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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Mar 28. 2016

20년 만에 부모님과 떠난 여행.

아버지의 해맑은 모습을 되새기다.

전원주택을 짓겠습니다.
저는 제 꿈을 찾아 떠나겠습니다.
경쟁을 포기하겠습니다.
이 도시의 삶 지쳤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참 무능하고 나약해 보이는 소리입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제가 저렇게 말씀드리면 내심 걱정을 하셨습니다. '너무 약해서 도피만 한다'고 말이죠. 맞습니다. 어쩌면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 생명을 걸고 맞서야 하는데. 저는 제 귀중한 삶을 돈에 담보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IMF시대를 겪으면서 큰 피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시의 상처가 지금은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각 가정에는 그때 경제적 피해를 입고 회복되지 않은 곳도 많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때의 영광이 오면 좋겠지만. 고도성장을 하던 우리나라로 회기 하기엔 이미 늦은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아직 정부에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연일 뉴스에서는 저성장이 아닌 고도성장으로 되돌려야 하는 것처럼 야단법석입니다.



20년만에 떠나는 부모님과의 여행.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요?


저 역시 그런 의구심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귀촌과 함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놀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소통을 해야 할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 것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로 결심합니다.


저희는 연애 초기부터 적금을 들었습니다. 적금 통장이 몇 개가 만들었으니 절약에 절약을 더해서 생활해왔습니다. (저는 의복 구입을 10년 이상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적금을 함께 만들고 지금까지 그 통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혹자는 필리핀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 고소득이 원천이 되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희는 8년 전부터 모아놓은 자금으로 필요할 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 저금을 해놓으면. 단기간에 필요한 비용을 사용해도 큰 부담은 없습니다. 물론 그게 잦아지면. 감당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 씨앗 같은 자금과 관련해서 상의를 합니다.


 먼저 예산 측면에서는 비행기표를 최저가로 맞추고. 호텔은 아쉽게도 등급을 크게 높게 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리조트에서 함께 쉬는 정도로 맞췄으며. 최대한 여유 있는 시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휴양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죠.


초등학교 이후 떠난 여행.


 부모님과 여유 있는 여행을 떠난 것이 언제인지 되돌이켜 보면. 정말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부모님은 이제 손자들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고.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견디셨습니다. 당시엔 늘 바쁜 아버지로 인해서 얼굴을 뵙기도 힘들었던 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큰 부분을 이뤄내신 아버지이시지만. 반대로 IMF 당시에 큰 타격을 입으셔서 희생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하셨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요즘 시대와 맞지 않게 자는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적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자주 가지는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필리핀에 가서 뭐하나.


부모님께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과거. 아버지께서는 우리 집 가훈을 이렇게 정해주셨습니다.


허송세월 보내지 마라.


저는 이 말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슴에 깊이 새기며. 자격증을 따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 연 구하는 등. 매일 매일을 보람차게 보냈습니다. 물론 치열한 경쟁사회에 편입되면. 이 자세는 기본이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허송세월도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동물이기에 아프리카 사자처럼 자연 앞에서 하품도 하고 쉬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어린이로 되돌아 간 아버지.


아버지는 호랑이처럼 엄한 분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부모님 세대는 모두 그럴 듯합니다. 부모님께서 엄하기만 한 곳도 많기 때문에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리핀 세부 공항에서 내려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자. 아버지께서는 표정이 밝아지셨습니다.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라는 아버지께서 물놀이를 어린이처럼 좋아하시고.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은 왠지 낯설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해맑은 미소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발현되는지 살펴보아야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열린 어머니를 위한 파티.
필리핀에서 보낸 어머니의 생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어머니의 생신이었습니다. 어머니 생신 날짜를 맞춰서 비행기를 예약했기 때문에 필리핀 현지 레스토랑에서 어머니를 위한 파티를 열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수년간 힘들게 적금을 모으고. 또 다음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아이디어는 정말 대단한 힘을 지녔습니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수십 년간 전쟁 같은 삶을 보낸 부모님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렀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경쟁이 아닌 협동을 하고. 주변에 있는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이름을 불러주며 도움을 주는 세상.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막탄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누구의 친척으로 엮여 있었습니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소득은 적지만. 나름 전원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현지인과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길에서 열리는 바나나는 그냥 먹어도 된다.
자연 자체가 우리 집 앞마당이다.


집은 화려하지 않고. 작지만. 옆에 이웃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 돌입한 우리나라는 아파트라는 것이 보급되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포기하고. 주변의 이웃도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톨이처럼 무한 경쟁을 위해 삶의 에너지를 모두 투입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부모님.


필리핀의 여행이 우리 모두를 서로 이해하게 만든 계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양평에 내려가는 것에 대해 협조적으로 바뀌셨습니다. 물론 걱정을 하시는 부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걱정이 아닌 독려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됩니다.


필리핀에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작은 주택에서 옹기종이 모여 함께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적게 벌지만. 옆에 사람이 손님을 잡으면 박수를 치는 툭툭 이 운전사들을 보며. 우리도 함께 웃었습니다.


제가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23가구가 모여서 마을을 이룰 예정입니다. 그리고 필리핀처럼은 아니겠지만. 아파트가 아닌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웃의 꼬마 아이 이름도 불러주고. 태어나게 될 우리 아이들 역시 이웃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쇼핑과 비싼 생활비로 인해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늘 자연을 통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을 몸소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모님께 보여드린 것은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기분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었습니다.' 물론 양평은 필리핀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곳에 간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낮은 물가가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충분한 공감의 시간을 만들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대로 한국에 갔을까요?


3번째 만난 우리 친구들.

물론 아닙니다.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필리피노 친구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이 3번째 만남입니다. 그 친구는 왜 자신들을 만나는지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보석 같은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은 저를 만나기 위해서 먼 거리를 달려와주었습니다. 특히 한 명씩 달려오면서 1등, 2등을 외치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그래서 여자 1등, 남자 1등으로 구분해주어 등수를 서로 올려주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이 모든 과정이 전원주택과 왜 연관이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그 안에 있으면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멀리 하면 해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기회가 이번에 만났던 필리피노 친구들이 제게 던져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리피노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은 3년간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일어난 일들 또한 다양합니다.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며. 아내와 해답을 찾기 위해 매일 밤 치열하게 토론을 합니다. 그리고 공동으로 정한 목표를 위해서 다시 도전합니다. 그 도전은 경쟁이 아닌 협동입니다. 우리 가족끼리 협동하고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제게 많은 영감을 준 우리 필리피노 친구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도 전원주택에 대한 고민과 가정을 이루기 위한 고민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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