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평김한량 May 04. 2017

왕과 대통령.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의 시작.

 우리는 민주주의 공화국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며. 모든 권력과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동등한 기회와 의무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정말 그런 곳인지 반문을 해봅니다. 정말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두가 평등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동등한 기회와 의무를 갖고 있는지 말이죠. 이것은 이 나라의 근본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그것이 올바르게 실행되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게 되면 무너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은 탄핵되었습니다. 대통령은 권한대행이라는 임시직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5월 9일에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게 되면 우리나라는 한 번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을까요? 5년 동안 바뀌게 될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은 왕과 같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계급사회 대한민국.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통령이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주어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바꾸길 바라는 희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한 명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이전의 체제였던 왕이 통치하던 시대적 발상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므로 국민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동참하여 세상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대통령에게 왕의 권한을 주게 만드는 '수직적 계급사회'입니다. 이 병폐는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세상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나라로. 한 국가를 크게 보면 마치 군대 조직처럼 짜여 있습니다. 어린 사람, 직급이 낮은 사람은 이등병,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은 병장. 이렇게 모두가 신분에 따라 계급을 매깁니다. 


계급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대통령은 세상의 가장 높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사람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지만 세상의 계급으로 인해서 모두가 대통령보다 낮은 사람이 됩니다. 높고 낮음이 존재하지 않을 때. 병폐가 사라질 수 있지만. 서열 문제로 인해서 누군가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간접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간접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효율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국민이 주인인 것은 맞지만. 모두가 직접 정치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간접민주주의는 이제 비효율적인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국회의원의 임금과 혜택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고 있으며. 대통령의 막대한 권한은 비리로 얼룩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민들을 대표해야 하는 사람들이 권력과 권한에 취해서 본인의 책임을 망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간접 민주주의는 이대로라면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민주주의는 의견과 권한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전 사회에서는 직접 민주주의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투표를 한 번만 하더라도 비용이 수천억이 넘는 돈이 세금과 비용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 금액은 단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비용에 불과합니다. 


만약에 투표 결과 혹은 과정이 잘못되어서 재투표를 하거나 재개표를 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비용 문제로 인해서 과감하게 밝히기도 어려운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부정투표 등의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투표방식에 있어서 단순히 국민을 대변할 사람을 뽑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미디어가 개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킹 문제에 있어서도 지금의 기술에 비해 훨씬 안전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중앙집권화되어 있는 서버는 오히려 해킹에 취약하지만 블록체인과 관련된 기술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수천억의 비용 없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서 거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수준으로도 의견을 직접 표출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국민에 대한 국민의 믿음. 


 우리나라는 불신의 사회입니다. 한 리서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사람끼리 서로 신뢰하지 않는 사회현상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주변 이웃에 대한 신뢰도는 62점에 불과하며. 처음 만난 사람은 더욱 낮은 40점입니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어떨까요? 국민이 정치권을 신뢰하는 점수는 28점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현상은 결국 이 사회가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탄생시켜 버립니다.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이 상호 간에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좋은 의견을 수렴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은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처리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경제만 살리면 이 나라는 부국강병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가 50년 전에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만을 키웠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정치적으로는 낙후되어 있었으며. 국민 간의 신뢰는 바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경제만 성장한 결과 그 이득은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왕과 같은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경제성장 역시 기득권이 몰려 있는 곳에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한 번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제왕적 권위를 누리는 자리의 성격을 바꿔야 하며. 잘못을 저지르는 국회의 권한 역시 축소시켜야 합니다. 많은 권한이 이제는 국민에게 돌아와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 트렌드 


 현재 제왕적 권한의 대통령이 통치하는 국가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 사는 국민들의 행복 만족도는 매우 낮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국민이 누려야 할 권한을 다른 사람들이 반강제적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살게 되는 사람은 노예와도 같습니다. 


스스로가 판단하고, 스스로가 결정하며. 스스로가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왕적 권한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 권한에 줄이어 수직적 계층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있습니다. 윗사람 아랫사람이 존재하는 곳에는 민주주의가 꽃피기 힘듭니다. 


반대로 전 국민이 수평적 권한을 갖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제왕이 출연할 경우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친한 사람의 기업이라고 해서 우대를 받는 일은 드뭅니다. 오히려 작은 비리만 터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만큼 국민에게 많은 권한이 있으며. 느리지만 꾸준한 발전을 자랑합니다. 


그것에 더욱 발전한 나라는 4차 산업 트렌드에 맞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능이 빠르게 접목될 수 있도록 하며. 그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인간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로봇 산업에서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서서히 변화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서 선거 비용을 낮추고 사람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정부와 공공기관이 비대화 해지지 않도록 늘 견제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우리는 누군가가 세상을 한 번에 모두 바꿔주길 바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당연히 누군가가 해주면 편하겠지만. 그것은 수백 년 전 왕이 통치하던 환경에서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정부가 비대해지고 권한이 더욱 집중화 되게 되면 더 많은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권한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사회,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함께 변화되었습니다. 1차, 2차, 3차,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정치 변화는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가 두렵다고 해서 피하게 된다면. 과거 산업혁명에 참여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결과는 크게 다릅니다. 적응한 나라의 국민은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불행에 빠집니다. 해결을 하려고 해도 나라의 근본이 바뀌기 어려워 시간만 끌고 갑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나라는 사라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우리가 직접 바꾸자고 하는 것은 반역행위가 아닙니다.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 역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차례가 된 것입니다. 


국민이 곧 대통령. 


 왕이 사라진 것처럼. 대통령제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단 한 사람에게 모든 미래를 걸었던 시대가 있었나 할 정도로 빠른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 안에서 영원토록 전 국민이 군대 계급 놀이를 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로 계급을 나누고, 직급으로 계급을 나누며. 그로 인한 부조리는 모두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역시 국민들과 수평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재자. 혹은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은 탄생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활용해서 지금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믿을 수 있는 세상. 친구와 이웃을 믿을 수 있는 세상. 누군가 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일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권한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진리입니다. 나를 남이 믿을 수 있고. 나도 남을 쉽게 믿을 수 있는 사회구조에서만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믿음 + 기술혁명 + 수평적 권한 


 이제 기술혁명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치 조차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는 수평적 권한으로 신분은 철폐되었습니다. 나이 한 살 차이로 아래위를 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만 유일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믿음으로 뭉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태까지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보다 더 높은 신뢰로 상호 간에 믿음을 연결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모두가 나라 일에 직접 참여하게 될 것이며.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발전할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 평등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도 드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우리가 원치 않을 경우 변화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선택하는 나라는 발전을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역사적으로 무너졌던 나라들과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통해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평화적인 탄핵 시위를 한 성숙된 국민은 없었습니다. 


촛불시위가 변화시킬 세상.


 역사적으로 촛불시위가 갖는 의미는 큽니다. 촛불시위는 선진화되어가는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국민의 의견 반영으로 사회가 변화되는 것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의견 반영을 할 때마다 촛불시위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변화하는 사회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서 통치를 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한 대통령이 임기 내에 통치할 경우 변화의 바람을 탈 수 있겠지만. 과거를 답습하게 될 경우엔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감을 국민이 모두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접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성숙한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에 도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촛불시위를 통해서 국민 한 명 한 명의 믿음이 되살아 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국민이 서로 불신하는 것은 이전 정치권에서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이 프레임을 파괴하기 위한 시도도 차후에 시도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를 바라보며 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