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낮과 밤 사이의 순환을 제시하였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는 말처럼 낮에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밤에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눈」(1957)에서도 낮과 밤 사이의 순환이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자연 공간인 산이 아니라 현실 공간인 “마당” 위에 떨어져 있는 눈이 살아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3연에서는 “눈”이 “밤”을 새고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는 시간적 의미로 확대된다. 이것은 눈이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시공간인 ‘마당-새벽’과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시공간인 ‘산-밤’의 대립을 넘어서 항상 살아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눈은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을 모두 추구하는 다원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눈”이 살아있는 이유를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영혼”과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육체” 모두 “죽음”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구라중화」에서 “죽음 위에 죽음 위에 죽음을 거듭”해야 한다고 제시했듯이 밤에는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육체”의 죽음을 통해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고, 낮에는 가장으로서 “영혼”의 죽음을 통해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면서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 사이를 무한히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눈은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마당=새벽=육체’와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산=밤=영혼’의 대립을 넘어서 항상 살아있는 다원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원적 존재인 눈처럼 인간도 ‘마당=새벽=육체’로 상징되는 개별적 생활을 위해서도 살고, ‘산=밤=영혼’으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위해서도 사는 다원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인”에게 눈을 보면서 “기침”을 하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를 뱉으라고 주문한다. 여기서 “가래”는 “현실에의 분노”가 아니라,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영혼”을 위해 밤새도록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 생긴 찌꺼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육체”의 시간인 “새벽”이 되었으니 밤새도록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 생긴 찌꺼기를 완전히 뱉어내고, 다시 일어나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러 나가라는 것이다.
결국 “눈”을 향해 “기침”을 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는 좀비 같은 상황”에서 “몰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눈 같은 존재에게 ‘나도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시간인 새벽에는 ‘마당=육체’로 상징되는 개별적 생활을 위해 살아가려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인 젊은 시인이라면 보편적 정신만 추구하지 말고, 개별적 생활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시중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눈」(1956)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