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앞으로 남은 교직생활에서 나의 고민은
일부라도 남아있는 교권을 사수하는 것이다.
'선생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은
고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옛 말이 되었고,
'제가 술을 먹었는데...', '돈 좀 빌려주세요.'등
학부모의 어이없는 전화는 일상이 되어,
감정을 상하게 한다.
이런 팍팍하고 험난한 현실 속에서
나는 나의 위치와 권위를 일부라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교무실.
교무실은 선생들의 주요 활동무대다.
과거에 이 영역은 방문 사유와 상관없이
두렵고 어려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은,
연필을 비롯한 필기도구를 대여하고,
학생들의 과제를 가끔 출력해주고, 복사해주며
마스크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다양한 필수품들을
무료로 주는 나눔의 공간이 되었다.
변화된 교무실 분위기에도 교사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애쓰는 동물의 세계 속 동물들처럼
교무실에서 우리의 권위를 지키고자 애쓴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교무실로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부른다.
그리고 그들을 훈계한다.
가끔은 이 영역은 내 영역임을 강조하듯
소리도 지른다.
하지만 나는 조퇴 사유를 묻거나 간단한 개인 상담이 아닌 이상 학생을 교무실로 따로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무실을 사수하려는 막중한 임무와 동료 교사를
도와야겠다는 사명감이 가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때문이다.
교사들 중 일부는 혼나는 학생들에게 숟가락을 얹는다"지난번 내 시간에도 그러더니, 또 너야?"라고
말을 거든다.
시어머니한테 구박듣고 있는데, 시누이가 돕는 격이다.
중학생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50프로는 반항을 택한다.
욕을 뱉어내거나 문을 꽝 닫는다거나...
사실 시어머니한테 구박 듣는데 시누이까지 나선다면 마흔 넘은 나도 반항을 택할듯하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 땐,
교무실로 학생을 부르지 않는다.
학생과 사투 중인 동료 교사를 돕고 싶은 그 맘은 안다.
나도 사실 돕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 순 없다.
교직에 있는 세월이 한 해 두 해 늘어나면서,
내 나름대로 교권을 지켜내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생겼는데, 그 첫 번째는 끼어들어야 할 때와 빠질 때를 눈치껏 잘 살피는 거고, 두 번째는 학생과의 갈등 상황에서 '나 전달법'을 사용하여 대화하는 거다.
"**아, 네가 이러니 선생님이 느무느무 속상하다.
우리 같이 잘해보자!!"
생각보다 요런 말투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먹힌다.
분노에 차서 욱욱 거리는 아이의 화도 사알~~~ 짝
가라 앉힐 수 있다.
네가 아니라 내가 속상하고, 안타깝고...
요런 말들을 해 주면 된다.
단,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적. 당. 히.
너무 길면 잔소리가 된다.
앞으로도 요 방법을 사용할 예정이고,
별다른 대안이 없을 때까지는 쭈~~~ 욱 지속할 예정이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참을 인(忍) 자를
여러 차례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러다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아들놈에게 엄마 죽으면 탑을 세우라는 말도 안 되는 농을 던지기도 한다.
나는 진지하게 바란다.
내 몸에서 사리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 교권은 넓은 의미로는 교육의 권리를 의미하지만,
나는 교권을 교사의 가르치는 권리로 사용하여 글을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