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생활과 자연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가장으로서 현실적 생활 공간에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세계시민으로서 초월적 자연 공간에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누이의 방」(1961)에서 생활 공간과 자연 공간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숲속”에 있는 “누이의 방”이 “장마”가 지나면 익어 가는지 묻는다. 그리고 “팔월의 밤”에 누이의 방이 너무 정돈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팔월의 밤”은 이후 「여름밤」(1967)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시간인 여름을 뜻하는 “팔월”과 휴식의 시간인 “밤”이 공존하는 다원적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팔월”에는 현실적 생활 공간에서 개별적 생활을 위해 일하고, “밤”에는 초월적 자연 공간에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면서 다원적이고 입체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누이는 너무 “평면”적으로 하나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밤에는 “서울”의 얼치기 “양관(洋館)”에 있는 여자의 “댓가지 백” 속에 “조약돌”이 들어 있는 “공간의 우연”에 놀란다는 말도 현실적 생활 공간인 “서울”의 양관에서 물질문명과 돈을 상징하는 “백” 속에서 이와 모순되는 자연적인 “조약돌”이 들어 있듯이 서로 이질적인 생활 공간과 자연 공간 사이를 순환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누이의 방이 너무도 정돈되어 있다고 되풀이하면서, 누이가 초월적 자연 공간인 “숲 속”에서 입을 다문 채 매달려 있는 “여주알”이나 창문 앞에 안치해 놓은 “당호박”, “코스모스”처럼 보편적 정신만 추구하는 것이나, 당시 미국 영화 현기증(Vertigo, 1958)에 출연했던 배우 “킴 노박의 사진”, “국내 소설책들”로 상징되는 비현실적인 세계만을 추구하는 것을 “평면적”이라고 지적한다. 현실적 생활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보편적 정신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누이”에게 이런 평면적인 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이냐고 자꾸 묻는 것도 “팔월”의 “밤”에는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어느 하나에만 머무르는 평면적이고 정돈된 삶이 아니라, 양자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는 입체적이고 다원적 삶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의 계절인 팔월과 휴식의 시간인 밤이 결합되어 있는 팔월의 밤에는 현실적 생활 공간인 “서울”에서의 개별적 생활과 초월적 자연 공간인 “숲속”에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순환하면서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누이의 방-신귀거래8」(1961)
똘배가 개울가에 자라는
숲속에선
누이의 방도 장마가 가시면 익어가는가
허나
인생의 장마의
추녀 끝 물방울 소리가
아직도 메아리를 가지고 오지 못하는
8월의 밤에
너의 방은 너무 정돈되어 있더라
이런 밤에
나는 서울의 얼치기 洋館 속에서
골치를 앓는 여편네의 댓가지 백 속에
조약돌이 들어 있는
공간의 우연에 놀란다
누이야
너의 방은 언제나
너무도 정돈되어 있다
입을 다문 채
흰 실에 매어달려 있는 여주알의 곰보
창문 앞에
안치해 놓은 당호박
평면을 사랑하는
코스모스
역시 평면을 사랑하는
킴 노박의 사진과
국내 소설책들……
이런 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누이야
이런 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