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만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경기 도중 혹은 경기 종료 후, 덕아웃이나 불펜 또는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가 몸싸움을 벌이는 선수를 제지하거나 함께 싸우는 행동을 일컫는 용어다. 쉽게 말하면 집단으로 의견을 표시하는 강한 움직임이다. 이 과정에서 욕설이나 난폭한 행동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야구 경기 중 이런 광경을 볼 때가 있다. 처음 벤치 클리어링을 목격했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덩치 큰 선수들이 갑자기 떼를 지어 으르렁대는 모습은 무서웠고 저들에게 스포츠맨십은 존재할까 의구심도 들었다.
벤치 클리어링은 왜 생기는 걸까?
그리고 벤치 클리어링은 무조건 나쁜 걸까?
보통 상대팀의 보복성 플레이에 대한 억제 및 방어 수단으로 벤치 클리어링은 발생한다. 야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빈볼(Bean Ball)에 굉장히 민감하다. 콩을 뜻하는 빈(Bean)은 미국에서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된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빈볼은 투수가 타자의 머리를 향해 의도적으로 던지는 공을 뜻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머리가 아니더라도 고의적으로 타자의 몸을 맞히기 위해 던지는 공도 빈볼이라 부른다.
빈볼에 의해 타자들은 골절과 같은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부상은 경기 출전 기회를 박탈하기도 하고 팀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선수들은 빈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투수의 빈볼이 거듭되는 경우,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빈볼 이외에도 슬라이딩 시 선수들끼리 충돌하거나 주루 또는 수비를 방해할 때에도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한다.
야구 경기 곳곳에는 고의적으로 선수들에게 상해를 입힐 만한 위험한 순간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자본인 신체가 훼손되면 이번 시즌 뿐 아니라 영원히 선수 생활을 못할 수도 있기에 야구에서 벤치 클리어링은 어쩌면 선수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같은 팀의 선수를 상대 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집단적 움직임인 벤치 클리어링을 보며 시민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생각났다.
밀은 영국의 철학자이며, 그를 생각하면 그가 사랑했던 여인 해리엇 테일러가 함께 생각난다.
그는 [자유론] 서문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해리엇 테일러를 그리워하며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했다.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매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했던 사람,
칭찬 한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 주었던 사람, 함께 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
밀은 아버지 덕에 비교적 윤택한 생애를 보냈다. 밀의 아버지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주변의 유명한 지식인들을(예를 들면 벤담 같은) 밀에게 소개하며 자연스레 다양한 경험을 갖게 했다. 그리고 밀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인도회사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세계 각국의 지식과 문화를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자유론]은 자유에 대한 밀의 생각을 적은 에세이 형태의 책이다. 생각과 토론의 자유, 개별성,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현실 적용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개별성이 존중될 때 즉 자유로운 삶이 보장될 때 행복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전한다.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다 똑같은 물리적 환경과 대기, 그리고 기후 조건 속에서 살 수 없듯이,
인간 또한 똑같은 도덕적 기준 아래에서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다. 같은 것이라 해도 이 사람의 정신적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저 사람에게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동일한 생활양식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행동 능력을 잘 키워주면서 최선의 상태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모든 내적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리는 지긋지긋한 암초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없다.
밀은 인간의 이성을 믿으며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당연한 듯 훼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또 권리라는 이름을 앞세워 타인의 삶을 훼방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별성을 강조한 밀이었지만 자유를 제한해야 할 때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론]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전한다.
어떤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공공에게 명백하게 해를 끼치거나 아니면 해를 입힐 위험성이 분명할 때, 그 행동은 자유의 영역에서 벗어나 도덕이나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된다.
밀은 개인의 자유가 타인과 공익에 해가 될 경우에는 사회가 적절히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막강한 힘을 가진 사회가(국가를 의미하는 것 같다) 부당하게 자유를 간섭하는 것을 경계한다. 영국에서 발생한 사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자유를 위해 무엇보다도 개별성이 강조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1859년 출간된 [자유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16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 19세기에도 똑같이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
얼핏 보면 집단 난투극으로 오해할 수 있는 벤치 클리어링도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에서 혹은 억울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함을 지르고 다짜고짜 화를 낸다. 미친사람이 되어 날뛰면 내게 뭐라고 못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날뛰는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면 결국 불편한 결과를 가져온다. 당장은 회피의 수단이 될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욱하는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넉넉한 마음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화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물론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야구에는 고의성과 속임수의 경기 전략(예를 들면 도루 같은)이 존재한다. 야구 경기의 룰을 전면 수정하지 않는 한 벤치 클리어링은 매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감정싸움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집단 난투극이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때론 적절한 제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의성은 주관적인 부분이라 판단하기 애매하기에 선수들이 스포츠맨십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여나 고의성이 의심되는 순간이 발생하더라도 선수들이 욱하는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힐 수 있는 좋은 경기 규칙이 짜잔하고 등장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진정할 수 있도록 경기를 잠깐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야구를 오랫동안 행복하게 보고 싶다. 좋은 관중이 될 수 있도록 경기 결과에 절대 욱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