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적 세계시민:김수영의 시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려는 감정을 절제하고,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양극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인 세계시민이 양자택일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세인(世人)들에게는 비정상적이고 분열적인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통념에 맞서서 중용적 절제를 통해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시」(1961)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변화”가 끝났으니 어서 “일”을 하라고 주문한다. 겨울이 끝나고 “미지근한 물”이 “논”에 고이는 여름이 왔으니 “논”, “초가집”이 있는 농촌에서는 “장기”, “물소”, “수레”를 가지고 개별적 생활을 위해 농사일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또”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시간”이 다시 흘러서 하얀 “편지 봉투”가 누렇게 변하듯이 “땅”이 변하고, 여름이 끝나서 “논”도 얼어붙는 겨울이 왔으니, “대숲”, “푸른 하늘”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다시 추구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수레”에 “기름”을 주라고 반복하면서 여름 동안 일했던 “수레”가 “욕심의 돌” 때문에 털털거리게 되었으니, 겨울에 정신이라는 “기름”을 주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리고 “쉬었다 가든 거꾸로 가든 모로 가든” 어서 또 가라고 하면서, 시간이 흘러서 다시 여름이 오면, 겨울에 쉬었으니 다시 또 일하러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휴식의 계절인 겨울 동안 쉬면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했으니, 변화가 끝나서 노동의 계절인 여름이 오면 개별적 생활을 위해 다시 일하러 나가라는 것이다.


그가 “미친놈” 본으로 어서 “또” 가라고 말하는 것은 “미친놈”으로 오해를 받더라도 어디든 자유롭게 오가는 “실 같은 바람”처럼 생활과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계절의 변화라는 “대자연의 법칙”(「기도」)에 따라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나이”와 “시(詩)”를 연결하는 것은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만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도 함께 추구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제 이기적인 “욕심”을 상징하는 “더러운 일기”는 찢어버릴 수 있지만, “재주”를 부릴 줄 알고, “배짱”도 생겨가는 무서운 “나이”가 되었으니, 생활의 여유를 추구하는 “동그랗게 되어 가는” 시, “배부른 시”(「반시론」)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사전의 시”, “사전”이 앞을 가는 “변화의 시”를 제시하는 것도 시가 언어의 법칙인 사전을 지켜야 하듯이 인간도 계절의 “변화”라는 대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시와 시 아닌 것 사이”에서 “시”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분열적 세계시민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문학박사 이건주


「시」(1961)

어서 일을 해요 변화는 끝났소

어서 일을 해요

미지근한 물이 고인 조그마한 논과

대숲 속의 초가집과

나무로 만든 장기와

게으르게 움직이는 물소와

(아니 물소는 호남 지방에서는 못 보았는데)

덜컥거리는 수레와

어서 또 일을 해요 변화는 끝났소

편지봉투모양으로 누렇게 결은

시간과 땅

수레를 털털거리게 하는 욕심의 돌

기름을 주라

어서 기름을 주라

털털거리는 수레에데는 기름을 주라

욕심은 끝났어

논도 얼어붙고

대숲 사이로 침입하는 무자비한 푸른 하늘

쉬었다 가든 거꾸로 가든 모로 가든

어서 또 가요 기름을 발랐으니 어서 또 가요

타마구를 발랐으니 어서 또 가요

미친놈 뽄으로 어서 또 가요 변화는 끝났어요

어서 또 가요

실 같은 바람 따라 어서 또 가요

더러운 일기는 찢어버려도

짜장 재주를 부릴 줄 아는 나이와 시

배짱도 생겨가는 나이와 시

정말 무서운 나이와 시는

동그랗게 되어가는 나이와 시

사전을 보면 쓰는 나이와 시

사전이 시 같은 나이의 시

사전이 앞을 가는 변화의 시

감기가 가도 감기가 가도

줄곧 앞을 가는 사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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