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승리는 당신 덕분입니다.

야구장에서 만난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by Golden Tree

무더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일찍부터 찾아와 늦게까지 머무는 여름 덕에 계절이 두 가지로 나뉜 것 같다.

덥거나 아니면 춥거나. 게다가 올여름은 역대급 폭염으로 숨쉬기도 힘든 지경이다. 습도까지 더해져 밖에 잠깐 나갈 때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렇게 더운 재난 급 날씨에도 야구 경기는 이어진다.

9회 때론 11회까지 이어지는 장시간의 경기를 감내하는 선수들을 보면 그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특히 온갖 보호 장비로 무장한 포수를 볼 때면 걱정은 배가 된다. 포수는 팀에서 상당히 중요한 포지션이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선수는 없겠지만. 포수(捕手, Catcher)는 본루(本壘, Home Base)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는다. 그리고 투수가 적절한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영리하게 신호를 보낸다.


좋은 포수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능력이 요구된다.


우선 야구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잘 계산하여 투수에게 적절한 공 배합을 요구하고 경기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눈치 빠르게 도루를 저지해야 하며, 때론 잽싸게 땅볼을 막아내는 등 다방면에서 뛰어나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좋은 포수가 되기 위해서는 출루율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수비와 공격 모든 면에 탁월해야 하는 셈이다. 빠른 눈치, 명석한 두뇌, 경기의 흐름을 읽는 감각, 게다가 역대급 무더위를 이겨낼 강인한 체력까지. 이 모든 것이 포수가 갖추어야 할 자세다.

포수는 평균 구속 144.2km/h(2022 KBO기준)의 공을 잡아낸다. 빠른 공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살뜰히 보호해야 한다. 헬멧, 마스크, 프로텍터(몸통보호대), 렉가드(무릎 보호대)를 반드시 착용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안전한 경기를 위해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보호 장비를 모두 착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무더위에 보호 장비를 꼼꼼히 착용한 포수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해 보인다.


며칠 전 경기종료 후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한 투수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볼 배합 덕분에 오래 공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승리는 포수 덕분입니다. 그가 있어 이길 수 있었어요"


포수는 투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지만 좋은 투수 곁엔 늘 좋은 포수가 있다. 곁에서 묵묵히 투수를 도우며 신호를 교환하는 보호장비 속 날카로운 포수의 눈빛을 보면 삶을 사랑하라고 말한 '에리히 프롬'의 문장이 생각난다.



에리히 프롬에 대하여


현대철학을 이야기 할 때, 빠짐 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에리히 프롬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시절이었다. 진정한 사랑을 꿈꾸던 스물 한 살, 도서관 서가에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에 끌려 에리히 프롬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의 글은 가까이하기 쉽지 않았다. 그랬던 그의 책에 본격적으로 관심 갖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불편한 마음이 나를 지배하던 그 때였다. 꽉 채운 하루를 산 것 같은 날도 무언가 허전하고 하는 일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는 불안했다. 늘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을 해소하고자 닥치는대로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희망의 혁명'까지 읽으며 그의 이야기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독일계 미국인이다. 그는 정신분석학자이기에 인간의 심리를 관통하여 예리하게 표현했다. 1929년부터는 베를린에 정신분석상담소를 운영했고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도 일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잔혹한 현실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프랑크푸르트 연구소를 미국으로 옮였다. 그의 연구소는 1934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으로 이주했고 그 중심에는 에리히 프롬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승승장구만 있지 않다. 그는 미국으로 오자마자 만성적 결핵에 걸렸고 건강이 좋지 않아 연구소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41년 마침내 그의 대표작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발간되었다. 이 책은 출간 이래 5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28개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주목 받았다. 몇 번의 심장마비를 겪우며 건강은 악화되었지만 제자 풍크의 도움을 받아 1976년 '소유냐 존재냐'를 집필했고 또 한번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1977년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결국 1980년 3월 18일 아침. 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채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아래 전하고자 하는 에리히 프롬의 문장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 있으며 이 책은 제자 풍크가 에리히 프롬 사후 그의 글을 편집하여 내놓은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모습 (출처: 나무위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굴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눈과 피부에서는 무언가 뿜어져 나온다.
그의 주변에서 환하게 빛이 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삶을 사랑한다.
이런 삶에 대한 사랑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삶에 대한 사랑이 약해지면 사랑은 다시 사라지고 두 사람은 왜 서로의 얼굴이 여전히 같으면서도 더 이상 같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中-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것들


공 하나도 허투루 던지지 않고 여러 차례 신호를 주고받는 포수와 투수의 모습을 보면 야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특히 요즘처럼 정규시즌이 끝날 무렵엔 한 경기, 한 경기가 큰 의미를 갖기에 선수들의 작은 몸짓에서도 비장함이 엿보인다.


야구뿐 아니라,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삶을 사랑하고 진심인 사람은 표정, 말투부터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은 주변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 무더운 여름의 출근길, 방앗간처럼 들리는 카페가 있다. 텀블러에 얼음을 잔뜩 넣어 아메리카노를 사간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은 직장생활의 고난과 역경을 잠시 잊게 해주기에 요즘 내 필수품이다. 매일 아침 사장님은 밝은 미소로 커피를 건네며 '오늘도 좋은 하루!'라고 외친다. 밝고 긍정적인 사장님 덕분에 매일 좋은 에너지를 받아간다. 사장님의 긍정적 기운을 받을 때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주어진 하루를 긍정적으로 감내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튼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이고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이 싹튼다. 분명 카페 사장님의 하루도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닐텐데 그녀는 삶을 사랑하기에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기운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삶에 대한 애정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화려한 기술로 주목받지 못해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무더위를 견뎌내는 야구에 진심인 포수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진심은 전달되는 법이다.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삶을 버틸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삶을 감내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조금 힘들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웃으며 하루를 견디고 싶다. 나의 잔잔한 미소가 누군가에게 살아갈 좋은 기운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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