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하루와 하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제시하였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처럼 오늘 개별적 생활을 추구했다면, 내일은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바뀌어진 지평선」(1956)에서는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생활”을 위해서는 “요만한” “경박성”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예술의 신인 “뮤즈”에게 용서를 빈다. 현실적인 생활난에 빠져서 울지 않으려면 잠시 뮤즈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잊고, 영화배우 “로날드 콜맨”과 피우기 싫은 “담배” 등으로 상징되는 경박한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뮤즈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현실 속에서 “매춘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날개 돋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뮤즈와 같이 걸어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속지 않고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울”이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활을 상징하는 “담배”를 끊고 누구에게든 신경질을 피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뮤즈에게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활”, 즉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자신의 생활을 “경멸”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공명과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공리적(功利的)인 인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남”들이 괴로워하는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덧붙인다. 물질문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요만한”, “약간”의 경박성을 가지고 개별적 생활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물질문명 시대에는 “지혜의 왕자”처럼 도사리고 앉아서 “원죄와 회한”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뮤즈의 “생리”를 “해부”해 보는 현실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타락”한 오늘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클라크 게이블”이 나오는 대중영화, 너절한 “대중잡지” 속으로 더 깊이 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이 속물이라고 비웃을 것 같아서 적당히 “넥타이”를 매고 앉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힌다.
결국 그는 뮤즈가 “어제까지” 자신의 세력이었지만 오늘은 “나”의 “지평선”이 바뀌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정시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타락한 “신문기자”의 탈을 쓰고 살고 있다고 덧붙인다. 어제까지는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뮤즈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했지만, 오늘부터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문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오늘”과 달리 “내일”은 다시 “뮤즈”를 위해 “생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변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도 그는 “투기(妬忌)”, “경쟁”, “살인”, “간음”, “사기”가 가득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는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하다고 거듭 말한다. 그리고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처럼 아슬아슬하게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을 제시한다. 자신은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어느 한 극점에 머무르지 않고,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처럼 양극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긴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으로서 뮤즈를 “배반”하고, 뮤즈와 생활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유지하는 “모험”을 감행하려는 자신의 “간악”함이 무서워지지만, 이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뮤즈에게도 “어제”부터 출발했던 영혼의 “아름다움”과 “오늘”부터 출발하는 “육체”의 생활을 모두 얻기 위해 “복부”를 하늘을 보게 하면서 “표면”에 살라고 주문한다. 이제는 개별적 생활에 충실한 직업인으로서의 신문기자와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인 사이에서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처럼 아슬아슬하게 긴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생활을 상징하는 “콜맨”, “게이블”, “레이트”, “디보스”, “매리지”, “하우스펠 에어리어”와 정신을 상징하는 “고갱”, “녹턴”, “물새”를 다시 대립시킨다. 그리고 뮤즈에게 시인이 “시(詩)”의 뒤를 따라가기에 싫증이 났다고 하면서, 과거처럼 정신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또한 “모두” 다 같이 나가는 “지평선의 대열”을 자신의 새로운 목표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 이미 “어제”부터 출발했던 정신적 뮤즈는 걸음을 멈추고, 현실을 외면하면서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서정시인”은 조금 빨리 가서 대열을 “일자(一字)”로 만들자고 권유한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사과”, “수첩”, “담배”와 함께 걸어간다고 하면서,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뮤즈에게 “앞장”을 서지 말고 “노래”의 음계를 조금만 낮추라고 다시 주문한다. 그리고 정신을 상징하는 “우울”과 생활을 상징하는 “경박”을 모두 추구하겠다는 다원적 의지를 드러낸다. 결국 이 시의 제목인 “바뀌어진 지평선”은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정시하면서,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과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 사이에서 중용적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의 변화에 맞춰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시중(時中)”을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바뀌어진 지평선」(1956)
뮤우즈여
용서하라
생활을 하여 나가기 위하여는
요만한 경박성이 필요하단다
시간의 표면에
물방울을 풍기어가며
오늘을 울지 않으려고
너를 잊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
로날드 골맨의 신작품을
눈여겨 살펴보며
피우기 싫은 담배를 피워 본다
어느 매춘부의 생활같이
다소곳한 분위기 안에서
오늘이 봄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날개 돋친 마음을 위하여 너와 같이 걸어간다
흐린 봄철 어느 오후의 무거운 일기(日氣)처럼
그만한
우울이 또한 필요하다
세상을 속지 않고 걸어가기 위하여
나는 담배를 끄고
누구에게든지 신경질을 피우고 싶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활이 비겁하다고 경멸(輕蔑)하지 말아라
뮤우즈여
나는 공리적인 인간이 아니다
내가 괴로워하기보다도
남이 괴로워하는 양을 보기 위하여서도
나에게는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한 것이다
지혜의 왕자처럼
눈 하나 까딱하지 아니하고
도사리고 앉아서
나의 원죄와 회한을 생각하기 전에
너의 생리부터 해부하여 보아야겠다
뮤즈여
클락 게이블
그리고 너절한 대중잡지
타락한 오늘을 위하여서는
내가 ‘오늘’보다 더 깊이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웃을까 보아
나는 적당히 넥타이를 고쳐 매고 앉아 있다
뮤우즈여
너는 어제까지의 나의 세력
오늘은 나의 지평선이 바뀌어졌다
물은 물이고 불은 불일 것이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정시하기 위하여
하다못해 이와 같이 타락한 신문기자의
탈을 쓰고 살고 있단다
솔직한 고백을 싫어하는
뮤즈여
투기(妬忌)와 경쟁과 살인과 간음과 사기에 대하여서는
너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적당한 음모는 세상의 것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나에게는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하다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
아슬아슬하게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이여
너무나 가벼워서 내 자신이
스스로 무서워지는 놀라운 육체여
배반이여 모험이여 간악이여
간지러운 육체여
표면에 살아라
뮤즈여
너의 복부를랑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그러면
아름다움은 어제부터 출발하고
나의 육체는
오늘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콜맨, 게이블, 레이트, 디보스,
매리지,
하우스펠 에어리어
―(영국인들은 호스피탈 에어리어?)
뮤즈여
시인(詩人)이 시(詩)를 따라가기에는 싫증이 났단다
고갱, 녹턴 그리고
물새
모두 다 같이 나가는 지평선의 대열
뮤우즈는 조금쯤 걸음을 멈추고
서정시인(抒情詩人)들은 조금만 더 속보로 가라
그러면 대열(隊列)은 일자(一字)가 된다
사과와 수첩과 담배와 같이
인간들이 걸어간다
뮤즈여
앞장을 서지 마라
그리고 너의 노래의 음계를 조금만
낮추어라
오늘의 우울을 위하여
오늘의 경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