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하는 방법, 답은 하나가 아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배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치 교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최저시급이 오른 것에 대해서 저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가치가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최저시급만으로 고물가인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임금은 더 많이 오르고 물가는 더 내려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그만큼의 임금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연봉협상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점이 임금을 받는 사람에게 더 유리한 입장이 될 수 있을까요?
10년 전에 저는 아내와 연애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졸업생이었고. 저는 학생이었습니다. 둘 모두 저임금이었습니다. 아내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아르바이트 임금을 받았으며. 당시 저는 몇 가지 일을 소개받아하곤 했습니다. 제 스스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최저임금은 받지 않았지만 그러다 보니 일이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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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등가교환
돈이라는 것은 가치를 평가하는 수단입니다. 비싸다고 해서 가치가 꼭 높은 것은 아니지만. 수요가 몰릴 때는 그만큼의 가치로 환산을 받기도 합니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가 없는 편이거나 너무 많은 공급이 이뤄진다면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힘이 듭니다.
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상대방은 돈을 지불한다면 결국 등가교환으로 냉철한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의 최저임금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에서 정하면 모두가 그것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낮게 주지 말라'는 의미를 '모두가 이렇게 받아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해지는 기준에 따라서 사람들의 임금이 통일되어 버립니다. 힘든 일이던 어려운 일이던 상관없이 그 정도 선에서 정해져 버립니다. 높아도 비슷하고 낮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환의 가치는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더 어려운 일은 더 고부가 가치로 인정받아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안정된 고용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고용주들이 많습니다.
벗어나야 높은 임금이 가능.
경쟁에서 벗어나라는 말은 쉽게 들립니다. 10년 전 유행했던 '블루오션' 전략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가 해왔던 일을 쉽게 벗어날 순 없습니다. 현재까지 해오던 일을 당장 높은 임금으로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원래 하루 5만 원을 받던 곳에서 '50만 원을 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그것을 줄 수 있는 고용주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이전에 이뤄졌던 교환의 가치는 그곳의 매출과 여러 가지 요소를 적용해서 산출한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50만 원을 받고 싶다면 먼저 그곳이 아닌 그것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곳에서 요구를 해야 합니다.
임금과 관련된 선택.
1. 원래 있던 곳에서 임금을 상승시켜 받는다.
2. 전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3. 완전히 새로운 반야에서 매우 높은 임금을 받는다.
4. 임금과 상관없이 일을 한다.
먼저 일을 진행할 때. 돈을 왜 버는가에 고민을 해본다면 당연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돈은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돈으로 인해서 내 시간이 모두 투입되어 버린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모두를 돈만 벌다가 끝낼 수는 없습니다.
돈이 우선되는 삶의 경우 나의 가족, 행복, 취미, 친구 등.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위해서는 '시간'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아야만 합니다. 시간을 많이 투입하면 투입하는 만큼 돈을 더 받는 구조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 '노동의 가치 = 시간'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돈을 많이 벌어온 사람들의 경우 '시간을 절약' 하는 것에서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서 많은 돈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방법이 됩니다.
연봉협상을 하면서 자신이 해왔던 일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온전히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의 가치와는 다른 것을 확연히 보여주지 않는 이상 완전히 여유로운 삶은 멀게 보입니다.
고임금을 받는 기본적인 메커니즘.
5만 원을 받던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니 지켜보던 15만 원을 주는 사장님이 불러 그곳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배워 50만 원짜리 일을 만들어 냅니다. 서비스 수요가 늘기 시작하면서 100만 원을 받고 일을 합니다.
이전에 서울에 살면서 했었던 방법입니다. 업종은 사진업이었고 사진을 공부하면서 좀 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가격 경쟁력을 키웠던 경험입니다.
