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일본 과학자들이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에 이어 화학상까지 수상했다. 과학 분야에서 올해만 2명째, 지금까지 총 26명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이번에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KBS의 ‘인재전쟁’에서도 지적했듯이 공대에 ‘미친’ 중국에서는 이공계 연봉이 의대의 2~3배에 이르는 반면에 의대로 몰리는 한국에서는 의사 평균 연봉이 IT업계 종사자 연봉보다 4배나 많은 3억 1천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매년 3만 명에 달하는 이공계 인재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방송 내용도 충격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평균 연봉이 3억 6,900만 원인 데 비해 한국 개발자의 연봉은 8,606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공계 인재들이 더 나은 처우와 기회를 찾아 미국 등 해외로 유출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계적인 AI 패권 경쟁 시대에 최첨단 과학기술을 확보하고, 노벨 과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기초 과학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공계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최소한 이공계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이미 외국으로 떠난 인재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제도적·경제적 뒷받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첨단 과학 인재를 길러내는 과학고와 영재고에 대한 지원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24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이 1위 미국과 2위 중국에 이어 종합 3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들이 거둔 우수한 성과 덕분이었다. 그런데 한국이 2017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의 3위는 다소 아쉬운 결과다. 당시 중국은 2위, 미국은 4위였으나 지금은 역전당한 것이다. 특히 중국은 수학뿐 아니라 과학 전 분야에서 꾸준히 세계 1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과학고와 영재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한층 더 확대해야 한다.
과학고와 영재고가 부족한 지역에는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8개의 영재학교와 20개의 과학고가 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서울과학고, 경기과학고, 대전과학고, 대구과학고, 광주과학고,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는 영재학교로 분류된다.
20개 과학고 중 수도권에는 경기북과학고(경기도), 세종과학고(서울), 인천과학고(인천), 인천진산과학고(인천), 한성과학고(서울) 등 5개교가 있다. 비수도권에는 강원과학고(강원도), 경남과학고(경상남도), 경북과학고(경상북도), 경산과학고(경상북도), 대구일과학고(대구), 대전동신과학고(대전), 부산과학고(부산), 부산일과학고(부산), 울산과학고(울산), 전남과학고(전라남도), 전북과학고(전라북도), 제주과학고(제주도), 창원과학고(경상남도), 충남과학고(충청남도), 충북과학고(충청북도) 등 15개교가 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은 과학고 진학을 희망하는 경기 지역 학생들이 교육 혜택과 진학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근거로 2024년부터 과학고 신설을 추진하였다. 서울, 부산, 인천 등은 인구가 경기도보다 훨씬 적음에도 과학고가 2개 학교씩 있는 반면에, 인구 1,400만 명에 이르는 경기도에는 경기북과학고 1개 학교뿐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부천, 성남, 시흥, 이천에 새로운 과학고가 설립되는 방안이 교육부 동의를 받아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 신설되는 과학고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미래 학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과학고와 영재고의 과도한 확대는 고등학교 서열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이미 한국의 고등학교 체제는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순으로 사실상 서열화되어 있다. 다양한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성적이라는 단일 기준에 의해 획일적으로 구분되는 구조다. 이런 서열화는 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입시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지금도 중학생들은 특목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당시 교육부는 서열화된 고교 체제가 교육 전반을 왜곡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들 학교의 일반고 전환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과학고와 영재고는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특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AI 혁명 시대를 선도할 첨단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과학고와 영재고 확대가 불가피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입학한 학생들이 의대로 빠져나가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현재 영재학교에서는 진로‧진학 지도 미실시, 학교생활기록부Ⅱ 제공, 교육비․장학금 환수의 3가지 제재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영재학교에서 의·약학 계열 희망 시에는 대학 진로‧진학지도를 실시하지 않고 일반고 전출이 권고된다. 그리고 의·약학 계열에 지원할 경우 대입전형에 필요한 학교생활기록부는 영재학교 교육과정 등이 반영되지 않은 학교생활기록부Ⅱ를 제공한다. 여기서 교과학습발달상황은 학점으로 표기되지 않고 석차 등급을 제공하고, 연구‧리더십 활동 등 영재학교에서 추가로 운영되는 교육과정은 반영되지 않으며, 창의적 체험활동 등의 일부 항목은 공란으로 처리된다. 또한 의·약학 계열에 진학할 경우 일반고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교육과정 운영 추가 교육비 및 학교 지급 장학금을 환수한다.
교육부의 ‘2025학년도 영재학교·과학고 의·약학 계열 진학률’ 발표에 의하면, 영재학교 졸업생의 의·약학 계열 진학률은 2023년에는 10.1%로 매우 높았지만, 2024년 6.9%, 2025년 2.5%로 2년 연속 감소하였다. 8개 영재학교 졸업자 812명 가운데 44명이 지원해서 20명이 진학하였다. 그리고 과학고 졸업생의 의·약학 계열 진학률도 2023년 2.2%였던 것이, 2024년 2.1%, 2025년 1.7%로 계속 감소하였다. 20개 과학고 졸업자 1,560명 가운데 91명이 지원해서 27명이 진학하였다.
2020년 이후 상승세를 보이던 영재학교·과학고 졸업생의 의·약학 계열 진학 추이가 2023년을 정점으로 하락 추세로 전환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그동안 교육부와 전체 영재학교가 「의·약학 계열 진학 제재 방안(2021.4.)을 공동으로 마련한 이후, 영재학교 학생들의 이공계 진로·진학 지도를 지속적으로 강화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과학고도 영재학교의 방안을 준용하여 자율적으로 제재 방안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이공계 분야의 우수 인재 양성이라는 영재학교 및 과학고의 설립 목적 달성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앞으로도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의대로 진학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국내 연구자와 기업가들이 의대를 선택하지 않고 이공계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사회적 보상과 인센티브가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 첨단 과학기술 인재가 해외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외 인재가 한국으로 몰려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국에서 의사가 공무원으로 편입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을 받는 제도적 배경 때문에 인재들이 공대로 몰린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사 보수를 공무원 수준으로 제한할 수는 없으므로 대신에 이공계 분야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몰릴 수 있도록 강력한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I 시대 인재를 기르는 미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탓하며 ‘의대망국론’만 외칠 것이 아니라, 영재고와 과학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이공계에 진학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적인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학교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