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과 멋진 세계의 촌부 김수영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한강 소설가가 2024년에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한강 소설의 기본 주제 의식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유무형의 폭력에 맞선 인간성과 자유의 옹호라고 본다. <채식주의자>에 들어 있는 단편 <몽고반점>은 벌써 20년 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었는데, 당시에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채식주의에 처제와 부적절한 관계까지 서슴지 않는 예술가의 탐미주의까지 겹쳐져 있으니, 푸코의 <광기의 역사>처럼 상식과 윤리마저 폭력이라며 거부하려 드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폭력과 죽음의 역사를 다룬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엄청난 변신에 놀라기도 했었다. 폭력에 맞선 인간성과 자유의 옹호라는 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념적으로 보면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자유 우파에 가깝고, 노벨문학상에서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이는 <소년이 온다>는 진보 좌파에 가까워 보인다. 진보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페미니즘으로 곡해하거나, 자유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소년이 온다>를 역사 왜곡이라며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적 폭력이든 윤리적 폭력이든 국가적 폭력이든 유무형의 폭력에 맞선 인간성과 자유의 옹호는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문제이다. 한강은 정치적 이념주의에 편향되었던 프랑스인 사르트르보다는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제기했던 알제리 프랑스인 카뮈와 유사해 보인다.


세계문학상은 편향된 이념 문학이나 편협한 민족문학이 아니라, 카뮈나 한강처럼 다원적 세계시민 문학가들에게 수여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이번 노벨문학상이 서양 민족(지역) 문학상에서 탈피해서 다원적 세계시민을 위한 문학상으로서 위상을 제대로 세웠다고 본다.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정치적 이념을 강조해 온 고은, 황석영, 이문열이 아니라 한강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 편향적 이념주의나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 인간 문제에 천착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이 활발하게 논의된다면,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한강 한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본다.


이 책은 ‘멋진 세계의 촌부’가 되고자 했던 시인 김수영을 한국 다원적 세계문학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의 시 작품에 나타난 세계시민주의적 긴장의 양상, 긴장의 해법으로서 중용(中庸)적 다원주의,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서 시공간의 순환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가족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김수영은 1961년의 「시작 노트」에서 “멋진 세계의 촌부(村夫)”가 되는 것을 당면한 시적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4‧19를 분수령”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국내적인 제 사건이 이미 충분히 “세계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시의 제재만 하더라도 “세계적이거나 우주적인 것”을 탐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고 진단하면서, “어떻게 하면 멋진 세계의 촌부(村夫)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당면한 문학적 과제로 제시했다.(3판:529)


이 책에서는 김수영이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가족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의 개별적인 시 작품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개별적인 시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내놓는 작가론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찍이 황동규는 “궁극적인 김수영의 재구성은 이런 식의 작품의 분석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재구성된, 따라서 구체화된 정신은 개개의 작품에 또 새로운 빛”을 던져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호의 말대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독해와 깊이 있는 분석이 선행되지 않는 논의의 재생산은 자칫 문학 외적인 신비화, 신화화만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김수영의 거의 모든 시 텍스트에 대해 전체적인 해석을 시도한 단행본들이 출판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특정 철학적 내용과의 연관성을 미리 가정해 놓고 관련된 일부 단어나 구절들을 아전인수식으로 끌어오는 기존의 연구방식에서 탈피해서 시 텍스트 자체에 대한 전체적이고 세밀한 해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를 특정 철학자와 연결지어 분석하거나, 아예 철학자들이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철학적 의미를 분석한 연구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연구 분야의 경계를 넘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학연구를 철학이나 심리학 분야에 종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이 책에서는 의미와 무의미, 내적 분석과 외적 분석을 모두 활용하는 다원주의적 방법으로 개별 시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김수영의 시는 어떤 장면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사실적인 시거나 반대로 의미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무의미 시 또는 불가해한 시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적인 시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김수영의 시가 1960년 사월혁명을 기점으로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그의 전기 시를 난해시로 규정하고 쉽게 해명되지 않는 부분들은 건너뛰면서 “특정 문맥”에서 “특정 주제”를 추출해 내는 데에 그치거나, 후기 시를 사실적인 고백으로 간주하고 표면적인 의미에만 집착해서 ‘여성 혐오’나 ‘소시민’이라는 과도한 비판을 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1966년의 산문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서 김춘수의 무의미 시를 비판하면서, “의미를 포기하는 것이 무의미의 추구도 되겠지만, ‘의미’를 껴안고 들어가서 그 ‘의미’를 구제함으로써 무의미에 도달하는 길”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의미를 배제한 시가 아니라 “의미를 이루려는 충동과 의미를 이루지 않으려는 충동이 서로 강렬하게 충돌”(전집:461)하는 다원적인 시를 추구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의 전기 시와 후기 시 모두 의미와 무의미, 외연과 내포,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하는 다원적인 시로 간주하면서, 무의미 속에 감춰져 있는 의미를 면밀하게 탐색해 볼 것이다.


