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교사 운'이라는 글을 읽었다. 글의 주된 내용은 좋은 담임교사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글을 읽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학생과 학부모가 좋은 선생을 만나고 싶듯, 교사인 나도 부디 좋은 학생과 정상적인 보호자를 만나고 싶다. 글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세상 온갖 신에게 간청한다. 그리고 조상님께도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부디 올해 괜찮은 학생과 정상적 보호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언젠가부터 교사의 지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학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셀 수 없이 다양해 몇 가지로 분류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친구 관계, 사춘기 특유의 지랄 맞음, 그리고 '이게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몹시 복잡한 가정사까지.
각자 처한 상황이 다양하듯 이것을 받아들이는 중학생의 태도도 각양각색이다.
요즘 중학생을 관찰하며 제일 걱정되는 모습은
"관종이 되어가는 아이"들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관심을 받고 싶다는 건, 관심과 애정에 대한 욕구가 적당한 시기에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춘기 시기에 관심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관심의 정도가 한도를 초과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들이 지내 온 유아기와 아동기 때의 애정이 결핍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과거에 비해 가정마다 아이가 한 두 명이라 애정 결핍 상황이 발생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희한하게도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들이 많다. 가정에서 일정 부분 담당해야 하는 교육의 기능이 여러 이유로 점차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가정에서 충분히 충족되어야 할 개인의 욕구까지 학교에서 감당하게 되었고 학교는 교육기관이면서 보육까지 맡아야 할 형편이다. 그리고 교사는 교육자에서 때론 양육자까지 역할을 확장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른에게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어 애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관심을 끌기 위한 확고한 목적이 있어 과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이들에겐 겁날 것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으며, 부끄럼움 따위는 남의 이야기이다. 오로지 관심만 받으면 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고 부적절한 모습에 화를 내며 꾸중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교사에게 과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측은해 보인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오죽 크면 저럴까 싶어 그 아이의 이름을 친절히 한 번이라도 더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너도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오늘도 내 앞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고,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고, 독특한 질문들을 쏟아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달라고 애원하는 학생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 또는 학생을 양육하는 보호자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이런 가정의 보호자는 지나친 방임으로 자녀를 양육한다. 아이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많은 걸 주어 모두 허용하거나.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까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하는 부모가 있다. 예를 들면 직접 담배를 사주는 부모가 있다. 연초담배를 피우지 말라며 전자담배를 손수 구입해 주는 부모를 만난 적도 있다. 연초담배나 전자담배나 무익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오죽하면 직접 담배를 사줄까 싶다가도 아닌 건 끝까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안 되는 건 어떻게든 안 된다고 알려주는 것도 분명 어른의 역할일 것이다.
자기 자식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못 앞에서는 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걸 허용해 주는 건 바람직한 자녀 교육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 이 정도 잘못을 저리르면 교사인 어른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까지 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몹쓸 자만심이 싹 터 아이들에게 악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모두 관종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가끔은 남편 또는 가족에게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조금 아파도 많이 아픈 척,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도 굉장히 슬프고 힘든 척 연기하는 순간이 있다.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관종이 되어가는 아이들.
이들에게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주면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라며 엄청 좋아한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확인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잠 쟈는 뇌세포를 풀가동 시켜 아이들 이름을 외우려 노력한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도 그들에겐 삶의 위로가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