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시장을 처음 접한 건 조리원에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큰 아이를 출산한
2009년에는 영아 다중 지능이 유행했다.
다양한 감각적 자극을 통해 두 돌 이내에 대근육과 소근육의 고른 발달을 이루어 내는 것이 영아들의 과업이었다. 산후조리를 하면서도 엄마들은 자녀가 빨리 과업을 달성하길 원했다. 이런 엄마들의 심리를 꿰뚫은 영업사원들은 조리원을 자주 찾았다.
영업사원들은 하나같이 영아들에게 자극을 주려면 교구와 책, CD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을 묶어 전집으로 팔고 있음을 소개하며 책자를 건넸다. 가격은 사악했다. 전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됐다.
같이 출산한 산모들이 전집을 결제할 때마다 나도 마음이 바빠졌다. 지금 다중 지능 개발에 소홀히 하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는 희한한 망상도 생겼다. 그리고 내 아이만 뒤쳐지게 둘 순 없었다. 어느새 나도 카드를 꺼내 할부로 전집을 들였다.
이게 내 사교육의 시작이다.
아들의 사교육은 예체능과 영어로 차츰 확대되었다.
6학년때부터는 수학이 추가되었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과학이 그리고 중학교 졸업 무렵엔 국어까지 더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학교에서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희망자에 한해 이루어지는 야자를 아들은 꼬박꼬박 하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학원은 10시 이후에 가거나 주말에 간다. 10시까지 공부한 아들이 버스를 타고 학원까지 가기엔 힘들 것 같고 시간도 빠듯해 수요일과 목요일에 학원 라이딩을 하고 있다.
10시에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차에서 아들에게 간식을 주고 10시 30분에 학원 앞에 내려준다.
그리고 12시에 학원 앞에서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간다. 이 일정은 꽤 고되다.
하지만 나보다 공부하는 아들이 더 힘든 걸 알기에 되도록 힘든 내색은 안 하려고 애쓴다.
어젯밤.
아들을 데리러 9시 40분쯤 주차장에 가서 차에 탔다. 피곤한 눈을 비비곤 창문을 내렸다.
시동을 걸고 밖으로 나오며 신세계를 만났다.
시원한 바람과 여름밤공기에 설레였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익숙한 노래가 나오며 행복을 배가시켰다. 노래를 듣다 보니 나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 생각났다. 야자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며 나름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 고민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옛 기억까지도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다. 라이딩하며 여름밤을 온전히 느꼈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초점책을 보고 헝겊책을 쪽쪽 빨던 콩알만 하던 아기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 눈엔 아직도 아기인데, 이 놈도 이런저런 삶의 고민을 감내하고 있을 것 같아 안쓰러웠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괜히 마음이 찡했다.
다음 주부터 아들의 기말고사가 시작된다.
장장 5일간 치러지는 이번 시험에서 부디 노력한 것에 합당한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크게 좌절하지 않고 다음을 준비할 동력을 얻었으면 좋겠다. 공짜는 없는 법이며, 성실함은 언젠간 보상을 주는 법이다.
엄마의 삶은 고되지만, 자식을 통해 많은 걸 배워간다.
학원 라이딩을 하며 지나간 삶도 되돌아봤고, 지금의 삶도 마주할 수 있었다.
여름밤, 학원 라이딩을 하며 인생의 소중함을 배웠다.
엄마로 살아가며 이제서야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