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

연구 목적 및 연구사 검토

by 이건주

본 연구는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세계시민주의적 긴장의 양상, 긴장의 해법으로서 중용(中庸)적 다원주의,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서 시공간의 순환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가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그동안 김수영의 시를 민족의식이나 민중성이 부족한 ‘소시민 문학’이라고 비판하거나, 그가 제시한 긴장의 해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연구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가진다.


이미경은 2023년 현재 김수영에 대한 83편의 박사학위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1990년대 이후 연구가 3단계로 변화 발전해 왔다고 정리했다. 첫 번째 단계인 1990년대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인식 틀 속에서 한쪽을 우위에 두고 김수영의 시 세계를 조망하는 가운데 김수영 문학의 특성을 논의하는 시각이고, 두 번째 단계인 2000년대는 김수영 시의 특성을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논의하는 시각이며, 세 번째 단계인 2010년대는 대립의 구도를 견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긴장과 부정을 통해 김수영 문학이 가지는 독특한 현대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시각이라는 것이다.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의 양상, 긴장의 해법으로서의 중용, 중용의 실천 방법으로서의 순환을 중심으로 그의 시를 다원적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본 연구도 김수영 문학의 현대성을 규명하는 연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의 긴장론은 후기의 산문 「반시론」(1968)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귀납과 연역, 내포와 외연, 비호(庇護)와 무비호, 유심론과 유물론, 과거와 미래, 남과 북, 시와 반시의 대극의 긴장. 무한한 순환. 원주(圓周)의 확대, 곡예와 곡예의 혈투. 뮤리얼 스파크와 스푸트니크의 싸움. 릴케와 브레히트의 싸움. 앨비와 보즈네센스키의 싸움.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 반시론의 반어.”(3판:516)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대극의 긴장”과 “무한한 순환”, “원주의 확대”는 이미 전기의 시 「너를 잃고」(1953)에서부터 나타난다. 여기서 “영원한 숨바꼭질”은 “무한한 순환”과 직접 연결되고, “애정의 원주(圓周)”가 진정으로 “위대”해지기를 바란다는 말은 “원주(圓周)의 확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같은 해의 「긍지의 날」(1953)에서도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라는 말을 통해 무한한 순환이 직접 나타난다. 이후 1962년의 시「적(敵)」에서도 “나의 과거와 미래가 숨바꼭질만 한다.”라는 말에서 무한한 순환을 의미하는 “숨바꼭질”이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그가 「반시론」에서 제시한 대극의 긴장, 무한한 순환, 원주의 확대는 전기 시의 “영원한 숨바꼭질”과 “순환의 원리” 등을 이후에 시론으로 체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긴장의 시론을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추구했던 것이다.


김수영의 긴장론은 스토아주의자인 히에로클레스의 연속적인 동심원론과 매우 유사하다. 마사 누스바움에 의하면, 히에로클레스는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 “지역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연속적인 동심원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아 주변에 그려지는 가족에 이어서 같은 지역적으로 도시나 나라의 사람들이 뒤따르고, 이 모든 원의 바깥에 인류 전체라는 가장 큰 원이 존재하는데, 모든 인간을 우리의 동료 국민, 시민처럼 만드는 것이 세계시민의 임무라는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 지역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히에로클레스는 우리에게 지역적 소속이 없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연속적인 동심원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원은 자아 주변에 그려진다. 다음 원은 직계 가족을 감싸며, 그다음에는 방계 가족이, 이어서 이웃과 지역 단체, 같은 도시의 시민들, 같은 나라 사람들이 뒤따른다. 이 모든 원의 바깥에 가장 큰 원이 존재한다. 인류 전체라는 원이다.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띠고 있는 임무는 “그 원들을 어떻게든 중심으로 끌어당겨” 모든 인간을 우리의 동료 국민, 시민, 기타 등등처럼 만드는 것이다.


