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남이 길을 정해주지 않는다.
나 자신의 생각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모두가 원하는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려운 것으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의 생각대로 산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일까요?
과거 우리나라는 '잘살아보세'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 잘살아 보세라는 의미가 '쌀밥과 고기'를 의미하는 것인지.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두가 헷갈렸던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쌀밥과 고기'를 원했던 것이라면 우리는 성공한 것이고.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이라고 한다면 실패한 것일 수 있습니다.
행복은 몇몇의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누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현재 행복지수 꼴찌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결국 사람은 동물원에서 아무리 훌륭한 식사와 환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증명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 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미래보다는 과거의 추억과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에 쌓이고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보다 바꿀 수 없는 것이 더 많다고 인지하고 있는 세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보다 더 배려받아야 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꿈과 희망입니다.
오늘의 미래세대라는 것은 바로 학생들 그리고 청년들입니다. 현재 자유학기제 실시를 앞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 자유학기제를 통해서 아이들의 진로를 맛보기 정도로 할 수 있겠지만 대학입시와 취업 등 모든 사회적 시스템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그것만 가지고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 결과 학부모, 학생들은 불안한 상황에 빠지고. 그것을 이용하여 사교육 시장에서는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불안심리를 이용해서 상당한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습니다. 단지 불안해서 무언가를 할 뿐. 그 안에 아이의 미래는 없습니다.
저 역시 낡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잘못하면 맞았고. 대학 가서 놀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청소년 시기를 의미 없는 문제지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교과서와 전공서적에는 제 꿈과 희망은 없었습니다. 단지 나중에 막연히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의해서 시간을 썼을 뿐입니다.
공교육, 사교육 다 시켜보았지만 아이들은 꿈이 없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왜 집 밖을 두려워하는지도 압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똑똑하기 때문에 비판적이고 비판적이기에 현 상황을 합리화할 인지능력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기는 13세 이전에 모두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직업체험' 같은 놀이 수준의 활동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심장이 터질듯한 일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인연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활동합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강제적 테두리에서 활동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작용의 징조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없이 스스로 놀아야만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채득하고 완성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하고 험해진다는 이유로 점점 더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돌아다닐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공간은 이제 없습니다. 어디를 가던 아이들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 어떠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런 능력이 키워지지 않은 모습에서 어른은 더욱 불안하여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맙니다.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소년, 청소년의 시기도 짧습니다. 아무리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10대가 지나면 호르몬이 꺾이기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기에 최대한 스스로의 의사결정과 시행착오, 실패, 성공을 겪어야 합니다. 물론 좌충우돌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기엔 교과서적으로 체계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실패를 많이 하고 얻어봐야 무엇이든 이루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교과서적으로 단계적인 삶은 모두 거짓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책 속의 인생일 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너무 과격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좀 더 도전할 권리. 좀 더 게으를 권리. 좀 더 행복할 권리 등. 자신의 인생에서 전반적으로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개개인마다 해답이 다릅니다. 족집게 과외처럼 해답만 원한다면. 이것조차 자신 스스로의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카피해서 사는 것일 뿐입니다.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쉬운 것만 찾게 되면 결국 실패합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얻는 피드백이 없으니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좀 더 어려운 방법으로 실패할 때. 얻는 것도 많아집니다. 실패를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주변의 사람들의 말에만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실패하는 것은 그다지 큰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보호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가 들어서 큰 배팅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실패에 익숙할 수 있도록 많은 실수가 용납되어야만 합니다. 그럼 훗날 무리한 배팅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잃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 역시 실수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정립되어야 합니다. 교과서 문제지만 달달 외우게 되면 절대 자신의 생각을 갖는 방법을 연습할 수 없습니다. 평생 문제지 해답만 외우다가 끝나게 됩니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 제시해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공교육은 100년 전 수준이며. 사교육은 근본이 없습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똑같은 것을 강요하는 조직문화에서는 배울 수 없습니다. 조직문화에 익숙해질수록. 자신의 생각은 없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익숙하게 되면 정작 중요할 때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10대, 20대에 진입하는 동안에는 문제지 안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스스로가 보기에 심장이 뛰는 일을 발견하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제지 안에서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경쟁할까만 생각합니다. 그 결과 2%는 성공하고 98%는 낙오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갇혀 살게 됩니다. 성공은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만은 지켜낼 수 있아야만 오랜 기간 생존을 배울 수 있습니다.
30대, 40대가 되어도 늦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10대, 20대에 놓쳤던 것을 모두 건너뛰고 결과만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다시 10대, 20대 행동을 보고 배워야 하며. 그 이전에 놓쳤던 것은 하나씩 해보면서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적 손실은 발생하게 됩니다. 가정이 있을 수도 있고 부모님이 보호해주던 시절과 달리 생활비가 상당히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회비용으로 인식하고 도전한다면 그때에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삶을 존중해 주십시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답이며. 그 답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