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

보편적 인간 정신 추구

by 이건주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먼저, 「PLASTER」(1954)에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나의 천성(天性)”이 깨어졌다고 하면서, “더러운 붓끝”에서 흔들리는 “오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신을 상징하는 “바다”보다 “아름다운 세월”을 건너와서 화려한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태양”을 주웠다고 생각했지만, 개별적 가족 생활에만 사로잡힌 속물적인 “괴물”이 되었다며 스스로 비판한다.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니 시인으로서 천성인 보편적 인간 정신을 잃어버리고 “더러운” 생활을 위한 글만 쓰는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나의 天性은 깨어졌다

더러운 붓끝에서 흔들리는 汚辱

바다보다 아름다운 歲月을 건너와서

나는 태양을 주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이런 것이 올 줄이야

怪物이여

지금 고갈 詩人의 絶頂에 서서

이름도 모르는 뼈와 뼈

어디까지나 뒤퉁그러져 나왔구나

―그것을 내가 아는 가장 悲慘한 親舊가 붙이고 간 名稱으로 나는 整理하고 있는가

나의 名譽는 부서졌다

비 대신 黃砂가 퍼붓는 하늘 아래

누가 지어논 무덤이냐

그러나 그 속에서 부패하고 있는 것

―그것은 나의 앙상한 生命

PLASTER가 燃上하는 냄새가 이러할 것이다

汚辱 · 뼈 · PLASTER · 뼈 · 뼈

뼈 · 뼈……………………… - 「PLASTER」 전문(초판:52)

그는 “고갈(枯渴)”된 시인으로서 이름도 모르는 “뼈와 뼈”가 뒤퉁그러져 나온 자신의 모습을 “비참한 친구”가 붙이고 간 “명칭”으로 정리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여기서 “비참한 친구”는 그의 산문 「나와 가극단 여배우와의 사랑」(1954)에 등장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P(박일영)”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에 박일영은 “시는 조선은행 금고 속에 있는 거야!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살리기 위하여 최소한도의 돈이 필요해!”라고 외치면서 소위 “간판 예술”의 길을 걸었다.(3판:65) 김수영은 해방 직후에 자칭 “상업미술가”가 되려다 비속한 예술가로 전락해 버린 P를 회상하면서 속물적인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명예”가 부서졌다고 거듭 한탄하면서, 자신의 “생명”이 더러운 “황사”만 퍼붓는 “무덤” 같은 물질문명 속에서 부패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해 왔던 “오욕”을 씻어 내고, 사람을 지탱해 주는 “뼈”로 상징되는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제목인 “PLASTER(석고 붕대, 깁스)”는 뼈가 부서져 깁스를 하고 있는 것처럼 개별적 가족 생활 속에 사로잡혀서 깨져버린 “천성”을 붙이기 위해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만 추구해 왔으니 이제부터는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거리1」(1955)에서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오래만에 “거리”에 나와서 빈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도회의 중심지”에서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게 앉아 있다. 이렇게 그가 문명의 공간인 도시 한복판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일”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라는 주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와 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 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 「거리(一)」부분 (초판:68)

그는 자신의 “헌 옷”과 “낡은 구두”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이런 개인적 문제보다는 “옛날에 죽은 친구”를 통해 “죽음”이라는 인간적 문제를 생각한다. 그리고 “벽” 위에 걸려 있는 “지도”가 푸르다고 하면서, 이기적 욕망만 추구하는 물질문명의 폐단을 상징하는 “벽”을 넘어서, “푸른 바다와 산과 들”로 상징되는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그가 개별적 가족 생활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구름”이나 “항구”가 없는 개별적 가족 생활 공간인 “사무실”의 “허연 석회 천정”을 “꿈이 아닌 꿈”을 가리키는 “내일의 지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꿈”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활난 해결이라는 “내일”의 현실적인 “꿈”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름도 필요 없고

