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

긴장의 해법으로서 중용적 균형

by 이건주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대립적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거리2」(1955)에서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인 매춘부에게 “자유”로운 자세를 취해 보라고 주문한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한복판인 “거리”에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매춘부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독기”를 빼고 생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그가 1955년 2월 3일자 일기에서 서울역에서 본 매춘부들을 “규방에서의 인생 최대의 쾌락과 행복까지도 빼앗긴 사람들”(3판:700)로 규정했고, 이후 1956년 2월 15일자 일기에서도 “결론이 없는 여자들”이 “현대의 비밀”이라고 하면서 거리 여자들의 비극을 현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가장 큰 폐단의 하나로 제기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김수영이 번역했던 「모다니스트운동에의 애도」라는 책에서 스티븐 스펜더도 “영웅적이라고 할 만큼 예민한 현대적 힘과 각고한 현대의 현실-기계, 도시, 아부산주(酒) 혹은 매음부 같은-사이의 긴장이야말로 모더니즘의 기조”라고 썼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가져다주는 힘과 이로 인해 매음부들이 겪는 각고한 현실 사이의 “긴장”이 현대 모더니즘의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눈에서는 毒氣를 빼고

자유로운 姿勢를 취하여보아라

여기는 서울 안에서도 가장 繁雜한 거리의 한 모퉁이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 모양으로 快活하다

疲困을 잊어버리게 하는 밝은 太陽 밑에는

모든 사람에게 不可能한 일이 없는 듯하다

나폴레옹만한 豪氣는 없어도

나는 거리의 運命을 보고

달콤한 마음에 싸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

무한히 망설이는 이 마음은 어둠과 絶望의 어제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기쁜 이 마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確實히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텐데

―劇場이여

나도 지나간 날에는 俳優를 꿈꾸고 살던 때가 있었단다 - 「거리(二)」 부분(초판:74)

그는 서울 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처럼 쾌활하다고 하면서, “밝은 태양” 밑에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고 말한다. 또한 정신만 추구했던 “어제”의 “어둠과 절망”에서 벗어나 밝은 태양이 비추는 도시 문명 속에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거리의 운명”을 보면서 “기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쁜”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과거 “극장”에서 배우를 꿈꿨던 것처럼 “무수한 웃음”과 “벅찬 감격”이 소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실적 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설움”이 아니라, 불멸의 인간을 추구했던 “진시황”이나 어두운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농락하는 “학자”처럼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고민에 투철하다는 자신이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거리에서 “지프차”를 타고 가는,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 자신이 “사막”을 찾아가는 “외국 사람” 같다고 느낀다.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 개별적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것은 일부러 죽음의 공간인 “사막”을 찾아가는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인간이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식인종”같이 잔인한 “탐욕”과 “강렬한 의욕”을 가지고 생활을 들여다보면서도 “달”과 “바람”처럼 서늘한 정신도 함께 추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모두 가지고 있는 다원적 존재이므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환상”과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는 “현실”을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에게 도시 문명의 한복판에서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찌그러진 입술”을 펴라고 다시 주문한다. 그리고 오늘은 “도회의 흑점”, 즉 도시 문명의 폐단만 운운할 날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쇠 냄새”가 그립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단순한 “감상과 향수”가 아니라, “정적(靜寂)”과 “부드러움”으로 상징되는 인간적 “정신”도 함께 추구한다고 하면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 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자신의 “긍지”는 보편적 정신만을 상징하는 “애드벌룬”보다는 조금 무거울 것이고, 미래에 대한 “예지”는 개별적 생활만을 상징하는 “연통”보다 더 날카로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도회의 黑點―

오늘은 그것을 云云할 날이 아니다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 모양으로 快活하다

― 코에서 나오는 쇠냄새가 그리웁다

내가 잠겨있는 精神의 焦點은 感傷과 鄕愁가 아닐 것이다

靜寂이 나의 가슴에 있고

부드러움이 바로 내가 따라가는 것인 이상

나의 矜持는 애드발룬보다는 좀 더 무거울 것이며

叡智는 어느 煙筒보다도 훨씬 뾰죽하고 날카로울 것이다

暗黑과 맞닿는 나의 生命이여

거리의 生命이여

倨慢과 傲慢을 잊어버리고

밝은 대낮에라도 謙遜하게 지내는 妙理를 배우자 - 「거리(二)」 부분(초판:76)

