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마흔다섯 번째 생일이다.
두 명의 아이 모두 시험기간이기에 생일 아침 미역국은 생략했다. 내 탄생의 기쁨 보다 그들의 시험이 우선인 법이다. 그깟 미역국이 대수일까.
마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은 조금 특별했다. 기분이 벅차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아무튼 묘하다.
오년 전, 마흔이 되던 생일이 기억난다.
친한 동료는 선배 인생에서 젊음은 종지부를 찍었다며 어엿한 중년 여성이 된 걸 축하한다며 생일 케이크를 건넸다. 마흔 생일초의 불을 끄는 기분은 덤덤했으나 불안했다. 사십 대의 서막은 마치 노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고 서서히 저무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우울했다.
내게 사십 대는 노화의 징후들과 서서히 마주하는 쓸쓸한 나이였다. 그리고 내 머릿속, 사십 대는 젊은 시절 노력한 대가가 서서히 드러나야 하는 그런 나이이기도 했다. 보여줄 만한 성과가 전혀 없던 나는 사십 대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살아보니 사십 대의 삶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영원히 이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을 만큼.
사십 대가 되니 감정 근육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감정 조절에 항상 실패해서 힘들었는데, 사십 대의 나는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인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마음속 여유 공간이 생긴 기분이다. 이유 없는 불안과 절망, 두려움과 공포, 때론 질투와 시기로 얼룩진 내 불편한 감정이 마흔이 되면서 조금씩 좋아졌다. 살아온 삶의 시간이 자연스레 감정 근육이 되어 조금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마음공부를 많이 해서도 아니고 갑자기 삶의 깨달음을 얻어서도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가장 필요했던 건 시간이었다. 시간은 나를 마흔으로 만들어줬고, 조금씩 어른이 되게 해 주었다.
마흔을 살아가는 내게 공자가 전한 문장을 소개한다.
(子曰 ,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
공자의 문장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십 대는 역시 진정한 어른의 나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흔 넘어서도 함부로 말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건 절대 안 될일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엊그제 동료와 나눴던 누군가의 험담이 생각나며,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한편으론 사십이 되어서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이것저것 조심하다 진정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치고 후회하며 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밀려왔다.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단해지기 시작한 감정 근육으로 그 어떤 시기보다 자신을 진심으로 돌보기 좋은 나이도 사십대라 생각한다.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흔은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니 시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하고 자신을 아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타인에게도 베풀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어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마흔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노화의 징후들은 어른의 징표라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른답게 살 수 있는 매력적 나이를 살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십 대가 의미 있게 마흔의 시간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사십대여!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조용히 빛나시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