항구가 없어도 아쉽지 않은

내가 바로 바라다보는

저 허연 석회천정―

저것도

꿈이 아닌 꿈을 가리키는

내일의 지도다

스으라여

너는 이 세상을 點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나의 눈을 찌르는 이 따가운 가옥과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을

커다란 해양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조고마한 물방울로

그려보려 하는데

차라리 어떠할까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 - 「거리(一)」부분 (초판:69)

결국 그는 점묘파 화가 “쇠라”가 세상을 점으로 그린 것처럼 자신도 “가옥”과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로 상징되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해양”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조그마한 “물방울”로 그리는 “선비”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과거 선비들이 생활보다 정신을 더욱 중시했듯이 문명의 공간인 거리에서도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가장으로서 개별적 가족 생활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먼저, 「장시2」(1962)에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상징하는 “시금치밭”에 거름을 뿌려서 “파리”가 들끓고, 이틀째 흐린 가을날은 무덥기만 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 소리도 “옛날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고, 눈도 “소경”처럼 어두워진다고 한탄한다.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다 보니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던 시절이 “옛날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고, 이를 찾던 “눈”도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시금치밭에 거름을 뿌려서 파리가 들끓고

이틀째 흐린 가을날은 무더웁기만 해

가까운 데에서 나는 人聲도 옛날이야기처럼

멀리만 들리고

눈은 왜이리 소경처럼 어두워만지나

먼 데로 던지는 汽笛소리는

하늘 끝을 때리고 돌아오는 고무공

그리운 것은 내 귓전에 붙어있는 보이지 않는 젤라틴紙

―나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재산처럼

外界의 소리를 濾過하고 彩色해서

宿題처럼 나를 괴롭히고 보호한다 - 「長詩 二」 부분(초판:209)

그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상징하는 “기적(汽笛) 소리”와 보편적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하늘” 사이를 “고무공”처럼 오가려고 했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외계”의 소리를 여과하고 채색해서 생활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재신인 “젤라틴지(紙)”가 그립다고 고백한다. 그가 「반주곡」(1959)에서 “젤라틴을 통해서 시의 진지성을 본다.”라고 말했듯이 과거에는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했었는데, 지금은 개별적 가족 생활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으므로 그때가 그립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자기를 항시 괴롭히는 “땅 주인”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그처럼 누구인가를 괴롭히고 있는 “고문인(拷問人)”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서로를 고문하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의 숙명”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개별적 가족 생활을 초월해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초현실”을 “생활의 정수(定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남을 고문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그는 “혼미”하는 “아내”와 날이 갈수록 간격이 생기는 “골육”인 형제, “새”가 아직 모여들 시간이 못된 “늙은 포플러나무” 같은 어머니 등 자신을 소리 없이 “괴롭히는” 가족을 “신”이 보낸 “고문인”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생활 능력이 없어서 “어른”이 못 되는 자신을 탓하는 “구슬픈 어른들”인 가족들을 향해 “방황할 시간”, “불만족의 물상(物象)”을 달라고 부탁한다. 또한 “두부”를 엉기게 하는 따뜻한 “불” 같은 가족의 사랑도, “졸고 있는 잡초” 같은 여유로운 생활도 “무감각의 비애”로 상징되는 보편적 인간 정신이 없으면 “죽은 것”처럼 무의미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에게 가족을 위한 생활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混迷하는 아내여

날이 갈수록 간격이 생기는 骨肉들이며

새가 아직 모여들 시간이 못된 늙은 포플러나무며

소리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들은 神의 拷問人인가

―어른이 못 되는 나를 탓하는

구슬픈 어른들

나에게 彷徨할 시간을 다오

不滿足의 物像을 다오

두부를 엉기게 하는 따뜻한 불도

졸고 있는 잡초도

이 無感覺의 悲哀가 없이는 죽은 것

술취한 듯한 동네아이들의 喊聲

미쳐돌아가는 歷史의 反覆

나무뿌리를 울리는 神의 발자죽소리

가난한 沈黙

자꾸 어두워가는 白晝의 活劇

밤보다도 더 어두운 낮의 마음

時間을 잊은 마음의 勝利

幻想이 幻想을 이기는 시간

―大時間은 결국 쉬는 시간 - 「長詩 二」 부분(초판:210)