이 책에서는 김수영의 시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도 언어적 텍스트 자체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내적 분석과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전기적 사실 등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외적 분석 등을 모두 활용하는 다원주의적 방법론을 따르고자 한다. 파스칼 카자노바도 “텍스트가 갖는 의미의 근원을 텍스트 자체에서만 찾아내는” 내적 비평과 “텍스트 생산의 역사적 조건을” 묘사하는 외적 비평 사이의 이율배반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텍스트에 관한 전형적으로 문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제문학 비평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김진엽이 제시한 다원주의 미학도 내적 분석과 외적 분석 사이의 이율배반을 해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비평을 해석과 연관하여 의도주의, 형식주의, 후기 구조주의로 구분했다. 먼저, 의도주의는 저자의 전기적 사실이나 작품의 사회적 배경 등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추측해서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저자가 직접 자신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 이상 결국 감상자의 주관적 추측에 불과하다는 문제가 있다. 외적 분석은 의도주의처럼 “객관성의 결여”라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내적 분석에 속하는 러시아 형식주의나 미국 신비평은 “작품 자체의 형식적 구조가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보는 해석 방법으로서 “작품의 자율적 본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작품의 의미는 작품 외부인 저자나 독자가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 텍스트 자체에 있으므로 “상호 작용하는 단어들이 언어의 규범에 의해서 결정됨으로써 나타나는” 의미와 텍스트의 “형식적 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후기 구조주의 비평가인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 통해 의도주의를 해체했고, 데리다가 ‘차연’이라는 개념을 통해 형식주의를 해체했다고 하면서, 이제는 한 가지 비평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더 많은 비평의 방법을 개발하는 다원주의 비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서는 먼저, 김수영의 시 작품을 그의 산문과 긴밀하게 연결해서 해석하는 외적 분석을 활용할 것이다. 일찍이 김인환은 문학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 시인의 전 작품을 하나의 작품처럼 상호 연관지어 분석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작품 전체에 내재하는 비밀의 건축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시뿐 아니라 산문도 자세히 분석”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동규도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성질상 같은 장에 놓여 있으므로 “김수영은 산문 이해를 배제한 시의 이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낙청도 “진정한 작가의 경우 그가 쓴 것 전부가 한 개의 텍스트를 이룬다는 T.S. 엘리어트의 말이 해당될 수 있는 많지 않은 한국시인 중의 하나가 김수영”이라고 하면서, “시 따로 시론 따로, 거기다 생활은 또 생활대로 따로 도는 그런 시론이 아니고, 그 자신의 삶과 시 전부를 한 지성인으로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정리해 나간 자취”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종호는 김수영의 산문이 “이상 이래의 일품이요 상쾌한 정신의 환기장치”라고 극찬하면서, 김수영의 산문은 시와 더불어 꼭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의 필연”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며, “그의 시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가 해설”이 되어 준다고 보았다. 김수영은 언제나 산문을 통해 그의 시 의식을 해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측면이 강하고, 또 “완성도 높은 산문”들을 많이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영의 산문 가운데에는 사실상 특정 시 작품에 대한 시작 노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이 책에서는 김수영의 시 텍스트 자체의 내적 구조와 의미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내적 분석을 기본적인 연구 방법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특히 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세계시민주의적 긴장의 양상, 긴장의 해법으로서 중용적 다원주의, 중용의 실천 방법으로서 시공간의 순환을 중심으로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가 개별적 가족만을 추구하는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세계시민주의 논의의 핵심인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가족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한편, 이 책은 김수영의 시 작품을 전기 1940~50년대 시와 후기 1960년대 시로 나누어 연대순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 대상인 기본 텍스트는 민음사『김수영 전집1』의 1981년 초판본과 2018년 제3판본이다. 텍스트의 연도와 순서는 민음사 제3판본『김수영 전집1』을 기준으로 삼았다. 여기에 실려 있는 시 전체 181편 가운데 세계시민주의적 긴장의 양상, 긴장의 해법으로서의 중용, 중용의 실천 방법으로서 시공간의 순환이 잘 나타나 있는 텍스트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긴장, 중용, 순환이 모두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텍스트들은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점을 중심으로 범주화할 것이다.


이 책의 서술 순서는 먼저 김수영의 시에서 세계시민주의 논의의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의 긴장이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이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그가 세계시민주의적 긴장의 해법으로 제시한 중용(中庸)이 헤겔의 변증법보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다원주의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 그가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시공간의 순환도 함께 제시했다는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제2장에서는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긴장의 양상에 대해서 현대 세계시민주의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의 긴장을 핵심 문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제1절에서는 김수영이 제시한 긴장론과 현대 세계시민주의 논의를 이론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가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의 긴장을 핵심 문제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제2절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서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제3절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서 개별적 가족과 보편적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개인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개별적 가족 생활만을 추구하는 소시민 문학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핵심 문제로 제기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제3장에서는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긴장의 해법에 대해서 중용(中庸)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제1절에서는 김수영이 제시한 중용(中庸)적 균형과 절제를 이론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가 양극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변증법이 아니라 다원주의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제2절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서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제3절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서 중용적 절제를 통해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보편적 세계문학이 아니라, 양극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김수영의 시 작품에 나타난 중용의 실천 방법에 대해서 시공간의 순환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시공간의 순환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제1절에서는 『중용(中庸)』의 시중(時中)과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개념을 이론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가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시공간의 순환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제2절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서 낮과 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 비 오는 날과 맑은 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시간의 순환이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제3절에서는 그의 시 작품에서 도시와 시골, 현실적 생활 공간과 초월적 자연 공간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공간의 순환이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그가 이론적 차원뿐만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문학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 문학박사 이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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