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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Feb 04. 2024

글 쓸 때, 내가 조심하는 두 가지

다섯 번째 이야기

염원했던 책 출간을 앞두고 마음이 어수선했습니다. 핸드폰 연락처 앱을 열어 주변 지인들과의 친밀도를 고려하여 어느 범위까지 책 출간을 알려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킬 것 같아 걱정도 되더라고요. 기대와 걱정, 기쁨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늘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처럼 제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도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흘러갔습니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출판사와 계약서를 작성한 후,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출간소식을 알렸어요. 때마침 갖게 된 시댁 모임에서 시댁 식구들에게도 책 출간 소식을 전했어요. '우와'라는 탄성과 함께 '대단하다', '축하한다'는 세상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잠시 후, 시누이가 "올케, 혹시 우리 가족 이야기를 쓴 건 아니지?"라고 묻더라고요.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일 텐데, 좋았던 기분은 금세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기분이 꽤 불쾌하더라고요. 내가 지금까지 시댁에서 겪은 일을 책으로 쓰면 전집은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시누이에게 엉뚱한 답을 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나쁜 얘기는 안 써요."라고요.

시댁식구 얘기를 썼냐고 물었는데 타인의 안 좋은 이야기는 안 쓴다는 엉뚱한 답을 해버린 거죠. 제 말을 듣고 갑자기 분위기는 서늘해졌어요. 시댁 식구들이 제게 베풀어주신 좋은 일도 많은데 시누이의 질문에 묘하게 기분이 상해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죠.


글 쓸 때, 제가 조심하는 첫 번째는 타인의 이야기를 전할 때입니다.

제가 아직까지 글감으로 쓰지 않은 것이 남편과 시댁식구 이야기입니다. 이 주제로 글을 썼다가는 감정에 치우쳐 타인에게 상처 주는 글을 쓸 것 같거든요. 이상하게도 이들과의 이야기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에 메여 있는 것 같아요. 희한한 일입니다. 제가 많이 부족한 탓이죠.

'중학생의 세계' 출간기획서를 출판사에 투고할 때, 한 출판사의 편집자님은 제게 이런 이유로 거절의 메일을 보내셨어요. 메일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님께서는 현존하는 타인의 이야기를 초보 작가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거절의 메일이었지만 제게는 좋은 조언이 되었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할 때, 저는 감정이 아니라 행위 위주로 서술하려고 노력해요. 작가는 어떤 인물을 천사로도 악마로도 만들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보다는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죠. 또한 제가 쓴 글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글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글이라는 기록은 평생 남는 만큼 타인의 이야기를 전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모자라지 않는 것 같아요.




글 쓸 때, 제가 조심하는 두 번째는 단어 사용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세 분의 편집자님을 만났어요. 중간에 바뀌신 분들까지 하면 일곱 분 정도 되는 것 같네요. 편집자님과의 대화는 주로 이메일이나 카톡, 전화로 이루어졌어요. 얼굴을 뵙고 이야기 나눌 때도 몇 번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주신 편집자님이 계시는데요.


편집자님께서 제게 주신 피드백은 "시류에 영합한 단어 사용은 적절하지 않다."입니다.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문장은 수십 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용어들로 구성되는 것이 좋고 그래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가 있다는 조언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뻑',  '읽씹'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시간이 지난 후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안정된 단어들로 책을 구성해 보자고 하셨죠. 편집자님의 말을 듣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저도 가끔은 눈에 띄는 제목을 정해보고 싶어서 또는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 유행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줄임말을 쓸 때가 있었는데 이런 저의 글쓰기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편집자님과 함께 작업하며 안정된 단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고자 노력했고 지금은 글 쓸 때 염두에 두는 것 중에 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책 출간 역시 저자 혼자 애쓴다고 되는 일 같지 않아요. 편집자님의 예리한 조언, 디자인팀의 눈에 띄는 표지구성, 그리고 마케팅팀의 탁월한 홍보전략 등 모두가 팀워크를 발휘해야 책 한권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탄탄한 구조로 무너지지 않는 건실한 책 한 권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주변의 조언도 경청하고 버리고 고쳐야 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저자의 마음도 필요하고요. 가끔은 내가 애써 쓴 문장을 수정하자니 속상하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는 나인데 너무 지나친 간섭 같아 불편할 때도 있지만 저자나 편집자나 출판사나 모두 좋은 책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해요. 아집에 빠지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좋은 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출간하며, 그리고 책 출간을 준비하며 편집자님과 나눈 이야기 중, 마음속에 저장해 둔 두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미약하나마 글쓰기가 인생의 즐거움이신 여러 작가님들께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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