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2021)에서 고교학점제를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라고 정의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추진 배경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재상을 들었다.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구조와 직업 세계의 변화, 감염병 유행 등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OECD 등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삶에 대한 적극성과 주도성, 책임감을 지닌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학생의 선택이 중심이 되는 고교학점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탐색을 거쳐 학생 스스로 진로를 설정하고 개척해 갈 수 있도록 교육과정 다양화, 진로·학업 설계를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진로와 연계한 과목 다양화, 소인수 담임제 등 학급 운영 변화, 학생 맞춤형 책임교육 강화, 학점제형 공간 조성 등의 변화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학점제에서 학생은 학교가 짜주는 획일적인 시간표가 아니라 희망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하게 되고, 학급 기반의 담임제 운영도 소인수 학생 중심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2025년부터 시작된 고교학점제에서는 고등학교의 수업·학사 운영이 기존의 ‘단위’에서 ‘학점’ 기준으로 전환되고, 학습량 적정화와 학사 운영 유연성 제고를 위해 졸업 기준이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조정된다. 1학점은 50분을 기준으로 하여 16회를 이수하는 수업량이다. 1시간의 수업은 50분을 원칙으로 하되, 기후와 계절, 학생의 발달 정도, 학습 내용의 성격, 학교 실정 등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편성·운영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 3년간 이수해야 할 최소 이수 학점을 의미하는 총 이수 학점은 192학점이다. 총 이수 학점 192학점 가운데 교과(군)는 174학점, 창의적 체험활동(창체)은 18학점(288시간)이다. 학교는 학생이 고등학교 3년간 최소 192학점을 균형 있게 이수할 수 있도록 학기당 32학점(교과 29학점, 창체 3학점) 정도로 편성해야 한다.
먼저, 창체는 기존의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으로 구분되어 있던 것이 진로탐구활동 9학점과 동아리 및 자치활동 9학점 두 가지로 단순화된다. 봉사활동은 별도로 구분되지 않고, 진로탐구활동이나 동아리 및 자치활동과 연계해 운영된다. 신설된 ‘진로탐구활동’은 자기 주도적 진로 설계 역량 함양을 목표로 하여 기존의 진로활동과 자율활동 가운데 탐구형 자율활동이 통합된 것이다. 여기서는 진로 관련 프로젝트 학습, 체험 중심의 학교 신설 과목, 교과 융합 활동 등 교과와 연계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교과(군)에 편성된 174학점 가운데 필수 이수 학점은 84학점이고,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하여 편성하는 자율 이수 학점은 90학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자율 이수 학점 일부를 교과 연계성 등을 고려하여 ‘학교 지정’ 학점으로 편성할 수 있으므로, 실제 학생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학점은 90학점보다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필수 이수 학점은 공통과목으로 편성되고, 자율 이수 학점은 선택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다만, 체육 10학점, 예술 10학점, 기술·가정/정보/제2외국어/한문/교양 16학점은 필수 이수 학점으로 편성되어 있지만, 별도의 공통과목이 없으므로 선택 과목 가운데에서 배정해야 한다. 그리고 과목의 이수 시기와 학점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하되, 학생이 학기 단위로 과목을 이수할 수 있도록 편성·운영하고, 공통과목은 해당 교과(군)의 선택과목 이수 전에 편성·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공통과목’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어, 수학, 영어 교과의 공통과목은 공통 국어, 공통 수학, 공통 영어로 각각 8학점이 필수 이수 학점으로 편성되어 있다. 학생의 발달 수준 등을 고려하여 공통수학 1·2와 공통영어 1·2를 기본수학 1·2와 기본영어 1·2로 대체 이수하도록 편성·운영할 수 있다. 국어·수학·영어 교과의 이수 학점 총합은 81학점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며, 교과 이수 학점이 174학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과 이수 학점의 5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 교과의 공통과목으로는 한국사 6학점, 통합사회 8학점 총 14학점이 필수 이수 학점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리고 과학 교과의 공통과목으로는 통합과학 8학점, 과학탐구실험 2학점 총 10학점이 필수 이수 학점으로 편성되어 있다. 공통과목의 기본 학점은 4학점이며, 1학점 범위 내에서 감하여 편성·운영할 수 있지만, 한국사 기본 학점은 3학점이며 감하여 편성·운영할 수 없다. 그리고 과학탐구실험의 기본 학점은 1학점이며 증감 없이 편성·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편, 고교학점제에서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목은 일반 선택, 융합 선택, 진로 선택으로 보다 확대되었다. 일반 선택은 교과별 학문 내의 분화된 주요 학습 내용 이해 및 탐구를 위한 과목이고, 진로 선택은 교과별 심화 학습(일반 선택의 심화 과정) 및 진로 관련 과목이다. 그리고 신설되는 융합 선택 교과는 교과 간 주제 융합 과목, 실생활 체험 및 응용을 위한 과목이다.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시험에서 주로 출제되는 일반 선택과목을 학교 지정 과목을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학생이 이 교육과정에 제시된 선택과목의 개설을 요청할 경우 해당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의 선택과목 이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되, 학교에서 개설하지 않은 선택과목 이수를 희망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그 과목을 개설한 다른 학교에서의 이수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서 학교 현장에서 고교학점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취지대로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 등 고교학점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초‧중학교부터 학습 결손이 누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에만 책임교육을 강조하여 교사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최근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안)'(2025)에서 그동안 가장 논란이 되었던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최성보)에서 예방‧보충지도 시수 감축 등 기존 지침을 완화하고, 학교별로 자율적 운영하도록 유연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성보 운영 시 보충지도는 반드시 포함하여 운영하되, 예방‧보충지도 시수를 현행 1학점당 5시수에서 3시수 이상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50%까지만 인정되었던 예방지도와 25%까지 인정되었던 정서지원 프로그램 인정 범위도 확대하는 등 구체적인 운영 방법은 교육감이 정하는 규정에 따라 학교에서 과목, 학생의 여건을 고려하여 자율적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출석률 산정 기준도 실제 수업횟수의 2/3 이상으로 되어 있어서 학사 일정 운영 과정 중 행사 실시 등으로 과목별로 편차가 있는 것을 과목마다 동일하게 1학점당 수업량 16시수의 2/3 이상으로 조정되었다. 그리고 출석률 미도달에 따른 추가학습은 100% 온라인 프로그램으로도 운영 가능하도록 완화되었다.
