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평김한량 Jun 10. 2018

나도 나를 못믿는 나에게.

 지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 중에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와 같은 종교에 대한 불신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정말 할 수 있는 일들 역시 자신은 못한다면서 손사레를 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면서 한동안 제 글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라고 다른 사람이 평하지만. 저 역시 '스스로'를 믿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간혹 세상은 거대해 보이고 나는 너무 외소한 모습이라 주눅이 들곤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사회가 발전하고. 모두가 멋진 모습 예쁜 모습으로 꾸미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입니다. 그 후퇴하는 것을 들키기 않기 위해서 더 외모를 가꾸는 경쟁을 하지만 결국 자신만은 그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더이상 채우는 것은 필요없다. 


 자신을 발전 시키기 위해서 학원부터 달려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지를 풀면서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예습, 복습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학원에서 배운 것은 지금 현재 별로 남은 것이 없습니다. 자신 스스로를 발전시킨다고 하면 우리는 이렇게 하곤 합니다. 무언가 더 채우려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답은 학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배울만큼 배웠고 더 이상 배우는 것보다 우리가 아는 것을 실천하기에도 시간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믿고 또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나는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 좀더 완벽한 계획을 세워야만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결국엔 제자리인 것 같은 자괴감까지.. 자신이 부족해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자책을 하곤 합니다. 그 자리에 머물면서 한숨만 쉬기도 합니다. 


잠재력을 이야기 할 때. 절대 답을 외부에서 찾지 않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넣기 위해서 공부를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십수년, 수십년 동안 자신이 익히고 공부한 것을 활용만 제대로 한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결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믿지 못하니 내가 가진 잠재력의 하나인 지식 조차 믿지 못합니다. 


믿음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먼저 '의심은 병이다' 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의심을 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하면 아무리 진실을 코 앞에 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 역시 세상 어느 것보다 가까이 있지만. 자신이 부정합니다. 그럼 그 능력을 세상도 부정해 버립니다. 


세상은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함께 수십년을 산 부부도 서로 알기 힘들고. 가족 역시 진정한 나를 알기란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막여니 가끔 나를 볼수 있는 세상이 날 온전히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냥 세상의 잣대만 나에게 적용시켜 등급을 매길뿐 입니다. 


믿음은 근본적으로 이유가 없습니다. 조건없는 사랑과 유사합니다. 요즘 자기애가 강해서 문제가 되는 세상이라 말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건 자기애가 강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너무 소중하다고 착각하는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믿는 것은 사랑처럼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하나, 둘, 셋 파이팅!' 외치듯 박력 넘치고 화끈한 느낌이 아닙니다. 맹목적으로 기합을 외치며 다니는 것만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쉽겠지만 그것은 그때만 효과가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콘서트 열기 처럼 그다음날 아침이 되면 식어 버립니다. 


믿음의 단계 


1. 자신이 원하는 것 or 현재의 모습을 온전히 본다. 

2.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부드러운 느낌이다.

3.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4. 행동은 이미 그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한다. 

5. 믿음은 삶에 전반적으로 적용이 된다. 당연한 것이 되었기에 의심은 없다.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 모두 여러가지로 표현이 되지만. 진정한 자신을 믿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습니다. 다른사람을 의심하고 나를 믿는다는 것도 결코 온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결국 자신도 의심하게 되어 삶은 풍성함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믿음의 단계를 거치면 거칠 수록 현재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의 불만족만 미래를 바꾸는 힘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현재에 만족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더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왜 자신을 믿지 못하나?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믿음에 대한 가치가 매우 낮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믿으면 바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인구대비 사기범죄가 가장 많은 곳이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 일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에 우리 모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나만의 길을 가기 보다는 경쟁이 치열해도 모두가 가는 길로 가려고 합니다. 한번 그 길이 아닌 것을 알았음에도 또 가고 또 갑니다. 경쟁이 심한 곳은 우리를 반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넘쳐나다 보니 우리를 쉽게 깎아 내립니다. 가치가 높은 것도 돌처럼 흔해져 버리면 평가절하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사회에서 믿음을 받지 못하다 보면. 정말 '내가 이상한건가' '내가 능력이 부족한건가' '틀리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기만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살았던 대로 살게 됩니다. 자신의 잠재력이 10%도 발휘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번아웃을 감수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이것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의 모습은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 하나만으로 가능한 일은 정말 많습니다. 


나도 나를 못믿는 나에게.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접속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접속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을 되찾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미 자신은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해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보통 인생의 기회는 간질간질하게 다가옵니다. 무언가 확실하게 기회다라는 생각보다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상황으로 연출됩니다.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은 먼저 택배박스를 뜯듯이 뜯어버리고 사용해보는 형태로 기회를 잡습니다. 반면에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은 택배 박스를 뜯지도 않은채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듯 기회를 놓쳐 버립니다. 


나를 가장 잘아는 것은 분명 나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도 너무 바빠서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을 조용히 갖지 못할 경우 이 역시 나를 알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넘기게 됩니다. 현재까지는 한 개인의 '잠재력'에 대한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래 사회에서는 다를 것입니다. 단체를 통해서 공장 방식으로 모든 것을 찍어내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창조하고 싶은 것을 창조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평범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으면 절대 자신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그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갈 뿐입니다. 가면을 벗어버릴 용기가 없는 것 뿐입니다. 


욕을 먹어도 좋고. 관계를 잃어도 좋다. 스스로를 되찾기만 한다면. 


 예전과 다른 나를 찾게 되면 과거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섭섭해 합니다. 왠지 자신에게 대하는 모습이 달라진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모든 인연이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인연은 없습니다. 달라진 나를 이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면 오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피곤한 관계가 되어 서로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가만면 쓰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분명 서로 답답해서 누구라도 먼저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섭섭한 마음은 '오해' 입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겐 실수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실수와 실패는 '가르침'을 위한 존재이지. 내 인생을 망치기 위한 '핵폭탄'은 아닙니다. 분명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면 과거에 알 수 없었던 교훈을 머지 않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더 성장하게 됩니다. 그 사실도 함께 믿으면 나의 실수와 실패에 대해 스스로 더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곧 진실된 자신의 능력을 체감한 날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믿음엔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그 긴 시간과 노력을 믿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할만큼 했습니다. 힘내세요.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마를 받고 일 해야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