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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May 27. 2024

나이듦이 두렵지 않게 하소서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종종 전화로 안부를 나누긴 했지만 대면은 꽤 오랜만이다. 얼굴을 보고 만남을 갖자니 반가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두려움의 원인이 뭘까 고민하다 문득 '노화'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흔 중반에 들어선 나는 노화의 흔적을 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옷장을 열어 이 옷 저 옷을 꺼내보고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고자 새치염색까지 강행하며 친구와의 만남을 분주하게 기다렸다. 호들갑을 떠는 요란한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으나 노화를 어떻게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며칠의 노력으로 노화의 흔적을 숨기긴 어려웠다.


드디어 친구들을 만나는 그날이다. 몽글거리는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몇 년만의 만남이 무색할 정도로 우린 서로 반가움을 표시했고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아주 친밀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갔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얼굴을 보는데 문득 가슴 한켠이 시렸다.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들 왜 이리 늙어버린 거야'라는 생각에 주책맞게 눈물도 핑 돌았다. 큰 눈에 웃을 때마다 살짝쿵 보이던 눈웃음이 매력이던 A는 웃을 때마다 눈가 주름이 깊게 파여 누가 봐도 중년여성이었다. B의 정수리에는 한 움큼의 흰머리카락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C는 갱년기를 대화 주제로 꺼내며 입가에 찐득한 팔자주름을 보여줬다. 목소리도 그대 로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20년 전 그 모습 그대 론데 외모는 많이들 달라졌다. 나의 노화와 마주할 때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당황스러워 미칠 지경인데, 친구들의 달라진 외모를 보고 있자니 세월의 무상함에 코끝이 찡했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보다 늙어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세 시대'라는 말을 들으면 오래 살 수 있는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도대체 노인으로 몇 년을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너무 오랜 기간 노인으로 살고 싶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노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노인이 된 나는 꿋꿋하게 일상을 버티며 살아갈 것이다.

노인이 된 나의 일상을 생각하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를 집어 들었다.


키케로가 전한 문장 중 하나를 소개한다.


"인생의 주로(走路)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지.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완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키케로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노년기의 걱정과 불편함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노년기의 긍정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그리고 건강하게 노년을 보낸 인물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삶을 묵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이 책을 펼쳐본다.


그는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노년에는 큰 일을 할 수 없다.

둘째,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셋째,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넷째,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키케로가 제시한 네 가지 두려움은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살다 보니 인생에는 버텨내야 하는 과업들이 몇 가지 있는 것 같다. 시간의 흐르면서 자연스레 펼쳐지는 자연의 이치처럼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나이 듦을 풍미 가득한 포도주가 익어가는 과정에 흔히 비유한다. 하지만 오래된 포도주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듦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키케로의 말처럼 인생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즉 완숙미를 갖춘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허약함을 이겨내고 때론 저돌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통해 위엄 있는 자태를 갖추어야 한다.


최근 흥미로운 중년을 꿈꾸며 마흔을 주제로 한 자기 계발서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중년에 무언가를 시작해도 늦지 않은 100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00세 시대가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모르겠지만 노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우리에겐 많이 주어진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노화와 마주해야 할까?




5월이 되면 옥수수 아저씨의 트럭을 기다린다. 아저씨의 등장을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찰 옥수수 한 봉지를 샀다. 쫀득쫀득 너무 맛있어서 앉은자리에서 옥수수 한 봉지를 먹어치웠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부모님의 노화와 죽음을 마주하며 갑자기 부모님 생각에 뭉클해질 때가 있다. 옥수수를 먹다 문득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났다. 옥수수를 좋아하던 아빠가 노인의 되시고 이빨이 좋지 않아 옥수수를 드시지 못해 속상해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옥수수를 마음대로 뜯어먹지 못하는 날이 분명 올 텐데 하는 생각에 노화가 문득 두려워졌다. 이럴 때면 키케로의 문장을 살펴본다.


노화가 두렵게 느껴지거나 노화의 흔적을 마주하며 한숨이 깊어질 때는 노년기의 삶을 예찬한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를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그의 문장을 마주하면 나이 듦이 속상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노화의 흔적을 감추고자 보톡스를 맞아야겠다는 생각도 조금 잠잠해진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말고 자연스레 나이들고 싶다는 다짐이 마구 싹튼다.


이십 대 때는 삼십 대가 두려웠고 삼십 대에는 사십 대가 두려웠다.

하지만 마흔 중반인 나는 이십 대에도 삼십 대에도 사십 대인 지금도 그냥 비슷하게 시간을 견뎌내며 익어가고 있다. 노인이 되어도 완숙미를 뽐내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노화를 갱년기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면 두 눈이 질끈 감기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스레 나의 노화를 인정하며 위엄 있는 중년 여성이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나에게 100세 시대가 부디 축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인용 출처 :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6,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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