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en Tree Nov 28. 2023

체념도 때론 인생의 정답이 될 수 있다

장자의 '장자'

서울은 내 마음속 동경의 도시다. 가끔 가는 서울의 복잡함과 서울만이 갖는 특유의 도시 내음은 나를 설레게 한다. 얼마 전 딸아이와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벅차 밤잠을 설쳤다. 설레는 맘으로 아메리카노 한잔을 손에 쥐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해 있었다. 많은 인파와 특유의 복잡함은 서울에 왔음을 실감 나게 했다. 혹시라도 딸아이를 놓칠까 싶어 손을 꼭 잡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무빙워크에 몸을 맡겼다. 무빙워크 위에서도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걷는다. 사람에 밀려서 지하철에 간신히 탔다. 딸은 낯선 사람들 틈에서 겁에 질린 얼굴이다. 내 손을 더 꼭 잡는다. "저 내릴게요. 지금 내려요."라는 말을 몇 차례 뱉어낸 후, 가까스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빠진다. 주말 오전에도 이렇게 북적이면 출근길에는 어떨까. 듣기만 했던 서울 지옥철의 모습이 떠오른다. 서울만이 가진 복잡함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서울을 동경하던 마음이 조금 사라진다.

  



지방 대도시에 거주 중인 나는 서울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아침마다 교통체증을 겪는다. 교통체증을 겪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어 아침에 조금 일찍 나오는데도 어떤 날은 이른 시간부터 교통체증이 시작된다. 지각하기 싫어 옆 차선으로 끼어들기도 해보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반복하며 나름 곡예 운전을 해서 아슬아슬하게 직장에 도착한다. 지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직장에 메여 사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싫을 때도 있다. 도로에 발이 묶여 시간을 보내다 도저히 정해진 출근 시간에 도착할 수 없을 때도 생긴다. 이런 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몇 분 남았을 땐, 초조하던 마음이 체념의 마음으로 변하더니 나중엔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된다. 어차피 시간 안에 갈 수 없으니 맘 편히 지각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몇 분 전에는 아등바등 분주하던 맘이 몇 분 지났다고 편안해지다니. 인간의 맘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간사하고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아니 나의 마음을 향해 장자는 말한다.   

  

뜻을 한결같이 하여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야 할 것이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야 할 것이다. 귀는 듣는 데에 그치고 마음은 지각에서 그치지만, 기는 텅 비우고 사물을 응대하는 것이다. 오직 도만이 비우는 것에 모이는 것이다, 비우는 것이 마음의 재계이다.

                                                                                         -장자 4편 인간세(人間世) 1장 中-     


장자 4편 인간세(人間世)는 인간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자는 안회와 중니의 대화를 제시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심재(心齋)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회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장자는 마음을 비우라고 말한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 출근길 지각을 면하고자 노력했지만 내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된 순간 출근 시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 사는 세상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정해진 틀에 딱 맞춰 오차 없이 살기란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도 있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쓰며 집착하면 결국 나만 힘들어질 뿐이다.

    

인생은 우리의 계획대로 절대 순순하게 흘러가 주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손님처럼 찾아오고 곳곳에 넘어가야 할 장애물들 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 쓰고 걱정하며 살기엔 주어진 삶이 짧다는 생각이 든다. 장자의 문장을 읽으며 지나친 집착과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몇 분 늦었다고 나를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자.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