김수영의 시에서도 가족, 민족, 인류의 동심원이 모두 나타난다. 그런데 그의 시에서 첫 번째 원인 “자아”는 가장 큰 원인 “인류”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는 여러 산문에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것을 시인의 임무로 제시하였다. 「저 하늘 열릴 때-김병욱 형에게」(1961)에서는 “정신상의 자주독립인 통일 이후의 시”는 “세계적인 시”, “세계평화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시”, “좀 더 가라앉고 좀 더 힘차고 좀 더 신경질적이 아니고 좀 더 인생의 중추에 가깝고 좀 더 생의 희열에 가득 찬” “시다운 시”가 될 것이고, “시인다운 시인”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3판:246)


이후 「새로움의 모색-쉬페르비엘과 비어렉」(1961)에서도 “현대시는 이제 그 ‘새로움의 모색’에 있어서 역사적인 경간(徑間)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아니 될 필연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역사적 지주는 이제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인류의 신념을, 관조가 아니라 실천하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자기가 아니라, 죽어가는 자기-그 죽음의 실천-”에서 “현대의 순교”가 탄생한다고 강조했다.(3판:325-326) 그는 현대를 개별적인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류의 신념”을 요구하는 시대로 파악하고, 현대시가 개별적인 “자기”를 죽이는 “죽음의 실천”을 통해 보편적인 “인류의 신념”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생활현실과 시」(1964)에서도 “오늘날의 시가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3판:355)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모기와 개미」(1966)에서는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지식인의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다고 지적했다.(3판:151)


또한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1966)에서도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운명에 적극 관심을 가진, 이 시대의 지성을 갖춘 시 정신의 새로운 육성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강조했다.(3판:262) 이후「로터리의 꽃의 노이로제-시인과 현실」(1967)에서도 “인간을 말살하는 정치 기구가 아무리 방대하고 근대화하고 세련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이 없는 정치, 사랑이 없는 정치, 시가 없는 사회는 중심이 없는 원이다. 이런 식의 ‘근대화’는 그 완성이 즉 자멸이다.”라고 하면서, “진정한 시는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며 자세인 것”이라고 강조했다.(3판:279-280) 그는 개별적인 “자기”를 죽이고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것을 현대 시인의 기본적인 임무로 제시했던 것이다. 그에게 현대 시인은 세계시민과 동의어였다.


실제로 김수영의 시에서는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주로 나타난다. 그의 시적 자아는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인 세계 문명과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현실적 자아는 개별적인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자주독립, 가족의 생활난 해결을 추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민족에서 세계로, 가족에서 인간으로 “애정의 원주”(「너를 잃고」)를 확대해 나가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첫 번째 목적은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긴장의 양상을 현대 세계시민주의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의 긴장을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가족적 생활만을 추구하는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과 세계적 문명, 가족적 생활과 인간적 정신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핵심 문제로 제기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김수영이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그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한편으로 서양 세력에 의한 민족 분단의 위기 상황에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편적 세계 문명도 함께 추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수영이 1960년 사월혁명 이후 리얼리즘으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민족의식과 민중성이 부족한 “소시민”에 머물렀다고 비판하는 연구가 적지 않았다. 일찍이 김지하는 「풍자냐 자살이냐」(1970)에서 “모더니즘을 넘어, 소시민을 넘어, 민족문학/민중문학/리얼리즘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그리고 “김수영 문학의 풍자에는 시인의 비애는 바닥에 깔려 있으되, 민중적 비애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후 염무웅도 「김수영론」(1976)에서 김수영이 “한국 모더니즘의 허위와 기만성을 철저히 깨닫고 이를 통렬하게 공격했으나, 그의 목표는 진정한 모더니즘의 실현이지 모더니즘 자체의 청산”이 아니었고, 그의 모든 문학적 사고는 “모더니즘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김수영이 광범한 민중의 시인 “민요 및 민예의 형식 가치”들을 계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더니즘의 난해성을 청산하고 민중 시학을 수립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를 “민중적 실천의 체험”이 결여된 “세련된 감각의 소시민”, “외국문학의 젖줄을 떼지 못한 도시적 지식인”으로 혹평했다.