그렇다면 왜 똑같은 일로 5만 원을 주는 사람이 따로 있고 100만 원을 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가치 인정이 다릅니다. 예산이 적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 적은 예산이 분배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일로 5만 원을 받던 곳은 어린이집이고. 100만 원을 받던 것은 큰 행사 사진이었습니다. 하루에 책정된 예산 중에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좀 더 높은 임금을 받으려면?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희소성'에 투자하는 것이 빠른 길입니다. 2017년, 2018년 제가 관여했던 일 중에 가장 고부가 가치 인력 수요가 높았던 곳은 '블록체인'이었습니다. 저 역시 블록체인과 관련된 작은 일 몇 가지를 해보니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는 매우 많았습니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임금을 받으려면 새로운 분야에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거나 우직하게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20년, 30년 동안 커리어를 쌓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우직하게 일하는 것은 앞으로 트렌드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융합을 통해서 발전시키지 않으면 도태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분야가 영원하길 바라는 것보다는 지금의 것과 미래의 것을 끊임없이 합치는 것이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프리터와 프리랜서 시대.
고정 임금을 높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유럽에서 본받을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유럽 스타일의 삶을 꿈꿉니다. 여러 매체에서도 유럽 사람들의 삶을 이상적으로 그려냅니다. 저 역시 유럽을 다녀온 후에 유럽의 복지와 사람들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은 과연 유럽을 따라가는지 일본을 따라가는지 더 분명해 보입니다.
일본은 20년 전부터 니트족, 프리터족, 프리랜서가 유행 중입니다. 마쯔시타 고노스케가 고안했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30년 전에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베노믹스로 인해서 경제 호황을 재현한다는 지금의 일본 역시 평생고용은 과거처럼 이뤄질 것 같지 않습니다.
프리터는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는 사회인을 말하고. 프리랜서는 집단에 소속되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 정부와 사회에서는 고용을 더 많이 하자는 것으로 여론을 모으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IMF 이후로 20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프리터와 프리랜서가 급등하는 일본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개개인은 여론 혹은 현실을 놓고 선택해야 합니다.
저 역시 1차 은퇴를 통해서 양평에서 살고 있지만. 기본적인 사업소득에 대한 신고는 프리랜서에 속합니다. 프리랜서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타율이 아니면 생존해 나가기 힘듭니다. 프리터, 프리랜서를 꿈꾸며 준비하는 분들은 자신의 판단력을 키우는 야성미가 필요합니다. 많이 일하고 싶다고 해서 무한대로 일이 들어오는 것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적게 일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소득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얼마를 받고 일해야 하나?
얼마 전에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야근을 하면서 일하는데 한 달에 150만 원을 받는 반면. 그만두고 커피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더니 200만 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 더 힘들게 일하는 것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는다면 그곳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눈높이를 낮춰라'는 것이 현세대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연봉이 3000만 원이던, 5000만 원이던, 1억이 되던. 삶의 만족도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쟁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한 번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다음번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면 자신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선택입니다. 저는 높은 연봉만이 인생의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서울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돈을 위해 살았겠지만. 현재는 귀촌을 통해서 적게 일하더라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낮은 금액을 받고 일하는 것은 더더욱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시간은 자신이 가치를 정하는 것입니다. 낮은 임금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은 사회에서도 함께 인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현재 있는 곳에서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방법이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고임금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나?
아까 일을 한다는 것은 '살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냥 산다는 것' 자체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50년 전 사회적으로 퍼졌던 '잘살아보세'라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돈 때문에 사는 삶'을 뛰어넘어 그다음을 추구하자는 방향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돈 때문에 사는 것'이 5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찬 가짓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더 큰 스트레스와 불안감, 우울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만약 사회 전반적으로 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려고 한다면. 최저시급을 늘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답으로 보입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웃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넉넉히 보내고 나의 삶이 스스로 보기에 마음에 들 때 가능해집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분명 그것을 위한 것일 것입니다.
결론
연봉을 상승시키는 것은 그만큼 독보적인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하느냐입니다. 그 서비스는 '명인'이 되거나 혁신의 '희소성'으로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고임금을 받는 것은 영원할 수 없으므로 많은 자기 계발이 필요합니다.
돈을 버는 것은 삶을 위해서고.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돈을 버는 것은 분명히 어딘가 삶의 적신호입니다. 점검을 통해서 돈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좀 더 고임금을 받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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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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