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다
전문가는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인턴, 아르바이트를 포함하여 다양한 일을 해봤다. 인터뷰 취재기자, 의류매장 판매관리, 출판기획, 에디터, 콘텐츠 기획 등등. 이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일은 ‘인터뷰 취재기자’다. S사 취재기자 인턴으로 첫 단추를 끼우면서 앞날이 정해진 것 같다. 취업 포털사 인턴을 발판으로 현재도 인터뷰 취재기자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취재를 하면 다양한 직무 전문가를 만난다. 전문가란 무엇일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에서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만 시간은 적어도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투자해야 하는 머나먼 여정이다. 직장인 10년 차라면 적어도 한 직종에서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인이 아닌 이상, 한 분야의 전문가를 아무 이유 없이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인턴 때 만난 분들이 전부 한 분야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몸 담가온 전문가들이었기 때문. 콘텐츠 컨셉상 그들을 멘토라고 칭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멘토는 여자 통번역가 멘토님이었다. 그분은 통번역학을 전공한 후 동일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사내에서 영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했지만 경력을 쌓은 뒤 프리랜서로 독립하여 대기업 등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멘토님은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중간중간 인터뷰 기사에 실을 만한 사진도 보여주셨다. 기업 총수 옆 자리에 앉아 상대편 외국인의 말을 번역하여 전달하는 모습, 빠르게 지나가는 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암호처럼 단어를 적은 노트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제스처 하나에도 긍정적인 마인드와 여유,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묻어났다.
일하기 싫어서 앓는 소리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멘토님을 만나면 저절로 의욕이 생겼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 나도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햇병아리 신입 인턴의 마음이 노란색 희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10년 넘게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의 특징
인터뷰는 늘 신선한 물음표를 던져주곤 한다. 10년간 회사를 다니며 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전문가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공통점을 떠올려봤다.
10년 전이라면 지금보다 더욱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업무와 육아 둘 중 어느 쪽에도 완벽히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아이의 학업과 보살핌을 위해 업무를 관두는 일이 빈번했다.
따라서 회사 분위기가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외국계 담배 회사 BAT코리아에서 만난 여성 이사님은 재무회계 분야에서 10년 넘게 커리어를 쌓아 온 전문가다. 파이낸스 분야에서도 수출입을 담당하는 오퍼레이션 파이낸스, 마케팅 파이낸스, 기업의 전반적인 운영 관련 재무를 책임지는 코퍼레이션 파이낸스 3개 부서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커리어 스텝을 밟아 나간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직무 인터뷰
존슨앤드존슨에서 존슨즈베이비, 타이레놀 등의 브랜드를 총괄하는 마케팅 팀장님을 만난 적이 있다. 팀장님은 사진 촬영 이전까지도 해외 담당자와 레퍼런스 콜을 하실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다.
그녀는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며 엄청나게 성장했다. 업적을 인정받아 해외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이후에는 아시아 시장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했다. 역량을 성과로 연결시킨 결과, 그녀는 팀장으로 지금도 브랜드를 총괄하고 있다.
*직무 인터뷰
나이 들수록 가장 어려운 게 경청이라고 생각한다. 연차가 쌓일수록 연륜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연륜이 무기가 되면 새로운 것을 경계하는 아집에 빠질 수 있다.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공감하며 소통하는 과정이다. 팀장은 ‘라떼는 말이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되 트렌드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치가 높은 대신 트렌드에 대한 적응 속도는 신입들보다 느릴 수 있다. 존슨앤드존슨 브랜드 총괄 마케팅 팀장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팀의 리더로서 어깨에 힘을 주기보다 직급과 상관없이 선 경험자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세대와 상관없이 경험의 가치를 높이 사는 그녀에게서 현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보았다.
일 힘든 건 참아도 사람이 힘들면 오래 못 다닌다.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있다는 전제 하에 경력이 쌓이면 이직의 기회가 생긴다. 대부분 오래 다니는 회사는 동료들 간의 합(合)이 잘 맞는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으쌰 으쌰 하며 함께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주어진 업무를 다했다면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함께 돕는 문화가 정착된 기업은 근속연수가 높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업무로 복귀한 분들 중 외국계 기업 근속자가 많았다. 일과 육아를 같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진문화가 모든 기업에 정착되길 소망해본다.
10년 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뭘 하며 살까? 이 직무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나에게 취재란 한 명의 일생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다. 10년 뒤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인터뷰어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고 그게 나의 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