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쇼크와 공정한 경쟁 교육

by 이건주
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세계 AI 시장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딥시크가 2025년 초에 공개한 추론 모델 R1은 미국 테크 기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OpenAI의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을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구 인력 139명뿐인 작은 기업이 매우 적은 비용으로 이뤄낸 혁신이다. 딥시크 R1은 사용 비용이 10분의 1에 불과한 오픈소스 모델로서 OpenAI o1 수준에 도달했다.


2022년 11월 30일 챗GPT 서비스가 등장한 이래로 딥시크 R1은 보다 효율적인 AI 모델을 향한 놀랍도록 큰 성과다. AI 경제에서 미국의 우위가 깨졌으니 이제부터 두 강대국 간 AI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한국 정부도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선언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중국 딥시크의 충격적인 성공이 학생 간 경쟁을 중시하는 중국의 교육 체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학생들은 오랫동안 수학과 프로그래밍 분야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 왔으며, 수학과 과학 분야 인재를 배출하는 데 있어 중국의 교육 시스템이 미국이나 서구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다.


특히 두로프는 서구의 학교가 경쟁을 억제하고 학생의 성적과 순위 공개 등을 금지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조치가 학생을 경쟁의 압박이나 조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는 측면은 있지만, 최고의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승리와 패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패자를 제거하면 승자도 사라진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두로프는 다수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려는 동기는 강력한 상대들과의 경쟁에서 1등을 차지하려는 “경쟁적 게임”으로 간주하는 데서 나온다고 하면서, 학생 성과에 대한 투명성을 제거하는 것은 야심 찬 10대들에게 학교가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선의의 학교 정책과 달리 스포츠나 사업, 과학, 기술 등의 부문에서는 성적과 순위가 공개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딥시크의 우월성을 입증한 AI 벤치마크 역시 이런 공개된 순위 가운데 하나라고도 밝혔다.


두로프는 모든 학생에게 성적과 무관하게 “너희는 챔피언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친절해 보일 수 있지만, 졸업 이후 이 환상은 빠르게 깨지는 것이 현실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의 중등교육 시스템에 급진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지배력 증대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서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중국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 마카오, 대만, 홍콩이 전체 81개국 가운데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한국은 수학에서 싱가포르, 마카오, 대만, 홍콩, 일본 다음으로 6위이고, 읽기는 싱가포르, 아일랜드, 일본 다음으로 4위이며, 과학은 싱가포르, 일본, 마카오, 대만 다음으로 5위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은 수학 34위, 읽기 9위, 과학 16위에 불과하다. 한때 최고의 교육 시스템으로 찬사를 받았던 핀란드도 수학 20위, 읽기 14위, 과학 9위에 그쳤다. 대학입시에서 추첨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독일은 수학 25위, 읽기 22위, 과학 22위이고, 서논술형 시험인 바칼로레아로 유명한 프랑스도 수학 26위, 읽기 29위, 과학 26위에 그쳤다.


