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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Apr 02. 2022

나의 교권 생존기

첫 번째 이야기

앞으로 남은 교직생활에서 나의 고민은

일부라도 남아있는 교권을 사수하는 것이다.


'선생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은

고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옛 말이 되었고,

'제가 술을 먹었는데...', '돈 좀 빌려주세요.'등

학부모의 어이없는 전화는 일상이 되어,

감정을 상하게 한다.


이런 팍팍하고 험난한 현실 속에서

나는 나의 위치와 권위를 일부라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교무실.

교무실은 선생들의 주요 활동무대다.

과거에  영역은 방문 사유와 상관없이 

두렵고 어려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은,

연필을 비롯한 필기도구를 대여하고,

학생들의 과제를 가끔 출력해주고, 복사해주며

마스크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다양한 필수품들을

무료로 주는 나눔의 공간이 되었다.


변화된 교무실  분위기에도 교사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애쓰는 동물의 세계  동물들처럼 

교무실에서 우리의 권위를 지키고자 애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교무실로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부른다.

그리고 그들을 훈계한다.

가끔은  영역은  영역임을 강조하듯 

소리도 지른다.


하지만 나는 조퇴 사유를 묻거나 간단한 개인 상담이 아닌 이상 학생을 교무실로 따로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무실을 사수하려는 막중한 임무와 동료 교사를 

도와야겠다는 사명감이 가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때문이다.


교사들  일부는 혼나는 학생들에게 숟가락을 얹는다"지난번  시간에도 그러더니,  너야?"라고 

말을 거든다.

시어머니한테 구박듣고 있는데, 시누이가 돕는 격이다.


중학생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50프로는 반항을 택한다.

욕을 뱉어내거나 문을 꽝 닫는다거나...

사실 시어머니한테 구박 듣는데 시누이까지 나선다면 마흔 넘은 나도 반항을 택할듯하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 땐,

교무실로 학생을 부르지 않는다.


학생과 사투 중인 동료 교사를 돕고 싶은 그 맘은 안다.

나도 사실 돕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 순 없다.




교직에 있는 세월이 한 해 두 해 늘어나면서,

 나름대로 교권을 지켜내기 위한  가지 방법들이 생겼는데,   번째는 끼어들어야  때와 빠질 때를 눈치껏  살피는 거고, 번째는 학생과의 갈등 상황에서  ' 전달법' 사용하여 대화하는 거다.


"**아, 네가 이러니 선생님이 느무느무 속상하다.

  우리 같이 잘해보자!!"


생각보다 요런 말투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먹힌다.

분노에 차서 욱욱 거리는 아이의 화도 사알~~~  

가라 앉힐  있다.

네가 아니라 내가 속상하고, 안타깝고... 

요런 말들을 해 주면 된다.

단,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적. 당. 히.

너무 길면 잔소리가 된다.


앞으로도 요 방법을 사용할 예정이고,

별다른 대안이 없을 때까지는 쭈~~~ 욱 지속할 예정이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참을 () 자를 

여러 차례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러다  몸에서 사리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아들놈에게 엄마 죽으면 탑을 세우라는 말도 안 되는 농을 던지기도 한다.

나는 진지하게 바란다.

내 몸에서 사리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 교권은 넓은 의미로는 교육의 권리를 의미하지만,

  나는 교권을 교사의 가르치는 권리로 사용하여 글을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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