마찬가지로 백낙청도 「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1977)에서 김수영의 난해시를 지적하면서, 그가 “우리 역사의 현장에 풍부히 주어진 민족과 민중의 잠재역량”을 너무나 등한히 했고, “그의 풍자가 시대의 폭력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결국 군중의 일부에 불과한 소시민”에게로 돌려졌다고 비판했다. 한 마디로 “민중적 자세”가 모자랐기 때문에 “민족과 민중의 잠재역량”을 경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김수영이 「반시론」에서 “우리의 시의 과거는 성서와 불경과 그 이전까지도 곧잘 소급되지만, 미래는 기껏 남북통일에서 그치고 있다.”(3판:515)라고 말한 구절을 두고, “기껏 남북통일이라니! 이것은 남북통일은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해보지 않은 경우에나 나올 수 있는 말”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백낙청은 이전의 「시민문학론」(1969)에서는 김수영의 시를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시민문학, 세계문학의 사례로서 높게 평가했었다. 그는 시민문학의 지향점으로 프랑스 혁명기의 자유, 평등, 우애를 제시하면서, “1960년대 한국 시민문학의 가장 뛰어난 성과는 김수영의 작업”이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그 난해성과 단편성, 또는 완전히 극복 안 된 소시민성조차도 우리는 그가 이 시대를 정말 자기 것으로 산 흔적으로서 아끼게 된다.”라며 적극 옹호했다. 당시는 “시민문학이 완성될 기반이 없는 시대요 소시민 의식과 소시민적 현실이 엄연히 지배하는 시대”였는데, “그 엄연한 것을 넘어서려는 꿈이 김수영에게 없었더라면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증언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특히 백낙청은 “선진공업사회의 발달”이 도시 안에서만 누릴 수 있던 “정신적·현실적 혜택”을 도시 밖에서 오히려 더 흡족히 누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온 지구가 하나의 세계”가 되고 현실적 궁핍이 점차 극복됨으로써 후진국에서도 “시민과 촌민”, “시민과 신민”, “세계시민과 국민”의 차이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사랑이 시민의식과 동의어인 시대에 시민문학은 곧 “세계의 문학”, “인류의 문학”이라고 하면서, “가장 높은 의미의 시민의식을 ‘사랑’이란 말로써 즐겨 표현”했던 김수영의 문학을 세계의 문학으로 높게 평가했다.


