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와 하루의 순환:김수영의 엔카운터지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하루와 하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제시하였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처럼 오늘 개별적 생활을 추구했다면, 내일은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시간의 순환을 시중(時中)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엔카운터지(誌)」(1966)에서는 어제와 오늘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부조리극으로 유명한 “이오네스코” 등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교양지인 “엔카운터지”를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작년”에 빌려주겠다고 한 이유가 “매춘부 젊은 애들”이 때 묻은 발을 꼬고 앉아서 유부우동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다가 생각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때는 “이오네스코”가 나오는 “엔카운터지”를 빌려주는 행위로 상징되듯이 보편적 정신을 “희생”하고, “매춘부 젊은 애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오네스코”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 “이전에” 있었다고 하면서, “내 몸”, “빛나는 몸”이 상징하는 개별적 생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큰놈”과 “가정교사”에게 안방을 내주고 “식모아이”가 쓰던 방으로 이사를 했다가, 가정교사가 싫어해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자신의 “모든 프라이드”, “재산”, “연장”인 “책”을 빌려 드리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밝힌다. 집이 작아서 가정 교사를 들이는 것이 어려워지자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책을 잠시 빌려주고,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변했다고 하면서 “왜 변했을까. 이게 문제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도 빌려줄 수는 있지만 안 빌려줄 수도 있다고 하면서, “지금”은 안 빌려주기로 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책을 빌려주는 것과 안 빌려주는 것은 시간적 상황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책을 빌려주어야 하는 시간과 빌려주면 안 되는 시간이 따로 있으므로 시간적 상황에 맞게 양극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시중(時中)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시간은 내 목숨야”라고 외치면서 “오늘”은 “어제”와 달려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빛나지 않고 그 “연관”만이 빛난다고 덧붙인다. 이것은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책”을 빌려주고 개별적 생활을 추구했던 “어제”나, 반대로 책을 빌려주지 않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오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생활과 정신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생활과 정신 어느 하나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했으니, “오늘”은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면서 긴장을 유지해야 육체와 영혼을 모두 가진 인간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는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오늘”은 빌려주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 빌려주어도 “나”도 “당신”도 “넉넉”하다며, “이게 세상이다”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어제는 보편적 정신을 상징하는 책을 빌려주고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오늘은 책을 빌려주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다시 추구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사람을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넉넉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김수영의 산문 「생활의 극복-담뱃갑의 메모」(1966)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그는 생활의 여유를 부끄럽게 여기는 “부정(否定)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하면서, 이 모순의 고민을 “시간에 대한 해석”으로 해결해 보는 것도 순간적이나마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유”가 고민으로 생각되는 것은 이것을 “고정된” 사실로 보기 때문이며, 이것을 “흘러가는 순간”, “평범한 발전의 원칙”에서 포착하면 고민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고 설명했다.(3판:159) 개별적 생활의 여유를 추구하는 것을 고정된 것으로 보면 이기적인 속물이라고 부정할 수밖에 없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즐겁게 생활의 여유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중(時中)이 바로 “시와 생활 사이에서 방황하는 김수영의 숨은 곤경”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 문학박사 이건주


「엔카운터 지(誌)」(1966)

빌려드릴 수 없어. 작년하고도 또 틀려.

눈에 보여. 냉면집 간판 밑으로―육개장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나왔어― 모밀국수 전문집으로 갔지―

매춘부 젊은 애들, 때묻은 발을 꼬고 앉아서

유부우동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다가 생각한 것

아냐. 그때는 빌려드리려고 했어. 관용(寬容)의 미덕―

그걸 할 수 있었어. 그것도 눈에 보였어. 엔카운터

속의 이오네스꼬까지도 희생할 수 있었어. 그게

무어란 말이야. 나는 그 이전에 있었어. 내 몸. 빛나는

몸.

그렇게 매일 믿어왔어. 방을 이사를 했지. 내

방에는 아들놈이 가고 나는 식모아이가 쓰던 방으로

가고. 그런데 큰놈의 방에 같이 있는 가정교사가 내

기침소리를 싫어해. 내가 붓을 놓는 것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까지 문을 여는 것까지 알고

방어작전(防禦作戰)을 써. 그래서 안방으로 다시 오고, 내가

있던 기침소리가 들리는 가정교사에게 들리는 방은 도로

식모아이한테 주었지. 그때까지도 의심하지 않았어.

책을 빌려드리겠다고. 나의 모든 프라이드를

재산을 연장을 내 드리겠다고.

그렇게 매일 믿어왔는데, 갑자기 변했어.

왜 변했을까. 이게 문제야. 이게 내 고민야.

지금도 빌려줄 수는 있어. 그렇지만 안 빌려줄 수도

있어. 그러나 너무 재촉하지 마라. 이 문제가 해결

되기까지 기다려봐. 지금은 안 빌려주기로 하고

있는 시간야. 그래야 시간을 알겠어. 나는 지금 시간

과 싸우고 있는 거야. 시간이 있었어. 안 빌려주

게 됐다. 시간야. 시간을 느꼈기 때문야. 시간이

좋았기 때문야.

시간은 내 목숨야. 어제하고는 틀려졌어. 틀려

졌다는 것을 알았어. 틀려져야겠다는 것을 알

았어. 그것을 당신한테 알릴 필요가 있어. 그것

이 책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모르지. 그것을

이제부터 당신한테 알리면서 살아야겠어―그게

될까? 되면? 안되면? 당신! 당신이 빛난다.

우리들은 빛나지 않는다. 어제도 빛나지 않고.

오늘도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

시간만이 빛난다. 시간의 인식만이 빛난다.

빌려주지 않겠다.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빌려주지 않겠다. 야한 선언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 내일을 지내고

모레를 지내는 것은 내가 약한 탓이다.

야한 선언은 안 해도 된다. 거짓말을 해도

된다.

안 빌려주어도 넉넉하다. 나도 넉넉하고,

당신도 넉넉하다. 이게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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