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향상을 위해 초등 한자교육 확대

by 이건주
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AI 혁명 시대에 문해력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가공해서 우리 앞에 내놓는다. 하지만 그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에게 달려 있다. 문해력이 부족하다면 AI가 제공하는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해석에 쉽게 휘둘린다. 이는 개인의 의사결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적 토대에도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문해력은 필수다. AI는 언어를 기반으로 작동하기에, 정확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요구된다. AI는 인간의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는 챗봇(Chatbot)이므로 질문을 제대로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곧 AI 활용 능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경제와 고용의 지형에서도 문해력은 인간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단순 반복 업무가 AI에 의해 대체되면, 남는 일은 기획, 분석, 의사소통, 의사결정처럼 고도의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성과를 내려면 글 속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고등 사고력의 바탕이 되는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결국 문해력 교육은 읽기·쓰기 훈련을 넘어,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AI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시대에서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문해력 교육의 강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AI 혁명 시대 핵심 역량인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의 기반이 되는 기본적인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하면서 국어 어휘력을 기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고3이 풍력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난감했음”, “중3 학생이 수도라는 말을 몰라 충격받았습니다.”, “6학년이 성명의 뜻을 모릅니다.”, “두발 자유화 토론을 하는데 두발이 두 다리인 줄 알았다네요.”,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생각함”, “족보를 족발 보쌈 세트로 알고 있었습니다.”,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욕하냐고 말함”, “체험학습 계획표 중식 안내를 보고 짜장면 먹냐고 물음”, “사회 시간에 단어를 이해 못 하는 친구가 90%” 등등


한국교총이 2024년 전국 초·중·고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 보도자료에 나오는 장면들은 지금 우리 학생들의 한자 어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어떠냐는 질문에는 ‘저하됐다’는 답변이 무려 91.8%에 달했다. 해당 학년 수준 대비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20%를 넘는다고 답한 교원이 절반 가까운 48.2%였고, 어려운 단어나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20%를 넘는다는 답변은 무려 67.1%였다.


교사들은 학생 문해력 개선을 위해 필요한 방안으로 독서 활동 강화(32.4%)를 가장 많이 응답했고, 어휘 교육 강화(22.6%), 디지털 매체 활용 습관 개선(20.2%)이 뒤를 이었다. 토론·글쓰기 등 비판적 사고 및 표현력 교육 강화(11.4%)도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현장 교사들은 독서 활동 강화와 함께 한자어 어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열린 교육이 초등학교에 도입되고, 벌써 30년 전에 사고력 중심의 수능시험이 암기력 위주의 학력고사를 밀어내면서 요즘 학생들은 암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국어 교사들이 이해력과 사고력을 주로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도 이해만 하고 넘어갈 뿐, 기본적인 어휘마저 암기하지 않고 지나간다. 더구나 지금은 한문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도 많지 않아서 고등학생조차도 한자로 된 국어 어휘를 우리말 식으로만 알아듣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한글 옆의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했는데, 언제부턴가 한자 없이 한글만 쓰다 보니 원래 한자어였는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학생들의 심각한 문해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휘력을 향상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 초등학교 한자 교육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문해력 부족 사례들은 특정 한자어의 뜻을 모르거나 혼동하는 어휘력의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조차 국어 수업 시간에 어려운 한자 어휘 풀이와 단어 테스트만 하다가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학생들이 한자를 알아야 한자로 된 국어 어휘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대학 진학은 물론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반드시 요구되는 문해력과 사고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 국어에는 한자를 알아야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어휘가 60% 이상이며, 고등학교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중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사회 시간이나 과학 시간에도 관련 단어의 뜻을 묻는 학생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각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어는 거의 모두 한자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운 한자 대신 우리말을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한자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일상 용어 가운데 지금 잘 쓰지 않는 한자어는 우리말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국립국어연구원 등에서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대체로 말이 길어져 통용되기도 어렵다. 더구나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나 학술 용어 등에 수없이 많은 한자어를 모두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AI 시대 인재를 기르는 미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하면서 국어 어휘력을 기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AI 시대 핵심 역량인 창의력이나 고등 사고력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인 문해력과 사고력 교육을 위해서 어휘력 향상을 위한 초등학교 한자 교육 강화가 필수적이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


keyword
작가의 이전글AI 디지털교과서를 세계 최고의 교육자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