이후 김재용도 김수영의 문학이 “민족 현실”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동시대의 나라 안팎에서 “근대성”의 전개를 통일적으로 조망하려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김수영이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민중의 생활난 해소를 위한 공업화라는 “문명적 과제”를 모두 균형 있게 제시했기 때문에 “민족의식과 근대성”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김수영은 “분단 현실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민족의식을 튼튼하게 가지면서도, 여기에 함몰되지 않고 이를 동시대의 나라 안팎에서 진행되는 근대성의 진전과 연관시켜 통일적으로 조망하고 그 속에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 특히 민중의 운명”을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상환도 김수영에게서는 “전통과 모더니즘”이 서로 “반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하면서, “김수영은 시적인 차원에서 두 문화를 교차시키는 실험을 의도적으로 반복했으며, 그런 가운데 어떤 위대한 도약”을 꿈꾸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류순태도 김수영이 “시인의 양심”에 대한 의미화를 다양하게 수행함으로써 “한국적 현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던 차원에서 점차적으로 그 관심을 “세계”와 “인류”의 미래로 확장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가 “온몸”으로 “시의 예술성”과 “시의 현실성”을 실천해 감으로써 “인류”와 “세계”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를 “시인다운 시인”으로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김수영이 언제부터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시적 사유의 핵심으로 제시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김기림이 세계시민주의를 주장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시작 초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옥성은 이미 1920∼1930년대 한국 현대시에서부터 “지구” 이미지가 빈번하게 출현한다고 하면서, “세계 속의 조선”, “조선인이면서 한편으로는 지구 공동체에 소속된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기림 시인은 “세계적 보편성과 조선적 특수성을 조망하는 시선을 추구”하면서, “맹목적으로 유럽 지향적인 코스모폴리타니즘이나 쇼비니즘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박은지는 해방 직후 김수영이 참여했던 ‘신시론(新詩論)’ 동인의 작품집 �새로운 도시(都市)와 시민(市民)들의 합창(合唱)�(1949)을 세계시민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특히 박인환의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나 임호권의 「검은 비애-고 배인철에게」 등의 시에서 “세계시민으로서 식민 국가들과 연대할 수 있는 태도”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수영도 여기에 「아메리카 타임지(誌)」와 「공자의 생활난」 두 편을 발표한 것을 보면, 시작(詩作) 초기인 해방 직후부터 세계시민주의를 추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수영이 산문 「평단의 정지(整地) 작업」(1962)에서 당시 유종호 평론가가 자신을 “소시민 운운하는 것이 나의 ‘연상대(聯想帶)’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데가 있었다.”(3판:333)라고 말한 것도 자신은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항변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본 연구에서는 김수영이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도 밝혀보고자 한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도 함께 추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를 가족적 생활과 인간적 정신 사이의 긴장에 주목해서 전면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부분적으로 이를 포착한 연구들은 적지 않다. 일찍이 유종호는 「다채로운 레파토리-수영」(1963) 김수영의 시에서 “도시인의 생활의 페이소스”와 “반속(反俗) 정신”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안수길도 「양극의 조화」(1968)에서 김수영에게는 “귀족적”인 일면이 있는 동시에 “서민적”인 요소가 풍부하고, “사치”한 것이 있는 반면에 전투적인 “행동성”이 있었다고 하면서, “사치한 감각”과 “섬세한 정서”의 움직임이 공존한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도시인의 생활의 페이소스나 서민적 요소를 가족적 생활에 대한 긍정으로, 반속 정신이나 귀족적인 면을 인간적 정신에 대한 추구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김수영의 시에서 일상적 생활과 위대한 시적 정신 사이의 긴장을 포착한 연구들은 적지 않다. 강연호는 김수영이 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과 “모멸감”이 뒤섞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면서, “위대한 일을 추구하는 자부심은 일상에 예속되어 있는 자아의 처지로 인해 모멸감””과 뒤섞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남진우도 김수영이 초기 시에서 “가족이나 일상을 전적으로 수락하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에 서 있었다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일상성의 수락-설움과 비애”와 “일상성의 순간적 초월-정신적 기율(紀律)에 대한 강조”라는 모순된 태도를 취했다고 보았다.


김유중은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소시민적 분위기와 정서를 하이데거적인 “근본 기분”과 관계가 있은 것으로 보면서, 김수영의 소시민적 분위기와 정서는 “혁명을 위한 가장 초기적인 단계로서 주어진 양심의 자기 점검적 성격과 관계가 되는 것”일 뿐이며, 문학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진실된 공동체의 창조를 의도하고 기획”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김수영에게 보편성이란 “획일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므로 “문화적 보편주의로서의 모더니티의 이념은 부정되고, 각자의 여건에 맞는 복수의 모더니티의 존재”가 중시된다고 설명했다.


