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평김한량 Apr 14. 2018

2장.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아니요. 드릴 수 없습니다. 

그를 계속해서 바라보자 그는 당황하는 듯 보였다. 누군가가 나를 계속해서 응시한다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응시하는 것은 관심이고 그 관심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은 단지 '문화'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온 문화에서는 먼저 관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중간이라도 가자'는 생각이 만연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잃고 살아온 것일까.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 나는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민훈 그는 분명 어색한 기운이 역력했다. 그는 결국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민훈 : 하하.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자꾸 보시니 제가 민망합니다. 


나 : 아니요 저는 이민훈 님의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보는 것입니다. 


그와 나는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무언가 잠재되어 있지만 폭발되지 않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무언가 막혀있는 그의 '기운'이었다. 됐다. 그는 분명 가능성이 있지만 그 기운이 막혀 있는 것뿐이다. 


이민훈 : 가능성이요? 제게 그런 게 있나요? 저는 이미 살아가는 대로 산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 : 가능성은 말 그래도 1%의 확률도 가능성이죠. 당신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민훈 : 물론 1% 정도의 가능성은 저에게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퇴사를 결심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까지 가능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돌파구를 발견할 수 없었어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어서 미루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나 : 용기만 있으면 되나요? 


이민훈 : 무엇이든 시작하려면 용기는 필요합니다. 저는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나 : 좋습니다. 그럼 그 용기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이민훈 : 저도 그 용기를 줄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럼 저도 동기부여를 받아 실행할 수 있겠지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벌써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가장 답답한 것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나 : 그러나 저는 용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용기를 그에게 줄 수 없다는 말 한마디에 그는 놀라는 눈치였다.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것은 어쩌면 긍정의 신호가 되곤 한다. 지금 이 상황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확신이 필요하다. 


이민훈 : 무슨 말씀이시죠? 


나 : 다른 사람이 준 용기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그 사람이 준 용기는 그 사람과 떨어지게 되면 머지않아 사라지곤 하죠. 그런 경험은 없으신가요? 


이민훈 : 생각해보면 저도 누군가의 말을 듣고 갑자기 용기가 샘솟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일상에 돌아오면 똑같은 생활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나 : 바로 그 점입니다. 제가 주는 지금 당장의 용기는 그런 인스턴트식 용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인스턴트 용기가 아닙니다. 


그는 갑자기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 절박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줄 것 같다는 확신은 오히려 위험한 마음이다. 반대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인생에서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기도 하지만 그건 남이 구원해주는 방법으론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나 : 먼저 그 생각부터 고쳐야 합니다. 퇴사를 하고 싶으신가요? 그러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민훈 : 퇴사가 중요하지 않다고요?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건 아닌지요? 


나 : 저 역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생활해왔던 사람입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저 역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 벗어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민훈 씨는 절대 평생 다른 사람이 내보내기 전엔 스스로 퇴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용기를 주길 바라지만 얻는다고 해도 곧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민훈 : 그렇게까지 저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나 :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민훈 님의 스펙과 현재 상황을 보고 칭찬할지도 모르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이민훈 님은 동경의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건 겨우 남의 눈에 불과합니다. 남을 의식하면서 남에게 의지하면서. 남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 속에서 살아가는 대상이 과연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본인이 더 해답을 잘 아실 거예요. 


이민훈 : 저도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이 회사의 스펙과 연봉을 빼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대화는 점점 더 흥미진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진실된 대화는 조금은 심각한 분위기에서 나올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믿는다는 것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한다. 


나 : 괜찮습니다. 이민훈 님은 지금 상황으로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높은 연봉을 받건 안 받건 저에겐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민훈 님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그 잠재력입니다. 


이민훈 : 그러니까 그 잠재력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나 : 일단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저는 사람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키는 점에서 전문가라고 자부합니다. 그 첫걸음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다면 그냥 생각만으로 '난 언젠가 퇴사를 할 거야' '난 언젠가 부자가 될 거야' '난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거야'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민훈 : 겨우 그 정도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군요. 


나 : 그럼 이건 어떨까요? 이메일을 보내면서 저를 당장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 절박함. 그것이 또한 가능성입니다.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민훈 : 네. 


나 : 가진 것은 많은데 부족한 것은 하나입니다. 


이민훈 : 부족한 게 하나라고요? 


나 : 네. 일단 무한한 듯 가졌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바로 그것에 대한 인식이 빠졌습니다. 대화 내용 속에서 절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으신 듯합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결코 용기가 아니다. 용기 없는 사람이 대학 입학을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취업 역시 절대 쉬운 관문이 아니다. 십수 년 동안 직장 생활하는 것도 웬만한 멘틀이 아니라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용기나 동기부여가 아니다. 


3장에서 이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1장. 퇴사하고 싶어하는 한 직장인과의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