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자연의 순환:김수영의 이사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생활과 자연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가장으로서 현실적 생활 공간에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세계시민으로서 초월적 자연 공간에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이사」(1964)에서도 생활 공간과 자연 공간 사이의 순환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자연” 옆에 있는 “막다른 방”으로 이사를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옆방”인 자연을 “푸석한 암석”, “구름”, “갯벌”, “벌레” 등으로 묘사하면서, 자연이 보기 싫어지기 전에 이것을 차단할 “부엌문”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덧붙인다. 초월적 자연 공간 속에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 싫증이 나면 바로 옆에 있는 현실적 생활 공간인 “부엌”으로 와서 먹고살기 위한 개별적 생활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막다른 방”은 현실적 생활 공간인 “부엌”과 초월적 공간인 “자연” 사이에 있는 다원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내가 “집들이”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팥죽”을 쑬 것이라고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도 “자연”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보편적 정신만을 추구하지 않고 평범한 이웃들과 함께 개별적 생활에도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생활로부터 도피해서 자연으로 온 것이 아니라, 생활과 자연 사이를 순환하기 위해 위해 다원적 공간인 “막다른 방”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결국 “막다른 방”은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 문학박사 이건주


「이사」(1964)

이제 나의 방은 막다른 방

이제 나의 방의 옆방은 자연(自然)이다

푸석한 암석이 쌓인 산기슭이

그치는 곳이라고 해도 좋다

거기에는 반드시 구름이 있고

갯벌에 고인 게으른 물이

벌레가 뜰 때마다 눈을 껌벅거리고

그것이 보기싫어지기 전에

그것을 차단할

가까운 거리(距離)의 부엌문이 있고

아내는 집들이를 한다고

저녁 대신 뻘건 팥죽을 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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