함돈균은 마샬 버먼의 ‘현대성(modernity)’ 개념을 “자본주의 또는 도시적 삶에 내재한 욕망과 그에 따른 가치의 분열이라는 아이러니”로 요약하면서, 김수영이 제시한 온몸의 시학이 “시인의 지향과 삶의 실제 사이에서 벌어진 절단의 흔적, 심리적 동요의 과정을 온몸으로 정직하게 적는 것”으로서 “현대 시인의 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김수영은 “생활의 타락에 몸을 담구며 사는 시인의 현실과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았으며, 동시에 그 상황 자체를 시적 실천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인식하고 시의 모험”을 감행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류순태는 김수영이 1956년에 번역한 에머슨의 책 『문화·정치·예술』을 분석하면서, “195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195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에 김수영의 시에서 펼쳐진 위대성의 추구가 “위인적 위대성”에서 “자연적 위대성”의 추구로, 이후 “자연적 위대성”에서 그에 대한 회의로 관점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애초에는 도시적 생활과 거리를 두면서 자연에서 초월적 위대성을 추구했지만, 이후에는 “자연적 위대성”의 탐색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강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김수영의 시에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의 긴장을 포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긴장의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가 가족적 생활만을 추구하는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과 세계적 문명, 가족적 생활과 인간적 정신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핵심 문제로 제기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본 연구의 두 번째 목적은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긴장의 해법에 대해서 중용(中庸)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보편적 세계문학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의 해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일찍이 김윤식은 1982년의 「김수영 변증법의 표정」에서 “이미지스트의 세련성 또는 ‘멋’이 참여시인으로 된 뒤에도 지양된 상태이긴 하나, 계속 남아 있음이 변증법의 원리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수영이 「시여 침을 뱉어라」(1968)에서 제시한 내용과 형식의 긴장을 두고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생성하는 김수영 변증법의 “제2단서”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김수영의 변증법이 “변증법의 문턱”, “변증법적 묘사”에 그치고 그 작동을 시범해 보이는 단계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가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자유의 이행”과 “용기” 등을 강조하면서 내용에 치우친 참여시인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특히 김수영이 「미인」(1967년)의 시작 노트에서 하이데거의 예술론과 릴케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시에서 “중요한 매개항”인 초월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설명했다. “자유의 표현이 아니라 그 이행에 시적 완성이 있다는 기둥과 참다운 노래가 나오는 것은 다른 입김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갖춰졌더라면 김수영 신화는 복선적 성격을 띠었을 것”인데, 후기에 하이데거와 릴케의 초월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단선적”으로 참여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변증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이미 1958년의 시 「모리배」에서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데거를 /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라며 하이데거를 직접 언급하였다. 이것은 김수영이 1967년의 「미인」이 아니라, 이미 1958년의 「모리배」부터 하이데거의 초월성을 “중요한 매개항”으로 설정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수영은 변증법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밝혀지듯이 헤겔의 변증법을 넘어서 다원주의적 긴장으로 한 발 더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오형엽은 김수영이 “첨단과 정지, 해탈과 풍자, 속력과 정돈, 탈주체와 주체의 양극을 모순과 균열을 안은 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시적 추구를 통해 순수시 혹은 모더니즘 시와 참여시 혹은 리얼리즘 시를 접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수영 시의 구조화 원리이자 시적 지향 및 도약의 동력인 “양극의 길항과 접합”이 “첨단”에서 “정지”로 전이되고 “정지”와 “첨단”이 일치되었을 때 시적 도약을 통해 다시 무한대의 “첨단”으로 원주를 넓혀가면서 끊임없이 전진하는 “변증법적 지양과 접합”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수영의 변증법을 “양극의 모순과 균열을 온몸으로 껴안고 전진하는” “정직한 변증법”이라고 규정했다.


