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만난 장자의 '장자'
2025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정규 시즌 마무리에 이를 즈음, 야구팬들은 5위 안에 속할 팀과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며 승자의 여유를 만끽할 팀이 어디가 될지 궁금해한다. 특히 이번 2025 시즌같은 경우, 5위와 1위 자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2025 시즌 5위와 1위 팀이 확정되며 순위가 정해졌다. 그순간,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울었다. 1위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하기 바빴다. 마지막 경우의 수가 펼쳐지는 날이 밝았다.
1위의 패배, 2위의 승리.
만약 이 결과가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오랜 야구 팬으로서 중계방송 시간을 기다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TV 앞에 앉았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상대 팀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며 결과를 예측했다.
대타로 등장한 선수가 홈런을 쳤다. 그리고 심지어 상대팀은 지고 있다. 정규시즌 우승. 말로만 듣던 1등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9회말 2아웃.
아웃 하나만 잡으면 경기는 승리로 끝난다. 승리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야구는 모른다던, 아무도 모른다던'는 그 말은 진리였다.
아쉬움이 큰 경기였다.
속상한 마음에 급하게 TV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인간이 참 간사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초반 '부디 가을야구만 가게 해주세요'라는 나의 소원은 일찌감치 이루어졌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었다. 예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큰 발전임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분명 2등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자리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어떻게 매번 이기겠는가. 그리고 선수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다. 나 또한 야구를 보며 그 어느 때보다 매우 행복했다. 그리고 아쉬워만 할 순 없다. 아직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간사한 내 마음을 되돌아보다 문득 장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차이의 면에서 살펴보면
자신이 크다고 여기는 것으로 크다고 하면 만물이 크지 않은 것이 없고,
자신이 작다고 여기는 것으로 작다고 하면 만물이 작지 않은 것이 없네.
천지가 돌피의 알이 되는 것을 알고, 털끝이 산억덕이 되는 것을 안다면 차이의 정도를 보게 되지.
공적의 면에서 살펴보면
자신이 쓸모가 있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쓸모가 있다고 하면 만물이 쓸모가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자신이 쓸모가 없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쓸모가 없다고 하면 만물이 쓸모가 없지 않은 것이 없게 되네.
동쪽과 서쪽은 서로 반대되지만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안다면 공적을 나누는 것이 정해지게 되지.
취향의 면에서 살펴보면
자신이 맞다고 하는 것에 따라 맞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맞지 않은 것이 없고,
자신이 그르다고 하는 것에 따라 그르다고 하면 만물이 그르지 않은 것이 없게 되네.
나이듦이 마냥 속상하지 않을 때가 있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 내 모습과 마주할 때.
타인에게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덜 하고자 노력할 때.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여유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나이 들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늙어가고 있음이 가끔 좋기도 하다.
장자의 문장과 마주할 때도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장자가 전하는 문장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위에 소개한 문장은 현존하는 장자 33편 중 명편으로 꼽히는 17편 추수(秋水)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익숙함을 전한다. 그 익숙함은 때론 고정된 생각을 갖게 한다. 이왕이면 1등을 해야 한다는 그리고 1등은 마냥 좋을 것이라는 것처럼. 하지만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또는 좀 더 열린 눈으로 세상과 마주한다면 1등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세상만사가 대체적으로 모두 그렇다.
갈등이 있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 힘겨운 삶의 순간도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이해 못할 것도 용서 못할 사람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어느 분야든 1등은 주목받기 마련이며 1등의 자리를 누구나 욕심낸다. 하지만 1등의 자리는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 있어야 하고 적절한 행운도 따라주어야 얻을 수 있다. 어렵게 획득한 자리인만큼 1등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상당하다. 하지만 1등의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과 어떻게든 이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기쁨 못지 않게 크다.
그렇다면 2등은 마냥 아쉽기만 할까? 그렇지도 않다. 결핍은 동력을 선물하는 법이다. 1등의 자리에 오르 위해 노력하며 여러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자의 말처럼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경기가 끝나고 가장 속상하고 아쉽고 안타까웠을 사람은 경기에 참여한 선수였을 것이다.
부디 이 경기의 패배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번 이기는 선수도 매번 잘하는 선수도 없다.
이번에 치룬 경기가 앞으로 남아 있는 선수 생활에 큰 자산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힘내서 남아 있는 경기를 잘 해줬으면 좋겠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번 일이 인생의 선물이 될 수 있는 법이다.
1등이나 2등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실력과 노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그런 위치다. 순위만 구분될 뿐, 선수들 모두 고생했고 애썼다. 모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코 끝에서 찬 공기가 느껴질때마다 야구를 볼 수 없는 날이 다가오고 있어 아쉽다.
유독 아쉽다는 생각이 크게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