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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Mar 27. 2016

너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행복해?'

내 안에 질문을 찾기 위한 방황들.

저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행복에 대해서 끊임없이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초기에 계획을 잘 세우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두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에서 있어서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페이스북으로 신혼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또 올 거야?
또 그랜드 몰에서 만나자.
그때가 그립다


로 시작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번갈아 가면서 계속해서 연락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저보다 영어를 더 잘하기 때문에 저는 겨우 해석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아이들의 표현에 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문이 든다면. 해답을 찾아라.


아내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심심한데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가지면 가질수록 무언가 공허함에 빠져드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아내는 다시 한 번 필리핀에 가고 싶다면. 최저가 비행기 티켓을 끊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일을 또 접고 가기엔 경제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이전에는 그들이 저를 리서치 했다면. 이번에는 제가 리서치 할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후에 다시 필리핀을 방문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내는 최저가 비행기를 구입하기 위해 타이밍을 기다렸습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제가 프리랜서를 선언하면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진 않지만.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저가 비행기 표가 나타났습니다.


필리피노 아이들에게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저는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모두들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저는 스스로 질문하고 싶었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아이들의 생활이 궁금했고.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 나누고 싶어 졌습니다.


3만원에 묶을 수 있는 호텔.  난 이곳이 아늑하고 좋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그랜드 가이사노 몰을 헤맸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 얼굴을 제가 잊었나 해서 사진을 보면서 되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없었습니다.


아내는 들떠 있던 제가 풀이 죽어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만남의 장소와 가까운 음식점에서 아이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냥 필리핀 바다에서 놀다가 가면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번째 방문에서 다시 만난 라프, 마조리에, 제이미. 그들을 통해서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겐 그들이 행복의 현자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얼굴들이 내 앞에.


우리가 음식을 먹는 동안 음식점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교복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 눈에 볼 수는 없었지만. 아래층과 위층을 반복해서 옮기면서 누군가를 찾는 듯했습니다. 마조리에, 제이미, 라프. 이렇게 세 친구가 저희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미 약속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은 뒤였습니다. 음식을 먹던 도중에 멈추고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그때 만났던 것과 달리 쭈뼛쭈뼛 걸렸습니다. 저도 당황했습니다. 채팅창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했던 아이들과는 달리 쑥스러워서 숨는 아이들로 변해 있었습니다.


즐거웠던 아이들과 대화하기.



사실은..


한 명은 제 시간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를 보고 바로 숨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부끄러워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분명히 늦었지만. 필리핀에서는 한국보다 시간 개념이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나타난 듯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보이지 않자 당황해서 3명이 흩어져서 계속 찾았다는 것입니다.


촬영을 했을 때는 수십 명이었지만. 3명만 모여서 역시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사실은 4월이 필리핀에서는 방학이란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학교가 집과 가까운 것이 아니라. 툭툭이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거나 정말 학교가 없는 곳에서는 한참이 걸려 오기 때문에 방학이면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올 수 있었던 친구는 3명.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된 것은 아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점 주인이 촬영해준 사진.
아내도 쑥쓰러워 했지만. 이 아이들과 한장 남겼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


 아이들은 제 걱정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14세짜리 아이들이 30세를 넘은 어른을 걱정해주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경제력을 우리는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진심 어린 걱정에 저는 제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힘들다면 일을 줄이면 어떻겠냐.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면 공부를 줄이는 것이 어떻겠냐. 등등. 정말 당시 제 기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경쟁을 멈추라고? 일을 줄이라고? 공부도 하지 말라고?


필리피노들은 반대로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일거리가 많지 않다. 그래서 소득이 많지 않다. 그러나 친구와 가족이 없는 삶이라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저는 무엇이든 돈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이야기했고. 그 아이들은 가족,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아무리 돈만 많이 번다 한들 무슨 의미냐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운 필리핀 상황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체험하지 않아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에 관해서는 그들이 오히려 제게는 행복의 현자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 행복하기 때문이죠.


그전에 리서치에서 심심하다고 이야기했는데. 무엇이 그렇게 심심한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자신들의 막탄이라는 섬은 정말 할게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취미는 매일 '셀피'를 촬영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셀카라고 불리는 일이지요.


매일 매일 맛집 사진이 아닌 자신들의 얼굴을 찍다.


페이스북에 보면. 필리피노들의 셀피는 매일 올라옵니다. 우리처럼 어디 어디에 갔다 하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촬영. 친구 집에서 촬영. 학교에서 촬영. 길에서 촬영 등등. 그냥 좁은 동네에서 촬영을 연일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상이 중심인 삶이었습니다. 학원에 쫓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님, 동생들과 보냅니다. 형제도 많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사회를 배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롭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경쟁은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잘하는 아이대로.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노는 것으로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다 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친구입니다.


못 사는 나라가 아닌 행복한 나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노인중 3명 중 1명이 노인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결식아동 숫자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청년들은 취업이 되지 않아 삶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풍요롭다고 하는 그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에 반에 우리가 못 산다고 무시하는 나라에서는 이렇게 스스로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가족들에 대해서 실컷 떠들다가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맞벌이에 아이들은 학원에 치여서 가족들끼리 식사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1인 가구 증가에 대해서 필리피노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역시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맨션이라 불리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이 판잣집 혹은 나무집에 살고 있으며. 몇몇 아이들만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극소수입니다.


아파트 평형이 작다고 비교하거나.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어른들이 있는 한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이와 상관없는 친구 놀이.


제가 필리핀으로 재방문하게 된 것은 어쩌면 그들이 저를 친구처럼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2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저를 기꺼이 친구로 대해줍니다. 그리고 함께 노는 것 역시 꺼릴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진심 어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분 좋으면 노래를 부르고 또 화제가 생기면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저는 그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 직업이 사진사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해주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세워놓고 한 명 한 명 대화를 하며 촬영에 임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사진으로 소통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회복은 이런 것들임을 서서히 알게 되다.


 제가 회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우리가 이전에 갖고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60-70년대를 생각하면 필리핀이 떠오른다고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돈이라는 것으로 인해서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번째 만남을 마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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