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면 야구를 볼 수 있다.

야구장에서 만난 장자의 '장자'

by Golden Tree

신인 드래프트


신인 때부터 야구 인생이 술술 풀리는 선수가 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야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당연한 듯 매 경기 안타와 홈런을 날리며 기록을 경신한다. 앞으로 그의 야구 인생은 탄탄대로만 펼쳐질 듯하다. 구단에서는 뛰어난 신인을 모셔오고자 경쟁한다.


프로구단들은 하반기에 접어들 무렵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를 선발한다. 신인 드래프트 신청자는 고교 졸업 예정자, 대학 졸업 예정자, 얼리 드래프트(Early Draft) 신청자(일반적인 드래프트 지원 조건을 갖추자마자 1년 이상 당겨서 일찍(Early)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KBO에서는 2022년 하반기부터 대학교 2학년 선수들의 얼리 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한다.), 트라이아웃 참가자(스포츠에서 행하는 선수 선발 테스트이자 입단 테스트로, 연습 경기를 통해 선수의 기량을 확인하고 영입을 결정하기 위한 제도다.)등을 포함하여 진행한다.


신인 드래프트는 1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진행되며, 모든 라운드마다 전년도 최종 순위 최하위 구단부터 역순으로 지명하게 된다. 각 팀은 11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으며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의 지명권을 패스하기도 한다.


지명된 선수는 구단에서 준비한 유니폼을 입고 환한 미소로 사진 촬영을 하며 앞으로 경기에 임할 의지를 다진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어린 나이에 확고한 진로를 찾은 것이 대견하다. 마흔 중반임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내게 어린 선수들의 미소는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인 선수들은 지명받은 팀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가장 활약이 뛰어난 신인에게는 신인상이 수여된다.

신인 선수라면 태어나서 꼭 받고 싶은 신인왕.

인생에서 한 번밖에 그리고 지금 시기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상이기에 어떤 상보다도 의미 있고 값진 상이라 생각한다. 매년 시즌이 끝날 무렵 이번 신인왕은 누가 될지 궁금하다.


2024년 내 마음속엔 응원하는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선수가 받을 확률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역시나 신인상은 다른 선수가 받았다. 하지만 내가 응원했던 선수가 경기 종료 후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올해의 신인왕으로 뽑히면 어떨 것 같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그는 “물론 감사하지만, 뽑히지 않아도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을 듣다, 장자가 전한 문장이 생각났다.




장자는 누구인가


장자(莊子)는 전국 시대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노자(老子)와 함께 도가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장자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화다. 그는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장자는 상식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는다. 당시 유교에서 말하는 도덕적 가르침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장자의 대표적 저서인 [장자]는 33편이 현존한다. 내편(內編), 외편(外編), 잡편(雜編)으로 나뉘는데 장자 자신이 내편을 썼고, 그의 제자와 같은 계열의 철학자들이 외편과 잡편을 썼다고 전해진다. 장자는 두껍고 동양철학은 난해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읽는 책은 아니다. 나도 용기를 내서 한차례 완독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생각보다 재밌는 부분이 꽤 많다. 이솝우화를 읽는 느낌이랄까. 생각할 만한 재밌는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여 읽는 동안 즐거웠다. 그리고 완독 한 후에는 두꺼운 벽돌책을 읽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장자 24편 서무귀 4장의 문장이다.


지략이 있는 사람은 심사숙고할 변고가 없으면 즐겁지 못하고,
변설이 능한 사람은 말할 실마리가 없으면 즐겁지 못하며,
잘 살피는 사람은 욕하고 꾸짖을 일이 없으면 즐겁지 못하니 모두 사물에 얽매인 사람들이다.

농부는 풀을 벨일이 없으면 즐겁지 못하고,
상인은 시정의 일이 없으면 즐겁지 못하며,
뭇사람은 아침저녁으로 일이 있으면 힘쓰고 기술자는 기계의 기교가 있으면 씩씩하다.

탐욕스러운 자는 돈과 재물이 쌓이지 않으면 걱정하고,
과시하는 자는 권세가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슬퍼한다.
이들은 모두 세월에 순순히 따라서 사물을 바꾸지 못하는 자들이다.

자기의 몸과 본성을 내달려서 만물에 침참하여 죽을 때까지 돌이키지 못하니 슬프구나!





나는 행복합니다


장자는 얽매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즐거움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걱정과 슬픔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누구나 최고가 되길 꿈꾸며 잘하고자 애쓰며 산다. 때론 타인과 비교하며 괴로워하고 스스로 만든 기준에 못 미쳐 자책할 때도 있다.

자연의 순리대로 만족하며 살면 힘들지 않을 텐데,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생산해 내며 힘들어한다.

내 마음만 조금 바꾸면, 내 욕심만 조금 내려놓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부터 내가 응원하는 팀은 가을야구(포스트시즌)에 딱 한번 진출했다. 그 외에는 늘 하위권에 머물렀다. 연패의 늪에 빠진 적도 엄청 많았고 잘하다가 9회에 늘 아쉽게 패배한 적은 셀 수 없다. 화가 나서 TV를 껐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TV를 켜고 응원했다.


이런 내게 어떤 이는 다른 팀을 응원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내가 야구를 보는 한 나는 끝까지 내가 응원하는 팀만 응원할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선수처럼 야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때가 있다.


2025년 시즌 개막(3월 22일)까지 69일 남았다.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조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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