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적 세계시민 : 김수영의 절망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려는 감정을 절제하고,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인 세계시민이 양자택일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세인(世人)들에게는 비정상적이고 분열적인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통념에 맞서서 중용적 절제를 통해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절망」(1962)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이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기한 청년”을 제시한다. 그 청년은 “일본”, “이북”, “삼랑진” 등 “세계의 도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물로서 당시에 금기시되던 이북도 포용할 수 있고, “미인, 시인, 사무가, 농사꾼, 상인” “야소(예수)” 등 다양한 인물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런 “괴기한 인물”을 “천수천족수(千手千足獸)”라고 하면서, 불교에서 자비와 구원 범위가 무궁무진한 천수관음(千手觀音)처럼 긍정적인 인물로 제시한다.


그는 개별적 생활의 여유를 상징하는 “흰 쌀밥”과 안빈낙도라는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보리알”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긍정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만년필”로 상징되는 “영원한” 정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문명과 생활을 상징하는 “백(bag)” 속에 걸려 있다고 하면서, 생활과 정신 모두 “가장 가까운” “곁”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물”, “사닥다리”, “애아(愛兒)”, “거만한 문표”로 상징되는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죄를 저지른 “범인(犯人)”이 되기 전에 이미 그것들이 “범인의 것”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개별적 생활을 위해 애쓰는 속물적인 범죄를 저질러 왔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은 생활과 정신을 모두 긍정하는 다원주의자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이한 청년”은 미인, 시인, 농사꾼, 야소(예수)처럼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인물과 사무가, 상인처럼 개별적 생활을 상징하는 인물 사이를 매일매일 이행하면서 무한히 변신하는 분열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 그가 자신의 시를 “영원한 미완성”이라며 제목처럼 “절망”하는 이유도 그의 시가 생활과 정신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지 않고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세인(世人)들이 “괴기한 인물”이라며 비난하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절망」(1962)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기한 청년

때로는 일본에서

때로는 이북에서

때로는 삼랑진에서

말하자면 세계의 도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천수천족수(千手千足獸)

미인, 시인, 사무가, 농사꾼, 상인, 야소(耶蘇)이기도 한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기한 인물

흰 쌀밥을 먹고 갔는데 보리알을 먹고 간 것 같고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찾던 만년필은

처의 백 속에 숨은 듯이 걸려 있고

말하자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내 곁에 있고

우물도 사닥다리도 애아(愛兒)도 거만한 문패도

내가 범인이 되기 전에

(벌써 오래전에!)

범인의 것이 되어 있었고

그동안에도

그뒤에도 나의 시는 영원한 미완성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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