또한 교육부는 변경된 나이스(NEIS) 출결 처리 방법이 복잡하여, 학교 내 학생 출결 처리와 관련한 교사의 업무 부담 가중된다고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학점 이수 기준인 과목 출결의 정확한 관리를 위해, 나이스 권한을 과목 담당 교사로 한정 부여함에 따라, 과목 교사의 업무 가중 및 담임교사와의 소통 혼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스(NEIS) 수업 교시별 출결 처리 권한을 과목 담당 교사와 담임교사에게 동시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공통과목(7과목)의 학기 단위 분할 운영으로 인해, 이전에 비해 ‘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기재 분량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 과학, 과학탐구실험’ 과목을 학기 단위로 분할해서 운영하다 보니 기재 분량 기존 500자에서 1,000자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통과목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재를 현재 1,000자에서 기존대로 1·2학기 과목 합산 최대 500자로 변경하며, 1학기 교과학습발달상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마감 시한을 ‘학기말’에서 ‘학년말’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원활한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한 적정 교·강사 확보 부족으로 다양한 과목 개설이 제한되어 있고, 학교의 소재지, 규모에 따라 편성·개설 과목 수의 격차 발생하고 있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적정 교원 정원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온라인학교, 공동교육과정 등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해 2026년 정원 긴급 확보를 추진하고,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학교가 필요한 강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대학 시간제 강사 등이 고교 수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고교-대학 간 협력이 강화되고, 교·강사 인력풀 조성, 학점제 컨설팅 등 학교의 학점제 운영을 지원하는 ‘고교학점제 시도지원센터’가 연내 모든 시도로 확대 설치·운영된다. 대학 교원, 연구원, 산업계 전문가 등으로 강사 풀을 구성·공유하여 다양한 강좌 개설도 지원하게 된다.
또한 교육부는 학교 현장에서 학점 미이수에 따른 낙인효과가 발생하고, 학교생활 부적응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25년 1학기 학업성취율만 미도달 학생이 6.1%, 학업성취율&출석률 미도달 학생이 0.5%, 출석률만 미도달이 1.1%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학점 이수 기준을 완화하기 위해서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보장하는 고교학점제의 취지 달성과 함께 현장의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공통과목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선택과목의 경우 학점 이수 기준을 제외하고 출석률만 적용하는 방안과 교육부 자문위원회에서 권고한 것처럼 공통‧선택과목 모두 출석률만 적용하고 학업성취율은 보완 과정을 거쳐 추후 적용하는 방안을 함께 국가교육위원회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AI 혁명 시대에 고교학점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진로를 탐색하면서 자율적인 과목 선택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이다. 기술과 산업 구조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모든 학생을 동일한 틀에 가두는 획일적 교육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
학생 과목 선택권의 확대는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스스로 고른 과목은 시험을 위한 공부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향한 준비가 된다. 이 과정에서 학습 몰입도는 높아지고, 스스로 배우고 결정하는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길러진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도 바로 자신의 진로와 과목을 선택하는 교육적 경험 속에서 자란다. AI 시대의 고교학점제는 제도의 변화를 넘어, 학생을 수동적 지식 수용자에서 능동적 학습 설계자로 바꾸는 교육 혁신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교육은 더 유연해져야 한다. 과목 선택권 확대는 그 유연성을 담보하는 첫걸음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서 대학입시에서도 학생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탐구력을 키우는 ‘자기 주도적 역량’이 매우 중요해졌다. 학생들은 교육과정과 교과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발표하는 ‘학과별 권장 과목’을 통해 자신의 진로 분야에 필요한 과목을 잘 선택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대학마다 입학처 등을 통해 전형 및 학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특히 ‘전공 관련 교과 이수 노력’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과목 선택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으로 학생 중심 미래 교육의 방향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확대함으로써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학생 자신이 직접 선택한 과목은 그렇지 않은 과목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부가 발표한 대책들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그동안 고교학점제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미래 교육의 방향에 부합하는 고교학점제가 학교 현장에서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원하기 바란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교육적 당위만 내세워 학교 현실을 무시하는 정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