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에 밑줄 긋기
아빠는 3월 봄날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우리는 따뜻한 햇살 속에서 아빠를 보냈다.
따뜻한 봄이 올 때면 3월 아빠를 보낸 날이 생각난다.
구정 연휴가 유난히 늦었던 해였다.
2월 끝자락에 있던 구정 연휴.
그때 나눈 대화가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정확한 대화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분위기는 생생하게 떠오른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아빠의 모습이 싫다고 말했던 것 같고, 내 말을 역시나 무기력하게 듣고 있던 아빠는 뜬금없이 한마디 하셨다.
"그냥, 이렇게 살다 가게 냅둬."
아빠는 그때부터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옴을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친정에 갈 때면 어디까지 왔냐고 수차례 전화를 하시고, 집 앞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셨는데.
그땐 그렇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정을 떼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빠의 낯선 태도가 서운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의 낯선 태도가 못내 서운했던 속 좁은 딸은 아빠에게 완전 삐진 채 일상을 살아가기 바빴다. 전화버튼도 누르지 않았고, 안부를 묻는 문자도 보내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3주 정도 지났다.
이십여 일 후 나는 아빠의 임종을 지키게 됐다.
임종을 지키며 '죄송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말들을 쏟아냈지만.
마음 한 켠은 아쉽고 씁쓸했다.
그리고 아팠다.
아빠를 떠나보낸 지 여덟 해가 지났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여덟 해 전으로 잠깐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살갑게 아빠의 안부를 물으며 아빠가 좋아했던 채 썬 오이가 듬뿍 올라간 짜장면을 함께 먹고 싶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며,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를 생각해 본다.
공간들 사이에 문지방이 있듯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
시간의 분류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잉여의 시간이 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쓰임도 없는 시간.
오로지 자체만을 위해서 남겨진 공백의 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매던 생을 이 공백의 시간 안에서 발견하고 놀란다.
다가오는 입원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판결을 기다리는 환자처럼.
소리가 있다.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살아있는 소리.
일상의 소리.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남긴 그의 글을 읽으며 아빠의 죽음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빠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슴을 아렸다.
철학자 김진영은 일상의 소중함을 자주 언급한다.
단조로운 일상이 그가 표현한 것처럼 일상 속 눈에 띄지 않는 잉여의 시간들이 죽음의 문턱에선 몹시 그리울 듯싶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빠의 죽음.
언제가 될지 궁금하면서도 두렵기만 한 나의 죽음.
그리고 후회와 슬픔을 가득 안겨줄 것 같은 내 주변 타자들의 죽음.
죽음의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나의 삶과 나를 둘러싼 타자들과의 관계에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는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다.
가시 돋친 말이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람 한다.
그리고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오늘도 잉여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