마지막 연에서는 술 취한 듯한 “동네 아이들”의 함성, 미쳐 돌아가는 “역사의 반복” 같은 물질문명의 폐단을 치유하려면, 나무뿌리를 울리는 “신”의 발자국 소리 같은 보편적 인간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가난한 침묵”, 먹고살기 위해 싸우는 “백주(白晝)의 활극”으로 인해 “밤”보다도 더 어두운 “낮”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이기적 생활의 “시간”을 잊은 “마음의 승리”를 얻으려면, “환상이 환상을 이기는 시간”, 쉬면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는 “대시간(大時間)”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먹고살기 위해 서로를 고문하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의 숙명”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강가에서」(1964)에서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자신보다 “가난”하게 보이고, 식구도 “일곱 식구”나 더 많은데도 더 “여유”가 있는 어떤 인물을 제시한다. “저이”는 자신에게 “산보”를 청하고, 정신적 공간인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주는 등 돈보다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오고, “반드시” “4킬로 가량”을 걷는 등 평소에는 일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절도 있게 휴식을 취하는 등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오르게 한다.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 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四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 「강가에서」 부분(초판:229)

반면에 “나”는 생활난을 해결하느라 여유 없이 살다 보니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저이”는 “나”를 보고 “오입”을 했다고 하면서 아직도 늙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나”에게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여기서 “오입”은 사실적인 성적 일탈이 아니라, 산문「반시론」에서 말했듯이 생활로부터 벗어나 정신을 추구하는 “이방인의 자유의 감각”(3판:506)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보다 “가난”하고, “짐”이 무거워 보이고, “늙었”고, “눈”이 들어갔는데도 여유가 있는 “저이”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고,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나름대로 여유 있게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돈만 아는 “가련한 놈”, 속물적인 “소인(小人)”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미 「달나라의 장난」(1953)에서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라고 했듯이 여기서도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지 못하고 개별적 가족 생활에 사로잡힌 “소인”이 된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 「강가에서」 부분(초판:229-230)

이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에서도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왕궁” 즉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고,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하면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있는 자신의 “옹졸”함을 비판한다. 그리고 1965년 3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분지」 필화 사건의 남정현으로 짐작되는 “붙잡혀 간 소설가”의 석방을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하고, 1965년에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 자신의 옹졸함을 거듭 비판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부분(초판:249)

그는 과거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경찰”이 되지 않기 위해 “너스(간호사)”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는 사소한 일에만 몰두했었던 일화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옹졸한 전통이 “유구(悠久)”하고, 이제 자신의 “정서(情緖)”로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도 자기의 반항이 “개의 울음소리”나 “애놈의 투정”에도 지고,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고통의 “가시밭”이라고 느끼는 등 그때와 다름없이 옹졸하다고 한탄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옆으로 비켜서 있다며 자신의 “비겁”함을 자조적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땅주인”에게는 못하면서 “이발쟁이”에게만 반항하고,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면서 “동회 직원”에게만 반항하는 자신의 옹졸함을 거듭 되풀이하면서, “모래”, “바람”, “먼지”, “풀”처럼 작은 자신을 비판한다. 이제는 언론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가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이므로 개인적이고 옹졸한 반항에 그치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간 정신의 핵심인 보편적 자유와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대범한 반항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부분(초판:250)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수영의 시에서는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전기의 「PLASTER」(1954), 「거리1」(1955)와 후기의 「장시2」(1962), 「강가에서」(1964),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등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세계시민으로서 자유와 사랑, 인류 복지와 세계평화 등 보편적 인간 정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긴장의 양상을 현대 세계시민주의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그가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을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김수영은 개별적 가족만을 추구하는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과 세계적 문명, 가족적 생활과 인간적 정신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핵심 문제로 제기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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