그는 자신의 “생명”이 “암흑”과 맞닿아 있다고 하면서, “밝은 대낮”에 개별적 생활을 위해 일하더라도 과도한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거만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지내는 “묘리”를 배우자고 권유한다.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더라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보편적 정신도 함께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별적 생활의 공간인 “서울”의 거리 한복판에서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시편(詩篇)”을 밟고 가는 중용적 균형이 “영광”된 삶이자 “역사”를 만드는 길이라고 다시 강조한다. 그리고 “구두”, “양복”, “노점상”, “인쇄소”, “거리의 부인들” 등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호명하면서,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생활 속에서도 영혼을 가진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맞지 않게 “어색”하게 살지 말라고 주문한다. 사람은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있는 다원적 존재이므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후 「지구의」(1956)에서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지구의 모양을 본뜬 모형인 지구의(地球儀)를 보면서, “양극”을 관통하는 “생활” 대신에 차라리 “남극”에 생활을 박으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지구의에서 “북극”은 망가져 있는 반면에 남극에는 “검은 쇠꼭지”가 심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남극”은 “쇠꼭지”로 상징되는 견고한 개별적 생활을, “북극”은 망망대해에서 길잡이가 되는 북극성처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보편적 정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전쟁으로 인해 북극이 망가져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겨를이 없으니 우선 가족의 생활난 해결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신이 없다면 실존이 본질에 앞설 수밖에 없다고 했듯이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북극(본질)이 망가졌으니,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남극(실존)이 앞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地球儀의 兩極을 貫通하는 生活보다는

차라리 地球儀의 南極에 生活을 박아라

苦難이 風船같이 바람에 불리거든

너의 힘을 알리는 信號인 줄 알아라

地球儀의 南極에는 검은 쇠꼭지가 심겨있는지라―

무르익은 사랑을 돌리어 보듯이

北極이 망가진 地球儀를 돌려라

쇠꼭지보다도 虛妄한 生活이 均衡을 잃을 때

酩酊한 精神이 酩酊을 찾듯이

너는 비로소 너를 찾고 웃어라 - 「地球儀」 전문(초판:98)

그는 “고난”이 “풍선”처럼 “바람”에 불리거든 “너의 힘”을 알리는 “신호”인 줄 알라고 말한다. 지금은 극심한 생활난으로 인한 “고난”을 날려 보낼 수 있는 생활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르익은 사랑”을 돌리듯이 북극이 망가진 지구의를 돌리라고 하면서, “낡아도 좋은”(「나의 가족」) 가족의 사랑을 위해서 생활난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마지막 연에서는 “쇠꼭지”보다도 “허망한 생활”이 “균형”을 잃을 때는 “너”를 찾고 웃으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개별적 생활만 추구하다가 “허망”해지면, 그때는 웃을 수 있도록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몹시 취하면 균형을 잡기 위해 “정신”을 찾듯이 개별적 생활에 취해서 균형을 잃으면, 그때는 다시 “너” 자신을 찾기 위해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후 「가옥찬가」(1959)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무더운 “자연” 속에서 손과 발에 마구 상처를 입고 와서 “병든 사자”처럼 지내는 “여름”에 “석간” 신문에서 “폭풍경보”를 보고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진정으로 염려한다. 그리고 태풍 때문에 흔들리며 아우성치는 “버드나무”를 “악마”에 비유한다. 이것은 1959년 9월 삼남지방에 불어 닥쳐 엄청난 피해를 준 사라(Sarah) 태풍의 힘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夕刊에 暴風警報를 보고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고

習慣에서가 아니라 염려하고

三年前에 심은 버드나무의 惡魔 같은

그림자가 뿜는 아우성소리를 들으며

집과 文明을 새삼스럽게

즐거워하고 또 批判한다 - 「家屋讚歌」 부분(초판:125)

그는 “집”과 “문명(文明)”을 새삼스럽게 “즐거워하고” 또 “비판한다”고 하면서, “폭풍”으로 인한 재해를 막아주는 “집”과 “문명”의 가치와 함께 그 폐단도 지적한다. 자연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마”같이 부정적인 면도 있는 것처럼 문명도 자연 재난을 막아주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할 만한 부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루”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적 “바람”에서 느끼는 투지와 애정이 젊다고 하면서, 물질문명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람”으로 상징되는 자연적 정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보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고, “목가(牧歌)”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라고 하면서, 자연적 정신만이 아니라 “가옥”으로 대표되는 물질문명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사”, “정치가”, “상인”, “노동자”, “실직자”, “방랑자”, “걸인” 등에게 “집”이 여기에 있다고 외치라고 주문하면서, “집”이 문명적 생활에서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牧師여 政治家여 商人이여 勞動者여

失職者여 放浪者여

그리고 나와 같은 집없는 乞人이여

집이 여기에 있다고 외쳐라

하얗게 마른 마루틈 사이에서

검은 바람이 들어온다고 외쳐라

너의 머리 위에

너의 몸을 반쯤 가려주는 길고

멋진 양철 채양이 있다고 외쳐라 - 「家屋讚歌」 부분(초판:125-126)

