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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머 Aug 25. 2022

1이 좋음을 찾으려는 게 서글퍼질 때

‘오늘 구름이 너무 예쁘다.’

‘오늘 먹은 점심이 맛있었다.’


나의 하루는 좋고, 나쁜 작은 요소들로 이뤄진 집합체이다. 가령 날씨가 좋았거나 점심으로 먹은 밥이 맛있었다거나 길 옆 학교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칠 때. 하나의 요소 요소가 모여 즐거움이 되고, 하루를 좌우하고, 행복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어떤 하루는 하나의 좋은 요소도 찾기 힘든 날이 있다. 진짜 아무 즐거움도 없던 하루인 건지. 내 마음이 즐거움을 찾지 못하도록 빼앗은 건지 모를 때 말이다.


그럼 나는 애써 1의 좋음을 찾으려 노력한다. 오늘은 뭐가 좋았더라. 오늘은. 오늘은 말이야..


생각 끝에 찾은 좋음은 너무 별 것도 아닌, 어쩌면 억지로 꺼내온 좋은 마음이라 노력에 비해 작은 좋음에 허망해질 때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1의 좋음을 찾으려는 내가 서글퍼진다. 나쁜 건 9인데 1의 좋음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나의 수고가 무력해진다.


하루에서 애써 좋았던 일을 떠올려야 하고, 별 거 아닌 일에도 좋음이라 우겨보는 일이 문득 지칠 때가 있다.


지쳤던 하루는 그냥 지친 하루로 정의하고, 울적했던 하루는 우울한 하루로 정의하면 될 것을 나는 지친 하루에 1의 좋음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9의 나쁨으로 정의되어야 하는 나날들에 1의 좋음을 더한다고 해서 10이 되지 않는다. 9의 나쁨은 9로 온전하게 정의되는 하루니 말이다.


반대로 9가 좋은 날, 억지로 1의 나쁨을 상기시키려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억지로 작은 좋음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의 좋음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날에는 ‘비교’라는 마음이 찾아온다. 다른 사람은 즐거움, 환희, 기쁨, 웃음이 9인데 나는 왜 그 하나의 요소에만 만족해야 할까 하는 ‘비교’. 비교로 끝나는 결론은 나쁨을 완성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하루’보다는 ‘그렇기에 힘겨웠던 하루’로 정의하려 한다. 작은 좋음 앞에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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