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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Apr 15. 2022

남편에게 콜라겐을 먹여요.

스물여덟 3월 첫날,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그 해 11월 우린 결혼했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남편의 근육이었다.


어릴 적부터 유독 겁이 많고,

특히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를 심하게 느꼈던 나는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 이상형이었다.

남편이 가진 빵빵한 근육들은 이런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순수하고 겁 많던 아가씨는 수줍은 새댁 시절을 보내고, 애둘을 낳더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편의 근육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강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남편의 울퉁불퉁 빵빵한 근육들은 자연스레 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남편의 팔뚝을 보게 됐다.

예전 그 팔뚝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열 번을 다시 봐도

예전 그 모습이 아니었다.


세월은 야속했다.

화난 듯 솟아있던 근육들은 몸속 지방들과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얇은 뼈대에 축 늘어진 지방과 거친 피부결.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희끗희끗 보이는 흰머리는 남편에게 세월이 제대로 왔음을 증명해 주었다.


40대에도 잘 가꾸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던데,

남편은 누가 봐도 아. 저. 씨. 중년 남성이었다.

조금 더 뜯어보면 노년기에 접어든 남성의 몰골이기도 했다.


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새치와 얼굴 곳곳에 터를 잡는 기미와 잡티로

세월의 현타를 제대로 맞고 있지만,

남편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하고 속상하다.

이 마음은 모성애일까?

아니면 같이 산 세월의 동지애일까?

남편의 노화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굳은 결의가 꿈틀댄다.


예전 근육 빵빵 맨은 못 되더라도, 꽃중년은 아니더라도....

그냥 제 나이대로 보이기라도 해 보자!!!

목표가 생겼으니 실행이 답이다!


젊음을 찾는 법을 주제로 폭풍 검색을 시작하고,

동안으로 보이는 동료들에게 비결을 묻는다.

가짜 뉴스를 나름 선별하고,

남편에게 필요한 비책들을 정리해본다.

간증에 가까운 후기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집약한 결과....

콜. 라. 겐.

그래 너다!


남편에게 콜라겐을 먹여보기로 했다.

넘쳐나는 콜라겐들 중 가성비와 가심비, 효능들을 나름 분석하고, 주문 버튼을 누르고 결제를 한다.

손꼽아 기다린 콜라겐이 배송되었다.

배송된 상자를 정성스레 뜯어, 콜라겐 두 알을 꺼내,

남편에게 내민다.


"오빠, 이거 먹어."


남편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무뚝뚝한 아내의 보살핌이 기분 좋은 듯 남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 알을 꿀꺽 삼킨다.


"이거, 콜라겐인데.... 노화를 막아준대.

 이거 매일 두 알씩 먹어. 그러면 젊어질 수 있대!!!!!"


콜라겐을 건네고, 잘 받아먹는 남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똑 떨어진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그래서일까?

알 수 없는 눈물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콜라겐을 주문한 이후, 남편은 매일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콜라겐 덕일까, 아니면 아내의 보살핌을 받아서일까.

급속히 진행 되던 남편의 노화는 더디게 진행 중이다.

노화의 시계가 영원히 멈출 수 없겠지만,

조금 천천히 가기를 바람 한다.


남편과의 동지애는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독이라 생각했던 지난날들의 엄청난 부부싸움은

세월이 흐르면서 약이 되었다.

남편은 내 죽음을 본인이 처리하고 가야 한다며

나보다 며칠 더 살다가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지 의문이지만,

남편의 노화현상은 우리의 동지애를 다지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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