마지막 연에서는 “마루”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검은 바람”을 다시 제시하면서, 물질문명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정신이 필수적임을 다시 강조한다. 그리고 자연적 정신을 추구하는 “머리” 위에 문명적 생활을 상징하는 “멋진 양철 차양”이 있어서 몸을 “반쯤” 가려준다고 외친다. 인간의 몸에는 영혼과 육체가 함께 들어 있으니, 문명적 생활과 자연적 정신을 각각 “반쯤” 정도씩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대립적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중용에 대하여」(1960)에서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당시의 사월혁명을 “때 묻은” 혁명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비판의 말을 같은 날에 일본어로 쓴 자신의 “일기첩”에서 찾는다. 먼저, 그는 일기의 첫 문장인 “중용(中庸)은 여기에는 없다.”라는 말을 시 속으로 옮긴다. 그런데 일기에는 “나의 가는 길”이 “사람이 있는 곳”, “사람이 공명(共鳴)하는 곳”, “사랑이 이는 곳”이라고 하면서 민족의 통일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중용이 없다는 말은 남한과 북한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中庸은 여기에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숙고한다

鷄舍 건너 신축 가옥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비에트에는 있다

(계사 안에서 우는 알 겯는

닭소리를 듣다가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아니 된다) - 「중용에 대하여」 부분(초판:156)

그는 괄호 안에 “계사(鷄舍)”, 즉 닭장 건너편에 있는 “신축 가옥”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집을 새로 짓듯이 당시 우리나라가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사월혁명으로 인해 신축 가옥을 짓듯이 새롭게 길이 열린 민족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과 북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중용이 “소비에트”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사상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그가 1961년의 산문 「저 하늘 열릴 때-김병욱 형에게」에서 “소련에서는 중공이나 이북에 비해서 비판적인 작품을 용납할 수 있는 컴퍼스가 그전보다 좀 넓어진 것 같은 게 사실”(3판:245)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그리고 계사 안에서 닭이 알 낳는 소리를 듣다가 “마른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 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괄호 안에 쓰면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을 언급한 것이 위험한 일이 될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된 현실을 비판한다.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답보”, “죽은 평화”, “무위”라는 일기의 구절을 시로 옮겨 놓으면서, 원래 중용이 아니라 다음에 “반동(反動)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워졌고, “모두 적당히 가면(假面)을 쓰고 있다”라는 말은 이 시에서 빼겠다고 밝힌다. 사월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남과 북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죽은 평화”, “나타”, “무위”는 물론이고 “반동”이고,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踏步다 죽은 평화다 懶惰다 무위다

(단 <중용이 아니라>의 다음에 <反動이다>라는

말은 지워져 있다

끝으로 “모두 적당히 가면을 쓰고 있다”라는

한 줄도 빼어놓기로 한다) - 「중용에 대하여」 부분(초판:156)

마지막 연에서는 일기의 원문이 일본어로 쓰여져 있다고 하면서, 개인적인 비밀 일기조차도 몰래 “일본어” 써야 할 정도 사상의 자유가 억압된 “악독하고 반동적”인 “현 정부”를 거듭 비판한다. 당시 사월혁명으로 새롭게 열린 민족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남한과 북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만용에게」(1962)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현실적인 “수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자기나 “여편네”나 매일반이라고 말한다.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자신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생활난 해결을 위한 돈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收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四百三拾圓이니

한 달에 十二, 三萬원이 소리 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六十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값이

一週日에 六日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 「만용에게」 부분(초판:213)

그는 봄에 알값이 떨어지므로 닭을 돌보는 “만용”이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걱정한다. 여기서 만용이는 그의 산문 「양계 변명」(1964)에 소개된 것처럼 “우리 집에서 야간 중학교를 마치고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년에 야간 대학에 들어갔던”, “담양에서 올라온 머슴아이”(3판:120)이다. 새 학기에 만용이의 수업료를 내주어야 하는데 그 학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알을 많이 낳아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 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아내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반대한다. 그는 알을 더 낳게 만들기 위해서 아내 몰래 새벽 모이를 주면서, 아내와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는 자신도 아내의 “독살”에도 지지 않고 맞선다고 밝힌다. 자신은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필요한 때에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데에도 집중하는 다원적 삶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週期的인 收入 騷動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毒氣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半半-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 - 「만용에게」 부분(초판:213)