김응교도 “정(正)과 반(反)이 충돌하여 합(合)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을 “김수영 시의 원동력”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철학 이론 이전에 철저한 부정과 반동으로 자유를 향하는 김수영의 의지 자체가 변증법적”이라고 하면서, “A와 B가 대비되어 C가 생산되는 과정”은 김수영의 시 전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는 인식을 가진 김수영이 단순히 부정에 끝나지 않고, 부정의 부정을 극복하여 긍정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고 하면서, 변증법적인 면은 있어도 “변증법의 틀에 가둘 수 없는”, 단순하지 않는 “변주곡”이 그의 시의 내부에 반복적으로 울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수영의 시에서는 “설움과 긍지”, “죽음과 생명”, “적과 혁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통일체”로 함께 있다는 이유로 김수영의 긴장을 헤겔 변증법과 다른 “꽈배기 변주곡”으로 규정했다. 대립물들이 통일성 안에서 “동등하게 필연적”이므로 통일성 안에서의 “다양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신주는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의 해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연구를 비판하면서, 그가 헤겔과 달리 단독자로서의 개별성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김수영은 “헤겔처럼 모든 개별자를 포괄하는 절대정신”이 아니라, “모든 개별자들이 어떤 절대자에도 포섭되지 않고 단독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명령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경수도 김수영이 “마르크시즘과 헤겔의 변증법은 물론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 어느 하나의 사상에 경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그가 “어느 한쪽에 완강하게 갇히기보다는 경계를 예민하게 의식하며 자유롭게 경계를 횡단하는 상상력”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김수영은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계인, 경계선 상에 있으면서 치열하게 경계를 사유했던 경계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영이 여러 산문이나 시에서 제시한 중용(中庸)은 대립적 양극 사이에서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의 독자성을 긍정하면서 다양한 연결과 경합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긴장의 해법을 중용적 균형과 절제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에서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세 번째 목적은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중용의 실천 방법을 시공간의 순환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시공간의 순환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이론적 차원뿐만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시간에 관한 연구는 적지 않았다. 김유중은 김수영의 시간 의식이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거시적 시간 의식”에서 “존재론적 인식에 기반을 둔 미시적 시간 의식”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해명했다. 특히 이찬은 김수영의 산문 「<죽음과 사랑>의 대극은 시의 본수(本髓)」에 등장하는 “대극”이나, 「시여, 침을 뱉어라」에 나타난 “긴장”의 배경에 『중용』에서 말하는 “중(中)”의 사유와 “시중(時中)”의 윤리학이 담겨 있다고 하면서, 「긍지의 날」, 「사령(死靈)」, 「바뀌어진 지평선」등을 분석했다. 이것은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간주하는 본 연구와 매우 유사하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공간’에 관한 연구도 계속 나오고 있다. 김상환은 김수영의 시적 공간에서 “도시적 감각이 주된 기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가 “김기림류의 모더니즘을 초과하는 부분”으로서 “세계시민으로서 가지고 있던 자기 의식 속에 도시 자체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있었다고 보았다.


최근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공간을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개념으로 분석한 연구들이 주목할 만하다. 김지율은 헤테로토피아가 “현실의 다성적 표상의 공간으로 비판과 대안의 여지를 함축하고 있는 이질적 장소”라고 하면서, “근대적 도시의 삶이 가속화될수록 주체들은 권태나 혼란 속에서 방황과 불안에 휩쓸리며 다양한 혼종적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수영이 “인간성 상실이나 절망 등의 위기의식이 위태롭게 존재하는 현대시의 강박화된 희망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 실마리”를 “수용소”, “도서관”, “거리”, “산정”과 같은 헤테로토피아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김원경도 김수영의 시에서는 “병원이나 교도소, 도서관이나 거리, 산정과 구름, 혹은 헬리콥터와 같은 물상들까지 양가적 속성들이 공존하는 장소”들이 헤테로토피아로서 “현실 공간과 혼재된 공간인 동시에 현실을 넘어서는 저항의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연구들은 도시와 시골, 현실적 생활 공간과 초월적 자연 공간 사이의 순환을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간주하는 본 연구와 매우 유사하다.


앞으로 김수영이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해당 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볼 것이다. 이를 통해 김수영의 시가 1960년 사월혁명을 기점으로 다양하게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으로 기대된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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