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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힘들었지? 수고했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받은 위로

출근길 지하철. 지쳐보이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그늘과 피곤이 가득하다. 출근길에 오른 지하철은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다. 비좁은 공간 사이로 몸을 구겨 넣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적막이 흐른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일터로 나가야 하겠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쯤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열차는 지연되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메마르고 삭막한 일상의 테이프가 반복 재생되는 다큐멘터리처럼 감기고 있었다. 눈을 감고 내게 주어진 좁은 공간에서 바짝 오그라든 채 실려간다. 넓은 서울 한 가운데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것처럼, 노력해도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힘든 것처럼 지하철은 인생의 작은 축소판같이 나를 옥죄어 오는 공간이다.


그렇게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승객 여러분, 많이 더우시죠? 이번 역은 승객 분들이 많이 하차하시는 사당 역입니다. 충분히 시간을 드릴테니 조심해서 천천히 내리세요."

라디오를 듣지 않는 나지만 라디오 DJ가 있다면 이 기관사의 목소리일 것 같았다. 아무리 땀을 흘려도 고된 출퇴근 길에 몸을 맡겨도 누구 하나 "힘들지"라고 물어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가끔 승하차할 때 안내 방송을 하는 기관사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따뜻함을 느끼고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왜 유독 힘들어하냐는 주변의 반응에  나는 내가 한없이 약하다고만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거 아니야.' 


이런 말에 익숙해져 오히려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이 정도는 거뜬히 견뎌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따뜻하게 "힘들지?" 라고 물어봐 주는 기관사의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공감(共感).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그렇게 느끼는 기분.


때로는 공감이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될 수 있다. '힘들다'는 말이 너무 잦아 그 무게가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묵직한 돌덩이가 있다. 저마다 짊어진 돌덩이의 무게가 다르지만 말 한마디가 시원한 바람, 잠깐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에 눈물이 마르고 목적지인 교대에서 문이 열린다. 계속 지하철을 타고 따뜻한 위로를 듣고 싶지만 나의 목적지를 향해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목소리로나마 다음에 다시 또 만날 수 있길 바라며 뜻하지 않은 선물을 준 기관사에게 감사했다. 오늘은 소중한 사람들의 등을 쓸어내리며 토닥토닥 '힘들지 수고했어'라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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