마지막 연에서 그는 무능한 자신이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라고 말한다.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기 때문에 현실 생활에서 “무능한” 것이 사실이지만, “주기적”으로 만용이의 학비를 내야 하는 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아내보다 더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독기”도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반반(半半)”이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돈으로 모든 것을 확정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저항”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에 생활과 교육을 위해서 필수적인 돈을 벌기 위해서 애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시작 노트(1965) 에서 “너와 나는 <반반(半半)>이라는 의미의 말이 그 「만용에게」의 모티브 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그러한 일 대 일의 대결의식이 이 「잔인의 초」에도 들어 있다.”(3판:546-547)라고 말했듯이 “너”로 상징되는 개별적 생활과 ‘내’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이 “일 대 일”로 대결하는 상황에서 양극을 모두 긍정하고 “반반” 정도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수영이 시에서 부부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중용』제12장에 “군자의 도는 부부관계에서 시작이 되나, 그 지극한 면에 이르러서는 온 천지를 살펴야만 한다.”(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라는 말이 있듯이 부부관계가 대립적인 남성과 여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중용의 사례로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미역국」(1965)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름”을 미역국에 고기를 넣어서 생긴 기름으로 본다면, 고기국을 먹을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가난 극복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했다는 “환희”를 가져다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歷史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歡喜를

풀 속에서는 노란 꽃이 지고 바람소리가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서걱거린다-우리는 그것을 永遠의

소리라고 부른다 - 「미역국」 부분(초판:243)

그는 “풀” 속에서 “노란 꽃”이 지고, “바람 소리”가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서걱거린다고 하면서 이것을 “영원의 소리”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풀”과 “그릇”으로 상징되는 개별적 생활이 “노란 꽃”과 “바람”으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주의 물질문명 시대에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영원한 숙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을 상징하는 “해”가 과거 “청교도가 대륙 동부에 상륙한 날”보다 밝다고 하면서, 우리의 “재”와 우리의 “서걱거리는 말”을 언급하는 것은 청교도가 신대륙에 상륙해서 밝은 빛을 던져준 것처럼 물질문명이 잿더미 같은 우리의 가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빛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가 “인생”과 “말”의 “간결”을 “전투의 소리”라고 규정하는 것도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인생”이 가리키는 개별적 생활과 “말”로 대표되는 보편적 정신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암시로 이해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미역국”이 “인생”을 거꾸로 걷게 한다면서, 인생이 “기관포나 뗏목”처럼 “통째” 움직이는 것을 “빈궁(貧窮)의 소리”라고 부른다. 당면한 “빈궁”을 해결하려면, 기관포에서 포탄이 줄지어 계속 나오고, 뗏목에 많은 통나무들이 함께 엮여 있듯이 보편적 정신과 함께 개별적 생활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환희”, “미역국”, 미역국에 뜬 “기름”, “구슬픈 조상”, “가뭄의 백성”을 부르면서 “퇴계”든 “정다산”이든 “수염 난 영감”들에게 “순조로워라”라고 주문하는 것도 성인(聖人)처럼 보편적 정신만 내세우지 말고 백성들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오오 歡喜여 미역국이여 미역국에 뜬 기름이여 구슬픈 祖上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退溪든 丁茶山이든 수염 난 영감이면

福德房 사기꾼도 도적놈 地主라도 좋으니 제발 순조로워라

自稱 藝術派詩人들이 아무리 우리의 能辯을 욕해도-이것이

歡喜인 걸 어떻게 하랴

人生도 人生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우리는 그것을

結婚의 소리라고 부른다 - 「미역국」 부분(초판:243)

그는 보편적 정신만 추구하는 “자칭 예술파 시인”들이 아무리 “욕”해도 생활의 여유가 주는 “환희”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인생”도 “인생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것을 “결혼의 소리”라고 부른다. 대립적인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통째”로 움직이는 것이 “인생”이듯이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작 노트(1965)에서 “요즈음 집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자연히 신변잡사에서 취재한 것이 많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우리>라는 말을 써보려고 했는데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에 자극을 준 것은 C. 데이 루이스의 시론이고, <시문학> 9월호에 발표된 「미역국」이후에 두어 편 가량 시도해 보았는데, 이것은 <나>지 진정한 <우리>가 아닌 것 같다.”(3판:541)라고 썼다. 이것은 「미역국」이 ‘나’와 ‘우리’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라, ‘나’가 가리키는 개별적 생활과 ‘우리’가 가리키는 보편적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중용적 균형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산문「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나의 처녀작」(1965)에서는 “쾌락의 부르주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는 트릴링을 떠나서 생각해 보면,「미역국」이 자신의 현대적인 “처녀작”이라고 하더니,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나는 진정한 처녀작을 한 편도 쓰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것도 그가「미역국」에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가져다주는 “쾌락의 부르주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개별적 생활도 함께 긍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배격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할 수 있다. 자신은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수영의 시에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려는 다원적 의지가 전기의 「거리2」(1955), 「지구의」(1956), 「가옥찬가」(1959)와 후기의 「중용에 대하여」(1960), 「만용에게」(1962), 「미역국」(1965) 등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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