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최근 OpenAI가 출시한 챗GPT-5는 생성 모델과 추론형 모델의 장점을 결합한 통합형 모델로서, 기존보다 훨씬 긴 대화와 문서 맥락을 유지해 신뢰성과 정확성을 크게 높였다고 한다.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GPT-3는 고등학생과 대화하는 것 같아 질문을 던지면 정답을 얻을 수도 있고, 엉뚱한 답변을 얻을 수도 있었다. GPT-4가 대학생이라면 GPT-5는 박사급 전문가와 대화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GPT-5는 기존 모델의 최대 약점으로 지목된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크게 줄이고, 알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기능을 적용했다. 이는 거대 언어모델(LLM)이 기존의 메모리 기반 신경망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처럼 단계적으로 생각하며 사실을 검증하는 추론 모델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기존 언어모델은 학습 데이터 안에서 맥락을 고려할 때 서로 연결될 확률이 가장 높은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었다. 이와 달리 추론 기능은 단순한 단어와 문장 단위의 연결을 넘어서 ‘계획 → 가설 설정 → 검증 → 결론’의 구조를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검증 단계에서 데이터를 검색하고 결과마다 신뢰도를 측정해 점수가 일정 수준 이하이면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른다’라고 답변한다. 이 과정은 답변을 내놓기 전 계획, 검증, 반복을 되풀이하며 많은 컴퓨팅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AI는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인간 고유의 인지 능력까지 위협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맞서 인간의 인지적 우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적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이나 인간보다 더 똑똑한 초인공지능(ASI)의 시대가 멀지 않은 듯하다.
이선 몰릭은 저서 『듀얼 브레인』(2025)에서 AI를 공동지능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켄타우로스’ 방식이다. 사람과 말의 몸체가 결합되어 있지만 경계가 뚜렷한 존재인 켄타우로스처럼 사람과 기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방식이다. 전략적 판단은 사람이 맡고,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은 AI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고서에서 어떤 분석 방법을 쓸지는 사람이 결정하지만, 실제 통계 처리나 그래프 작성은 AI가 맡는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력과 AI의 효율성이 균형을 이루어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몰릭은 AI의 진가가 ‘사이보그적’ 활용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인간과 기계가 경계 없이 사이보그처럼 통합되어 함께 문장을 쓰고 동시에 아이디어를 다듬는 과정은 단순한 분업이 아니라 동반 창작에 가깝다. 작업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AI에게 넘어가고 다시 사람이 이어받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창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AI 활용을 켄타우로스적 방식에서 시작한다. 지루하지만 검증이 쉬운 단순 보고서 작성이나 이메일 정리를 AI에게 맡겨 보면서 삶이 편리해졌다는 체감을 얻는다. 이 경험을 통해 사람은 점차 사이보그적 활용으로 나아간다. 몰릭은 AI와 인간이 함께 사고하고 창조하는 공동지능 단계에 이르면, AI가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해 인간이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 같은 고유의 특성이 필요한 영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박형빈 교수는 『AI 시대 대한민국 교육 변혁』에서 AI 시대 교육의 핵심 방향을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 교육에서 찾았다. 과거 교육이 지식 전달과 수용에 치중했다면, AI는 맞춤형 학습자 중심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역량은 단순 암기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이며,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몰릭은 AI 시대에도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I는 스스로의 결정을 되돌아보거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AI는 실제 처리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신 사용자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답을 꾸며낸다. 거대언어모델은(LLM)은 본질적으로 텍스트 예측 기계이기에 그럴듯하지만 미묘하게 틀린 답을 내놓는 데 능숙하다. 이러한 환각 문제 때문에 AI가 제시하는 지식은 오히려 불완전하여 반드시 검증이 필요하다.
몰릭은 바로 그 환각이 새로운 연결을 낳고 창의적 발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신뢰하기 어려운 약점이 역설적으로 창의성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잘하는 창의적 작업의 예가 의외로 많다고 설명한다. 마케팅 글쓰기, 성과 평가, 전략 분석 등 정답이 없고, 창의적 발상이 중요하며, 전문가가 사소한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영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생성형 AI는 짧은 시간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뛰어나므로 모든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
물론 AI는 평균적인 답변을 내놓는 경향이 있어 참신한 아이디어를 스스로 발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용자가 평균적인 답변을 넘어 창의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압박한다면 AI도 새로운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다. 몰릭은 관련 연구에서 AI의 능력은 대학교수처럼 고학력·고임금·고창의성이 요구되는 직업군과 가장 많이 겹쳤다고 설명한다.
몰릭은 AI 시대에 유용한 사람이 되는 길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AI는 정보 탐색, 논문 요약, 글쓰기, 코딩 작업에 뛰어나고,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인류의 집단 지식을 상당 부분 축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 지식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몰릭은 오히려 반대라고 본다. AI가 켄타우로스나 사이보그로서 업무를 보조할수록 그 처리 과정을 감독할 인간 전문가가 더욱 절실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AI 시대에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만 강조하는 것이 충분치 않음을 시사한다. 오히려 AI가 능숙해질수록 그 결과물의 유효성을 판단할 인간 전문가가 더욱 필요하게 된다.
교육에서도 AI 개인교사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질문의 수준에 따라 답변의 깊이가 달라진다. 초등학생 수준의 질문에 대응하는 것과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의 전공 질문에 대응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식이 많은 학생일수록 AI 개인교사로부터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답변을 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교사들은 학생들의 질문만 들어도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AI에게 좋은 질문을 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AI가 모든 지식을 알려주기 때문에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부한 지식을 가진 학생일수록 AI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AI 기술 혁명 시대에 수학, 과학 등 기초 지식 교육 수준이 낮으면 국가적이고 개인적인 경쟁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초중고 교육 단계에서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력 등 고등 사고력만 강조하면서 기초 지식 교육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반대로 초중등 교육 단계인 초중고에서 기초 지식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고등 교육 단계인 대학교에서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력 등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학생의 발달 단계나 학습 위계에도 부합한다.
결국 AI 혁명 시대 학교 교육의 방향은 지식과 창의성의 다원적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기초 지식들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기초 지식 교육은 창의성 교육의 기본 바탕이기도 하다. 따라서 AI 시대 인재를 기르는 미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검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지식을 갖추게 하는 기초 지식 교육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창의성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