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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게 참 많을 나이, 30살

빨간 약과 파란 약 당신의 선택은?

한창 부러운 게 많을 나이, 30살


부모의 재력이 능력이라 말하는 세상, 평생 일해도 노동만으로는 벌기 어려운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경찰청장이 우리 아빠랑 베프야”라고 말할 수 있는 과시와 오만이 부럽기도 했다. 그만큼 가진 게 많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기분은 어떨까. 그들을 욕했지만 그건 부러움이기도 했다. 가질 수 있다면 가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니 먹지 못하는 감에 침이라도 뱉어본다.


마음 속 깊은 구석에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혹은 ‘나라면 그렇게는 안 할 텐데’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서민인 나의 안목으로는 천문학적인 돈을 갖고도 ‘왜 인생을 그렇게 살까?’라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서민이라서 좋은 점도 있어’라고 정신 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 약쟁이는 아니고 속이 박박 긁히는 어려움을 견뎌봤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안다며. 분명 개미의 삶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말하고 싶지만 현실이 팍팍한 건 어쩔 수 없다.


서민인 나는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삶을 산다. 금요일은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고 일요일 10시가 되면 곧 자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월요일에는 또 무슨 스펙타클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월요일마다 돌아오는 마법, 월요병에 걸린다.


출근길 지옥철이 싫어 퇴사를 생각하다가 남들은 잘만 다니는 회사, 나만 이렇게 힘든가, 한계치가 너무 낮은가 생각하게 된다. 한 회사를 10년 이상 다닌 사람들을 취재하면 항상 묻는 질문이 “회사를 오래 다닌 비결이 뭔가요?”일 만큼, 장기근속이란 꿈 같은 일이다.


존버는 승리한다?


존버는 승리한다는데 승리가 약의 노예가 되고 있을 때, 나는 승리(Victory)와 멀어지고 있었다. 대상만 다를 뿐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쾌락에 정신을 야금야금 먹히는 일과 고뇌로 몸과 마음이 조금씩 병드는 것.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이 좀 더 즐겁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결과를 놓고 봤을 때 과연 ‘좋다’고 할만한가.


고뇌와 쾌락, 두 개의 사과가 내 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매트릭스의 빨간 약, 파란 약처럼 빨간 약을 택하면 가짜인 현실에서 깨고 파란 약을 고르면 진실을 외면한 채, 가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단순히 고뇌=빨간약, 쾌락=파란약으로 나누는 것은 억지로 보이지만 편의상 나누어본다)


어쩌면 많은 돈으로 누리는 호사들은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돈으로 산 친절, 돈으로 만든 거짓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한 가지 형태일 뿐, 진실을 가리지 못한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애초에 없었지만 랜덤으로 파란 약을 받은 자라면, 누리게 된 모든 일에 감사하며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베풀지는 못해도, 적어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게 ‘가진 자’의 특권이 돼서는 안 된다.


제 자리에서 분개하는 일개미지만 존버의 삶을 살아가는 일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자기 위안이며 정신 승리라 말해도 쾌락만 좇는 삶보다는 감히 가치 있다 말하고 싶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고 생계를 위해, 자아 실현을 위해 인생을 감내하는 자들이 있어 세상은 돌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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