히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중전과 상궁은 의논하다가 자신의 외척세력까지 불러들여 이 일에 대해 모의하였다.


다음날 궁 안은 뒤집어졌다. “여봐라!! 악타이온대감을 당장 의금부에 넘겨라”

악타이온이 역모죄로 의금부에 끌려가게 된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악타이온은 소리쳤다. “무슨 일이오? 역모죄라니? 이게 어찌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이보시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소!!”

의금부로 끌려간 악타이온은 의자에 앉은 채 의금부 종사관에게 추궁을 당했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중전마마의 시료를 했으며, 얼마 전에 태어나신 원자마마의 안위까지 뒤흔든 것이냐? 지엄한 궁 안에서, 그것도 남녀의 유별이 심한 조선에서 어찌 의원 된 자가 중전마마의 시료를 직접 할 수 있는가? 아녀자가 직접 시침을 하고 시료를 할 수 있도록 의녀를 두었거늘, 아무리 위중한 상황이었을지언정 이 나라에서 역병의 창궐을 핑계로 남자가 중전마마의 시료를 직접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중전께서 그 일로 인해 칠정울결(스트레스)이 심하게 나타나고 계시지 않는가!

담당의관이라는 자가 그런 것도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악타이온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 의원 된 자로서 이번 일은 중전마마의 안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또한 이번 일이 어찌 역모죄와 관련이 있는 것이오? 게다가 원자마마의 안위까지도 뒤흔들었다는 것 또한 이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소리요? 난 억울하오!!”



그때였다. “중전마마 납시오~~” 중전 디아나가 친히 악타이온의 앞까지 당도한 것이다. 중전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나를 능멸하고 너의 세력을 위해 나를 이용했으며 원자의 안위까지도 해치려 했다. 이에 너를 그냥 둘 수 없어 조사를 하는 것이니 바른대로 고하도록 해라.”

“이 무슨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까 절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중전 디아나는 분노하며 말했다.

“네가 나의 지위를 이용해 역모를 꾸밀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원자가 태어났을 때도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 한들 나에게 몹쓸 짓을 한 건 경국대전을 뒤흔드는 근본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야.

왕실을 뒤흔들고 기어이 추문을 만들어서 원자의 지위까지 떨어트리려고 한 것이 아니냐! 세자책봉을 방해하려는 수작이 아니었더냐? 나의 목숨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악타이온은 벌벌 떨며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마마.. 아니옵니다... 마마의 목숨은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하기에 의원 된 자로서 그러한 행동이었으나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모역의 계획을 꾸민 것은 아니옵니다.. 마마 제발..”

중전 디아나는 흐느끼는 악타이온의 말을 끊고 명령했다.

“시끄럽다. 저 자를 법대로 처벌하라. 전하의 왕명이다.”


왕은 중전에게도 자초지종을 들었고 궁 안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중전의 말대로 따르고 명령했다. 증인은 모든 궁녀와 의녀, 왕실 사람들이 되었다.

악타이온을 두둔하던 의녀 방울이도 공모자로 몰려 지방의 관비로 보내졌다.

억울한 누명을 쓴 악타이온은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팔과 다리를 말이 달린 수레에 매달고 말을 달리게 하여 사지가 찢겨 죽는 능지처참(거열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중전 디아나에게는 어떠한 자비도, 용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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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어릴 때부터 아주 인상 깊게 읽었던 유명한 악타이온의 이야기를 각색하였다.

디아나의 성격과 억울하게 저주를 받은 악타이온의 모습을 보며 조선시대 사극으로 접목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적인 마음이 없었던 악타이온을 중전의 담당의관으로 표현했다.

원전에서도 순결하고 도도하며 자신에 대한 남성의 접근을 금기시하며 활과 화살로 무장한 디아나의 모습에서 조선시대 권력을 가진 왕궁의 여인이 떠올랐고 이를 권력이 강하고 경계심 많은 중전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원전의 이야기에서는 디아나가 목욕 중인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어 악타이온에게 사슴으로 변하는 저주를 내렸고 결국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려 뜯겨 죽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출산 중인 중전의 모습을 장막 없이 날것 그대로 목격하게 되고 중전에게 모욕감을 안기고 급기야 역모죄로 몰리게 되어 결국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다. 또한 출산이라는 고귀한 과정을 순결에 연결시켰다. 의술이라는 소재를 넣으면서 개연성을 나타내는 것이 어려웠지만 의원 악타이온은 그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목적만이 있었을 뿐이며 어떠한 악의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 썼다.

결국 원전의 악타이온처럼 불운한 캐릭터인 것이다.


악타이온은 그저 우연히 디아나 여신의 알몸을 감상했을 뿐이고 조선 의원 악타이온 역시 그저 의원으로서 사람을 살렸을 뿐이다. 또한 소설 속 중전을 간호한 의녀들은 디아나의 목욕준비를 도왔던 요정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중전을 끝까지 보호하는 역할이지만 신화 속에서도 알몸을 전부 다 가릴 수 없었듯이 소설 속 의녀들도 중전의 출산 후 모습이 악타이온에게 공개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나중에는 중전의 증인이 된다. 극 중 내용 연결을 위해 의녀 방울이만은 제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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