공정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적용되는 현실적 사례로 올림픽을 들 수 있다. 특히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거둔 양궁 선수들의 놀라운 성과는 객관적 능력 중심의 공정한 경쟁과 선발 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금 증명했다. 당시 양궁 선수들도 자신이 전 종목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로 객관적 능력 중심의 공정한 선발 시스템을 들고 있다.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메달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경쟁을 무조건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수들이 목표하는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 평화의 증진에 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가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참가를 통한 국제 평화 증진이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올림픽에서 메달 경쟁은 세계 평화를 위한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승패 경쟁이 패자에게 열등감을 주고 승자에게 우월감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보상의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 평화 증진은 올림픽의 목적이라기보다 결과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정작 선수들은 국제 평화 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림픽의 표어인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가 실질적인 올림픽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시민들도 국제 평화 증진이 아니라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의 기량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감동을 받는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칭찬을 받는 이유도 그들이 국제 평화 증진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 정신이 세계 평화 증진이고, 메달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올림픽이 메달 경쟁이 없는 친선 경기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 만일 그렇게 바뀐다면 올림픽은 지속 가능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 없으면 발전도 없고, 발전이 없으면 세계시민들의 관심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에서의 패배 경험은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 열등감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훌륭한 성장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정한 경쟁에 따른 차등 보상을 불평등이라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공정하지 않은 경쟁이나 경쟁도 없이 누군가가 독점하는 것이 문제이지, 공정한 경쟁에 따른 차등 보상은 필수적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보상을 얻어 내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 불평등한 차별이라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AI 혁명 시대에는 개인 간 경쟁은 물론이고 국가 간 혁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성 경쟁이 개인과 국가의 발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AI 혁명 시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가능하도록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개개인들이 의사결정 권한을 획득하기 위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민주 정치의 기본 원리는 경쟁하는 상대방들보다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나 집단에게 통치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 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도 정치적 경쟁 과정에서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론 형성 과정의 경쟁적 개방성이 사라진 곳에서는 새로운 정치가들이 기존의 낡은 다수적 주장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이슈와 대안을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의 역동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샹탈 무페가 『경합들』(2020)에서 제시한 ‘경합적 다원주의’도 정치 세력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 무페가 말하는 경합(agonistic)은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적들 사이의 적대적 전쟁이 아니라, 서로의 이념에 격렬하게 다투더라도 그 이념을 옹호할 권리 자체는 문제 삼지 않는 대결자들 사이의 민주적 경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결자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서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 원칙에 대한 공통의 헌신을 공유하는 대립 진영을 뜻한다. 근절할 수 없는 긴장과 충돌 상황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구성하려면, 타자를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적들 사이의 쟁투가 아니라 스포츠처럼 공정하게 경쟁하는 경합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남한과 북한이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이유를 재능과 혁신을 보장하는 경제 제도에서 찾고 있다.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 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 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남한이 “재능과 혁신, 창의성에 보답하는 경제”를 수립한 덕분에 제조업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해서 “경제 재앙”을 초래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며, 신기술과 기능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가 소수가 다수로부터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고안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거나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착취적 경제 제도에 비해 경제성장에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오늘날 국가가 실패하는 주된 원인은 소수 엘리트층을 위한 “착취적 경제 제도”가 국민에게 “인센티브”를 마련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그들은 가난한 나라의 교육 수준이 낮은 것은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고 싶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제 제도와, 학부모와 아이들의 소망대로 정부가 학교를 짓고 후원할 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치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것은 한국에서 교육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실이 그만큼 국민들이 누구나 자녀 교육에 기대를 걸 수 있을 정도로 인센티브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와 교육은 공정한 능력주의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제시되어 있듯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헌법 제31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대학입시 경쟁을 통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교육이 불평등하다거나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능력주의 경쟁이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 나아가 능력주의 평가 시스템을 폐지하고 추첨제로 개편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사라진 빈자리는 능력주의 비판자들이 꿈꾸는 평등주의가 아니라 세습주의나 학벌주의가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 신입사원의 대기업 생존기를 다룬 드라마 『미생』(2014)을 보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학벌주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신입사원 장그래가 대기업 전무의 힘으로 낙하산 인턴사원이 된 것은 세습주의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장그래가 고졸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영업3팀 상사들은 물론이고 동료 인턴 사원들까지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학벌주의의 증거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는 세습주의와 학벌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고졸 검정고시 출신 장그래가 심층면접을 통과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대기업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된 것은 미약하나마 능력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 계약직이라고 해서 차별당하지 않고, 장그래처럼 우수한 성과를 보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능력주의다.


하지만 죽을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입증한 본인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나 상사들의 눈물겨운 지지에도 불구하고 장그래가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해서 퇴사하는 장면은 능력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우리 학벌주의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그나마 미약하게 존재하는 능력주의마저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공정한 능력 경쟁 없이는 발전도 없다. 능력주의 경쟁으로 인한 창조적 파괴를 부정하거나 죄악시하는 것은 혁신적 발전을 불가능하게 한다. 공정한 경쟁 시스템만이 지속 가능할 수 있고 미래의 발전도 보장할 수 있다. 능력주의 경쟁 시스템이 소수 엘리트층 기득권의 대물림 수단이 되지 않도록 공정성을 확대해야지, 능력주의 경쟁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내일이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 평등한 사회다. 경쟁이 야만인 것이 아니라, 경쟁이 없는 독점이나 신분이나 학벌이 좌우하는 불공정한 경쟁이 야만이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경쟁은 오히려 기회이고 감동이다.


물론 능력주의 경쟁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면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벌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자 무기가 바로 능력주의 경쟁이다. 가령 대학입시에서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을 일반고 출신에 비해 공식적으로 우대하는 것이 학벌주의이고, 출신 고등학교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 능력주의다.


마찬가지로 취업이나 승진 등에서 출신 대학의 학력이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학벌주의이고, 출신 대학이 아닌 개인의 능력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이 바로 능력주의다. 어떤 부모를 만났든, 어떤 고등학교나 대학을 나왔든, 대학입시나 취직 시험 등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인 사람이 합격하고 성공하는 것이 바로 능력주의다.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능력주의까지 거부하는 획일적 평등주의는 실현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정한 경쟁을 부정하는 획일적 평등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선발 시스템은 추첨제가 거의 유일하지만, 실제로 대학입시나 취업 시험 등에서 추첨제를 실시하려는 대학이나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첨제로 운 좋게 합격한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운이 나빠서 불합격한 사람들이 이를 용인할 리도 없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능력주의 시스템이 그래도 살 만한 인생, 그나마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AI 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계적인 과학기술 패권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개인 간이나 국가 간의 경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는 경쟁을 부정하면서 획일적 평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정한 능력주의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득권층의 특권이나 운수가 아니라, 가난한 학생들도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는 교육, 개천에서 용 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공정한 능력주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은 30년 경력의 교사로서의 오랜 현장 교육 체험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교육의 3대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제1부 AI 시대 인재를 기르는 미래 학교, 제2부 개천에서 용 나는 공정한 학교, 제3부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행복한 학교를 읽다 보면, 대학 교수나 행정 관료들의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교사 출신 현장 전문가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만나게 될 것이다.


부족하나마 이 책이 AI 혁명 시대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 가는 다원적 미래 학교의 길을 찾아 주고, K-교육을 새로운 한류로 이끄는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