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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Jun 18. 2018

나는 누구 편인가?

잡념 없애는 방법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저만 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목소리를 입은 쉬더라도 끊임없이 듣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도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걸 사람들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는 동안 집중하면서도 그 목소리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읽어주듯 말합니다. 잠시 글 쓰기를 쉴 때도 끊임없는 소리를 냅니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이 생각을 영혼이라고 표현합니다. 보통 뇌에 영혼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배에 영혼이 있다는 유대인들의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목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그 목소리는 물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입이나 손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볼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합니다. 아직까지 그 목소리의 근원은 알 수 없지만 분명 매일매일 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들리는 목소리는 누구 편인가?


 자신의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듣기 싫은 말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지금 상황과 관계없는 말을 하곤 합니다. 무언가 도전을 할 땐 그 의욕을 꺾는 불안한 말을 합니다. 사람들과 있을 때 눈치를 보게 하기도 합니다. 그 목소리가 내 편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세상 편인 것처럼 여러 가지를 말합니다.


이전에 해봤잖아 이번에도 안될 거야

세상은 너를 인정하지 않아, 이젠 포기해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나서고 상처받지 마.

여기를 떠나 네가 어디서 살 건데? 대책은 있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데?


부정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그게 내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내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생각보다 강력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지입니다. 예를 들어 저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생각은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안됐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어차피 떨어져도 잃을 건 없어

세상이 인정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아직 기회를 못 만났을 뿐이야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겠지. 그런데 나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많아.

여기를 떠나도 난 살 수 있어. 난 이미 많은 이사를 해봤거든.

과거보다 좋아질 거야. 난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어.


같은 이야기도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마음속에서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되지 않고 사고의 전환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매사 부정적인 사람들은 부정적인 목소리에 매일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부정적 상황에 얽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목소리는 사실 어린 아기의 목소리다.


 내 안에 들리는 목소리는 상처도 잘 받고 변덕도 심하며. 지나간 과거와 불안한 미래를 불쑥 내미는 장난도 잘 칩니다. 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수준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장난꾸러기 5살 수준의 어린아이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습니다. 분명 성숙한 성인이라면 이성적 판단을 하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최적의 조건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어른들은 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인해서 소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 수 없어, 알 수 없어, 귀찮아. 등등의 말들도 내면에서 말하는 것 같지만 아쉽게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아왔던 내 목소리입니다. 만약 현실 속에서 어린아이가 내 미래를 맡고 있다면 흔쾌히 맡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목소리에 자신을 맡기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소심하게 살아갑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없다.


 모두가 섬세한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누적되고 누적되면 자신도 모르게 소심해 보입니다. 대범한 사람들 역시 내면에서 들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의해서 소심해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 상처받는 일이 영원할 수 없고. 반복될 리도 없습니다.


만약 내 안에 내 목소리가 내편이 아닌 것 같다면 어느 정도 자각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분명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있고.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목소리는 삶에서 큰 힘이 됩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해준다면 더 좋은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삶은 이룰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많이 들리는가입니다. 지금 움츠려 들어 있는 의기소침한 말들은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앵무새의 반복되는 말과도 같습니다. 뭔가 심도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재방송을 반복하는 것들입니다. 수십 년 동안 재방송하는 올드한 목소리입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내편으로 만들어보자.


 먼저 내 안의 목소리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분이 계신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자신이 자신의 최고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먼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믿기 위해서는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그 목소리가 어린아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되나요? 재밌어서 또 괴롭힙니다. 인지는 하되 그냥 저리 가서 놀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 지난번에 누가 그랬는데 또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번에 시험에서 떨어지면 나는 무얼 하고 살지?

내가 정말 세계일주 같이 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도둑맞으면? 아프면? 힘들면? 등등..


그럼 대답은..


 아 그래. 또 네가 나타났구나. 맞아 너 말도 맞지 충고 고마워. 그런데 이번엔 왠지 네가 틀릴 것 같아.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는데 일어난 적은 별로 없었잖아.


이 정도의 식으로 생각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몇 번 그렇게 하다 보면 내면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서서히 작아지면서 더 이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난치는 것이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억누르지 말 것.


 가장 하수의 조언은 '그런 생각하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야' '너 또 그 소리냐' 등등.입니다. 왜냐하면 걱정하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면 그 말을 하기까지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목소리가 고민을 만들어내고 괴롭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친구가 화났을 때. 말리면 더 화는 폭발합니다. 연인끼리 싸울 때. 말을 하지 않으면 더 폭발합니다. 그것은 분명 흘려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만 합니다. 내면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억눌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되 바로 흘려버려야 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은 겁쟁이가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가 어린아이라고 해서 당신이 겁쟁이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엄청난 욕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집어던지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며. 누가 무슨 말을 하던 자신의 것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안타깝게도 겁쟁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사회, 조직, 학교, 가족, 부모로부터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들입니다. 단체 생활을 하려면 당연히 규범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가르쳐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비례해서 많을 수 있습니다. 이젠 그것을 되찾을 방향성이 필요합니다.


평생 어린아이로 살 수는 없습니다. 어린 시절, 10대 20대 때. 상처를 받았던 것들. 분명 과거엔 사실이었습니다. 그 상처는 분명 내 안에 깊숙이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들. 그 주변 분위기. 사람들의 눈빛 등도 생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안의 목소리가 아무리 반복해서 재방송한다고 하더라도 사실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당신임을 분명히 하라.


 계속해서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겁쟁이처럼 들린다면. 당신은 유능한 PD처럼 그 목소리를 해고해 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 나의 100%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단지 과거의 부정적인 목소리를 재방송해주는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주인은 모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들리는 부정적인 목소리 역시 긍정적인 목소리로 채널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주인은 그 안에서 권력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입니다. 아쉽게도 아직 주인이 되지 못한 분이라고 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 주인이기 때문에 그 권한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과거의 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켰던 상황은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누군가 계속 상기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습니다. 내가 주인이므로 초대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문 앞까지 와서 문을 두드린다고 하더라도 문전박대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생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원래 내 편이었다.


 모두는 원래 스스로 자신의 편입니다. 자신의 생존만큼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먹고. 즐기고 번성합니다. 그러나 그런 본능을 잠시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편이 아닌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뿐입니다.


나는 원래 내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주인인 내가 마음을 먹으면 어린아이의 투정도 잠재울 수 있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건 누가 대신해줄 필요도 없습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먹는 자신의 의지가 있듯이 주인인 자신이 그것을 다스리는 힘은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원래 내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편이었다가 이익에 따라서 다른 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망이 있을 수 있지만. 분명 영원한 내편은 늘 나와 함께 붙어 다닙니다. 내 안에 있는 목소리. 그것을 기억하고 다스리고 주인의 권리를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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